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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람 여행자 Apr 01. 2020

마지막화_ 여행길에서 이름 주고받기

한글 이름 선물만큼 간편하면서 가치 있는 선물이 있을까.

해당 이야기는 워크어웨이(Workaway)를 통해 다녀온 여행 에세이를 담고 있습니다.

<2분 만에 읽는 신개념 여행법, 워크어웨이>  https://brunch.co.kr/@yoonistraveling/1



가족은 평범한 일상에서 만날 수 있다


저는 새로운 호스트를 만날 때면 습관처럼 점수를 매깁니다. 예전 호스트들을 떠올리며 그때와 비교하곤 해요. 그런데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좀처럼 과거와 현재를 저울질하지 않았습니다. 하루하루가 즐거워 추억에 잠길 필요가 없었죠. 학교에 가면 한국을 좋아하는 멕시코 친구들이 가득하죠. 집에 오면 따뜻한 집밥을 나눠 먹을 호스트 가족 있어요.


물론, 초반에는 행동 하나하나가 조심스럽습니다.  처음 집에 들어서는 순간, 신발을 신고 들어갈지 벗고 들어갈지도 망설여집니다. 쓰레기는 분리수거를 해야 하는지, 이불은 꼭 반듯하게 개야 하는지, 냉장고 문을 자주 열어봐도 되는지, 식사 예절은 어떻게 되는지 등 사소한 부분이 신경 쓰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호스트 가정에 완전히 녹아든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거예요.


저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이 가족의 일부가 되었구나, 이 가족은 제 가족의 일부가 되었구나,라고 느꼈던 순간이었죠.

바로, 세면대 거울 앞에 있는 플라스틱 컵에 제 칫솔을 꽂을 때였습니다.


어찌 보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는 것 같아요.

화장실 휴지는 몇 칸을 뜯어야 알맞은지, 거실과 주방 전등 스위치는 어디에 있는지, 샤워하기 딱 좋은 온도는 어떻게 맞추는지, 식기류를 어느 서랍에 보관하고 있는지. 오롯이 이 집에서만 쓸 요령을 익히며 한 가정에 녹아듭니다. 그러고 나서 더는 익힐 게 없을 때쯤, 느닷없이 찾아온 이별의 순간에 깜짝 놀랄 거예요. 벌써 떠나야만 한다니.


이게 참 어렵습니다.

호스트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때 머물 기간을 정해야 하거든요.

넉넉하게 지내기로 했는데 호스트가 별로면 어쩌죠? 반대로, 짧게 머물기로 했는데 떠나기 싫으면 어쩌죠? 만나 보지도 않은 호스트를 앞두고 얼마만큼 지내겠다고 말하는 게 참 애매합니다. 약속을 깨고 도망갈 수도 없고, 다음 여행자가 오는 데 버티고 있을 수도 없어요. 융통성 있게 며칠 정도야 바꾸겠지만, 한계가 있죠.


그런 점에서 이번 멕시코 워크어웨이는 실패한 것 같습니다. 왜 2주만 머문다고 했을까요. 왜 다음 일정을 미리 잡아두었을까요. 한 달을 머물러도 모자랄 곳이었습니다. 저 자신에게도, 멕시코 가족에게도, 학생들에게도요.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여행에서 이별의 순간이 다가오면, 그 속담을 따라 이름을 남깁니다. 우리가 죽는 건 아니지만, 해외에서 만난 인연은...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요. 제가 그 나라에 다시 가거나, 외국인 친구가 한국으로 오지 않는 이상 만날 수 없어요. 아니면 우연찮게 다른 나라에서 같이 만나던가요.


그래서 저는 이름을 남깁니다.

제 이름을 써서 주는 건 선물이라고 할 수 없잖아요. 하하. 외국인 친구의 이름을 한글로 적어줍니다. 그 밑에 제 이름을 도장처럼 남기는 거죠.


동시에 저는 그 나라 국기에 친구들의 메시지를 받습니다. 선물을 주면서 선물을 받는 거예요. 단, 조건이 있어요. 펜을 잡은 사람은 반드시 모국어로 써야 합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게요.


사람들은 여행을 다니면서 똑같은 종류 기념품을 모으곤 하잖아요. 이를테면, 냉장고 자석이나 스타벅스 컵, 엽서, 우표 등을 하나씩 사서 자신의 집에 진열합니다. 여행한 나라와 기념품이 늘어날수록 작은 갤러리를 소장하는 기분이 들죠.


저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기념은 국기입니다.

그 나라 국기와 네임펜을 꺼내 들고는, 당신의 메시지를 평생 간직할 테니 딱 한 마디만 써달라고 부탁해요. 많은 사람을 여행하다 보니, 개개인이 소중한 존재이며 기억하고 싶은 까닭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친했던 사람의 얼굴과 이름이 차츰 흐려지곤 하잖아요.


이렇게 모은 국기와 그곳 사람들의 메시지가, 저에게는 가장 소중한 기념품입니다.

세상에서 단 하나밖에 없어요.


아 참. 한국이나 미국에서는 국기에 무엇을 쓰는 행위가 훼손으로 여겨질 수 있어요. 대부분 국가에서는 상관없습니다. 국민 모두가 국기를 신성하게 여기는 나라가 생각보다 많이 없어요! 그래서 국기를 파는 곳을 찾기도 매우 힘들죠.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에도 팔긴 하는데, 그건 크기가 너무 작거나 질이 별로더라고요. 저에게는 현지인이 쓰는 튼튼한 국기가 필요한데 말이죠.



해당 이야기는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하여 독립출판을 위한 발돋움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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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년 동안, 열두 번 퇴고했던 만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입니다!

*브런치에 있는 여행기와 무엇이 다른가요?

브런치에 쓴 여행기는 구어체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서 이동 중에 빠르게 읽으실 수 있도록, 최종 원고에서 핵심만 도려냈습니다.


책은 문어체입니다. 너무 감성적이지 않고, 담백한 문체입니다.

또한, 제 브런치에서 볼 수 없는 세부 묘사·사진·에피소드를 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브런치 구독자님께 바치는 영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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