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여행하다 보면,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사람을 만나는 여행은 항상 행복하지만은 않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스트레스에서 꽤 많은 경우가 사람들로부터 오잖아요?
그것처럼 저도 여행하다 보면 사람으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서로 살아왔던 문화가 달라 발생하는 경우죠.
저번 이야기는 멕시코 대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했던 경험이었습니다. 그들에게 한국 문화를 소개했죠. 그런데 1~2학년들 앞에서는 조금 힘들었어요. 그들의 영어 수준이 원활한 소통을 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까닭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안디가 나서 해결했어요. 제가 한 문단 정도 영어로 설명하면, 그녀는 스페인어로 통역했습니다. 덕분에 영어에 서툰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했죠.
하지만 안디 때문에 곤란했던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어느 날 안디는 저에게 주말여행을 제안했습니다. 자신의 친구가 알쿨코라는 마을에 살고 있으니 함께 가지 않겠냐고요. 뜻밖의 여행 제안에 저는 선뜻 응했습니다. 유명 관광지가 아닌, 현지 사람들이 사는 마을에 지내며 뜻깊은 시간을 보냈어요. 안디 친구의 부모님은 저에게 애벌레가 들어 있는 담금주까지 권했다니까요!?
문제는 그날 밤이었습니다.
"안디. 내 방은 어디야?"
잘 시간이 다가오자 안디에게 물었습니다. 그러곤 청천벽력 같은 대답이 돌아왔어요.
"우리 같은 침대에서 자야 해."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었습니다. 그녀는 덧붙였어요.
"멕시코에서는 남자든 여자든 서로가 친하면 연인 사이가 아니라도 같은 침대에 잘 수 있어. 한국이랑 좀 다르지?"
"안디. 나는 절대 너랑 같은 침대에서 잘 수 없어!"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껴 대답했어요. 화가 머리 끝까지 났습니다.
"그래? 다른 방은 없을 텐데. 그럼 거실에 있는 소파에서 자야 해."
그녀는 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대답했어요.
안디는 예전에 한 번 한국에서 봉사 활동을 했다고 했어요. 그때가 부산이었다나. 꽤 긴 시간 지내면서 한국 문화를 어느 정도 배웠을 겁니다. 그만큼 그녀는 한국 문화를 잘 아는 멕시코 사람이었어요.
'침대를 같이 써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를 초대했다고? 남자 친구도 있는 네가?"
배신감이 몰려왔습니다. 우리는 친한 사이도 아니었어요. 친해지기 위해서 주말여행을 따라나선 거지, 이미 친한 사이가 아니었습니다.
이 해프닝은 안디의 친구가 남는 방을 마련해주어 해결되었답니다.
안디는 수업 일정표를 깔끔하게 만들어 저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딱 하나 빠진 정보가 있더라고요. 바로 수업을 진행할 교실의 위치였습니다. 결국, 발표가 있기 전, 매번 안디에게 물어보아야 했죠. 그녀의 대답은 늘 같았습니다.
"잠시만. 교수님께 물어보고 다시 연락 줄게."
제 노트북에는 이미 완성된 자료가 있고, 그동안 어느 정도 말하기 연습도 해두었기에 언제 어디서든 발표가 가능했어요. 하지만 노트북과 빔 프로젝터를 설치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5분 전까지 교실에 가야 합니다. 혹시 모를 돌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고요. 수업 전 학생들과 가벼운 이야기를 하며 친해질 수도 있잖아요.
이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디는 수업 직전까지 교실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발표 하루 전, 두 시간 전, 한 시간 전, 삼십 분 전, 십 분 전. 이렇게 메시지를 여러 통 보내도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어요.
"아 참! 교수님께 물어볼게!"
저는 그녀가 일부러 알려 주지 않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매번 까먹어서, 진짜 몰라서 알려 주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이 성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왜 진작 교수에게 연락을 하지 않는 걸까요? 왜 매번 수업 직전,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일을 해치울까요. 발표자로선 조바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제가 터졌습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저는 그녀에게 크게 화를 냈어요.
여느 때처럼 저는 학생들 앞에서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안디는 옆에서 통역을 도왔고요. 어느덧 하루의 마지막 발표가 끝난 뒤, 저는 교실 밖으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안디가 사라졌어요. 수업을 도와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복도를 걷다 보니, 엥? 안디는 바로 옆 교실의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무어라 말하고 있었습니다. 느낌이 싸했어요.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방금 마지막 수업을 끝낸 저를 향해, 어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습니다.
순화해서 말해 꿀밤을 주고 싶었습니다. 그녀는 한마디 말도 없이 제 발표를 소개했어요.
저는 안디를 불러냈습니다.
"안디.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방금 수업이 마지막 일정이었잖아."
"아 맞아. 그런데 발표 하나가 새로 잡혔어. 저번에 수업 하나가 취소됐잖아? 그게 지금 시간으로 대체된 거야."
"그럼 미리 말했어야지! 그것도 모르고 나는 퇴근 시간에 맞춰 저녁 약속도 잡았는걸? 도대체 너는 일 처리를 왜 이렇게 닥치는 대로 하는 거야!"
조금씩 화를 내다보니까, 저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쌓인 울분이 끓어올랐어요.
"정말 미안해. 내가 학생들한테는 잘 둘러댈게. 어서 가 봐. 진심으로 미안해."
제가 화를 낸 보람도 없이 그녀는 빠르게 사과했습니다. 무안할 정도로 정중한 사과였어요.
교실 창문 사이로 저를 지켜보고 있는 학생들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만약 이대로 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저를 도망자로 낙인찍지 않을까요? 어쩌면 한국 사람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결국, 한 번 더 발표를 진행했습니다. 대한민국 국가대표라는 마음으로 열심히 했어요. 저녁 약속은 어쩔 수 없이 미뤘고요.
호스트 가족과 저를 연결해주고, 수업 일정을 마련해준 안디.
저는 그녀가 없었다면 분명 멕시코 대학교에 올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좋은 가족과 친구들을 평생 모르고 지냈겠죠. 아무런 조건 없이 도와준 그녀에게 정말 고맙습니다. 하지만 예상치 않은 문제로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니 저도 모르게 화가 났습니다.
여행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친해지면 항상 행복했어요. 슬픈 순간은 오직 그들과 헤어질 때였죠. 하지만 화가 난 적은 처음입니다. 여행에서 사람 때문에 화가 나는 경우는 대게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옵니다. 이를 테면, 인종 차별·소매치기·호객행위 등 무례한 행동을 하는 낯선 이가 종종 있죠.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분노를 느끼다니.
좀처럼 여행에서 느낄 수 없는 감정인 것 같습니다.
(음.. 동행이 있는 여행이라면 꽤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늘 혼자 여행했습니다. 흑흑)
서로 살아왔던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그런 거겠죠?
반대로 제가 한국에서 가져온 문화로 상대를 기분 나쁘게 했던 적은 없을지 되짚어봅니다.
가령, 한국에서는 몸이 살짝 부딪혀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가잖아요? 몇몇 국가에서는 반드시 "실례합니다"라고 해야 합니다. 평소처럼 그냥 지나갔다가는 상대에게 불쾌감을 줄지도 몰라요.
해당 이야기는 2020년 3월 중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하여 독립출판을 위한 발돋움을 시작합니다.
지난 2년 동안, 열두 번 퇴고했던 만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물입니다!
*출판 일정
2020년 3월 중순: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 시작
2020년 4월 중순: 크라우드 펀딩 후원자분들에게 우선 배송
이후 독립 서점 순차적 입고
*브런치에 있는 여행기와 무엇이 다른가요?
브런치에 쓴 여행기는 구어체입니다.
구독자분들께서 이동 중에 빠르게 읽으실 수 있도록, 최종 원고에서 핵심만 도려냈습니다.
책은 문어체입니다. 너무 감성적이지 않고, 담백한 문체입니다.
또한, 제 브런치에서 볼 수 없는 세부 묘사·사진·에피소드를 더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대로 브런치에 다시 올리겠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들여 제 글을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