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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비 Jan 23. 2024

매년 빌어왔던 나의 소원은 진짜 소원이었을까

"내 소원은 사리곰탕면이야"

새해가 되면 으레 소원을 빌었다. 또렷하진 않지만, 20대의 몇 년은 좋은 직장 가고 싶다 빌었고, 30대의 몇 년은 성공하고 싶다 빌었다. 또 한 해가 흘러 소원을 빌 시간이 찾아왔다. 점점 빨리 찾아오는 기분. 이번엔 부부 모임 8명이 모여 앉아 이야기했는데, 나이가 비슷해서 그런 건지, 사는 수준이 비슷해서 그런 건지, 다 비슷한 소원을 빌었다.


첫 번째 소원은 막연하다.

"제발 대박 좀 났으면 좋겠어."

"야 나도"

"로또가 답이야"

"나 이미 매주 사고 있거든?"


사실 이건 그냥 막연한 꿈. 이 정도 살아보니 나의 대박의 길은 로또뿐이구나 싶다. 근데 이마저도 부지런히 갈구하진 못 한다.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질 않으니. 그나마도 집 나설 때 부지런히 현금카드도 챙기고 ATM기계까지 가는 수고를 해야만 살 수 있으니 이마저도 쉽진 않다. 그런 거 보면 대박도 부지런해야 날 수 있다.   


두 번째 소원은 꽤나 서글프다.

"안 아팠으면 좋겠어."


어릴 땐 건강에 관심도 없었는데. 어느 날부터 베개자국이 늦게 없어지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몸이 하나씩 고장 난 다는 어른들 말을 체감하기 시작했다. 요즘은 건강검진이 무섭고, 병원 가기가 무섭다. 혹시나 나쁜 말을 들을까 봐.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한 번씩 서글프다.


그러고 보면, 40을 바라보는 우리의 소원은 한없이 모순이다.

일확천금의 대박을 꿈꾸는 비현실성과 그냥 하루하루 아프지나 않았으면 하는 초현실성이 공존하니까.


나의 소망 사리곰탕면요

우리 아이도 유치원에서 소원을 빌었나 보다.


그런데 어?

소원이 사리곰탕면?

이래서 가정환경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인가.

우리 집 6살은 라면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아빠 덕분에 너구리는 동물 대신 매운 거!로 먼저 배웠으니까.

아니 근데, 이게 2024년의 소원까지 될 일이야?


"연호야 2024년 소원이 사리곰탕면이야?"

"응 사리곰탕면 좋아!"

"사리곰탕면이 되겠다는 거야?"

"너무 좋으니까 그냥 사리곰탕면이야!"

돌이켜보니 나는 6살의 소원에 문법과 논리성을 따지겠다는 거였나.

 

"엄마는"

"응?"

"엄마소원은 뭐야?"

"우리 가족 건강하고 행복한 거"

(그래도 아이 앞에서 로또는 뺀다 하하)


"아니 그거 말고 엄마 소원 뭐냐구~~ 엄마 소원 "


....응?


무엇을 말해야 하지.

나 자신으로 39년을 살아왔는데, 6살 만큼 자신 있게 대답할 만한 떠오르지 않는다.

연호의 사리곰탕면만큼 내가 좋아하고 바라는 게 있을까.


태어날 때 본능에 충실해 힘차게 울어댔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본능보단 이성이 앞서는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성숙'이라 불렀다.


문득 성숙 뒤에 숨느라 저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본능은 외롭진 않을까 싶어졌다. 이를테면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함이나 자유로운 생각들. '지금 내 상황에서 무슨' 혹은 '이 나이에 뭘'처럼 이런저런 이성적 판단들 앞에서 속 시원히 꺼내보지도 못했던 우리의 작은 꿈과 바람들 말이다.   


글을 쓰고 싶었다. 내가 무슨 이라는 생각에 몇 년을 망설였다.

음악 틀어놓고 분위기 좋게 책을 읽고 싶었다. 책을 펼치면 바로 아이가 달려와 불가능한 상황이라 포기했다.

혼자 여행을 가고 싶었다. 이건 감히 엄두조차 못 냈었다.


브런치를 시작했다. 아직 미흡하지만 머릿속 상상에서만 있던 게 한 편 두 편 현실이 된다.

내 책을 아이에게 재밌게 읽어주며 같이 보기 시작했다. 음악은 포기했지만,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한 걸 그래도 반은 이룰 수 있게 됐다. 언젠간 음악도 같이 들을 날이 오겠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1박 2일 여행을 가봤다. 안 되는 건 없더라. 내가 시도를 못 했을 뿐이지.  


내가 또 좋아하는 건 무엇일까.

그리고 또 무엇이 해 보고 싶을까.


일단 지금 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는 거다.

미련 없게 컴퓨터 꺼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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