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들은 왜 옷을 입고 수영을 해요?"
멕시코 대학교에서 두 가지 수업을 했습니다.
하나는 바로 전 이야기에서 나왔던 한국어 수업이었고요.
다른 하나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는 발표였어요.
매일 똑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열리는 한국어 수업과 달리,
한국 문화 발표는 제가 여러 반을 돌아다니며 하는 특강에 가까웠습니다.
문화 발표라고 해서 특별히 어려운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대로 발표를 구성하면 됐어요.
한국의 인구·종교·북한과의 관계 등 기본적인 정보는 살짝 소개하고,
세계 최고의 인터넷 속도와 pc방·먹방·배달 음식 등 학생들의 눈길을 끌만한 소재를 더 많이 다루었죠. 또, 한국의 자살률이나, 한국 청소년들이 얼마나 공부에 시달리는지도 이야기했어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야간 자율 학습의 개념까지도요. 그리고 공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직장인이 돼서도 퇴근하지 못하는 일벌레가 된다고 덧붙였습니다.
음. 너무 부정적으로 말한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느 정도 사실입니다.
적어도 2016년에는 세계 2등을 했어요. 연간 노동 시간이라는 종목에서요!
“여러분. 하루는 제가 뉴스 기사를 봤어요. 2016년 경제 협력 개발 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노동 시간은 2,069시간으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2위를 차지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일을 많이 하는 나라 중 하나죠. 그런데 1위가 어딘지 아시나요?”
학생 대부분은 일본이라고 대답해요.
정답은 멕시코입니다.
학생들은 화들짝 놀랍니다. 자신의 나라가 노동 시간이라는 종목에서 금메달(연간 2,255시간)을 목에 걸었는지 몰랐나 봐요. 제 멕시코 친구는 여기 의사들도 '투잡'을 뛴다고 해요.
한국과 멕시코.
두 나라는 정말 다른 나라잖아요. 피부색도, 문화도, 언어도, 무엇 하나 닮은 구석 찾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과도한 노동이라는 부분에서는 쌍둥이처럼 닮았습니다. 우리들은 왜 이렇게 일을 많이 할까요? 심오한 주제지만 학생들과 의견을 주고받으니 흥미롭습니다. 최저 임금이 너무 낮아서 일을 많이 한다고들 하는데, 그 밖의 이유가 또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자, 이제 분위기를 바꿔 볼까요?
이렇게 심오한 이야기는 온종일 해도 부족합니다.
멕시코 학생들의 반응이 가장 좋았던 것은 바로 한국의 해수욕장 사진이에요.
아래 사진 띄어 놓고 저는 학생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 이 사진은 여름에 한국인들이 해수욕을 즐기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없나요?"
제 질문을 들은 학생들은 눈이 빠져라 사진을 살펴봅니다.
대부분은 정답을 몰라요.
바로, 옷을 입고 수영을 한다는 점입니다.
그제야 학생들은 아~ 하고 탄식합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왜 다들 옷을 입고 수영을 하는 걸까? 호기심이 가득한 눈동자로 저를 쳐다봅니다.
"한국인들은 보통 옷을 입고 수영해요. 왜냐면 자신의 몸을 드러내기 부끄러워하거든요. 여자가 비키니를 입거나 남자가 웃통을 벗고 다닌다면, 몸매에 어느 정도 자신 있기 때문이에요. 아, 물론 안 그런 사람도 있어요. 저는 남 시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훌러덩 벗고 놀아요. 그런데 제 친구들이 항상 말리더라고요. 너는 몸도 안 좋은데 왜 벗고 그러냐면서요. 하하."
멕시코 친구들이 K-pop 영상 속에서 보았던 한국의 실제 모습이었습니다. 한국인 모두가 한류 스타처럼 완벽한 몸매를 가질 순 없어요. 다수의 한국인은 평범한 학생이고, 직장인이고, 서민이죠. 시간을 들여 연예인급 몸을 만드는 극히 적은 수의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각자 다른 방법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인생을 즐깁니다.
하지만 해변이라는 무대에서는 지난 계절 동안 열심히 몸을 가꾼 사람만이 노출을 즐기는 이상한 장소가 되었어요. 똥배가 있건, 식스팩이 있건, 남의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자기 자신과 가족, 친구들에게 온전히 집중하는 외국과 사뭇 다른 풍경입니다.
자기 자신이 아니라 남을 의식하고 사는 한국인의 생활.
멕시코 학생들은 이 부분을 가장 흥미로워했습니다.
어쩌면 남을 의식하고 사는 한국인의 행동이, 자신을 더 엄격하게 관리하도록 만드는 유인이 아니었을까요? 그 덕에 외국인은 이런 말을 하죠.
"동양인을 봤을 때 한국인을 구별하는 건 어렵지 않아. 예쁘거나 잘생기거나, 몸이 좋으면 한국인이야."
수업 시간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으면 저와 학생들은 복도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아무래도 강사와 학생이라는 수직적 관계보다는, 사석에서 친구 대 친구로 만나는 게 훨씬 달가웠어요. 더 달가운 일은 꽤 많은 학생이 함께 사진을 찍자고 부탁했다는 건데요. 그냥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로 먼저 다가오는 친구가 많았습니다. 이 순간만큼은 월드 스타가 된 기분입니다!
대한민국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