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날 우리를 도와준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
아이는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MC 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사고가 난 곳에서 차로 보통 20-30분 정도 걸리는 곳이다. 가는 길에 신호나 차가 막히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다. 하지만 사고가 커서 그런지 아니면 여기 네덜란드 시스템이 그런건지, 병원에 가는 동안 모든 신호가 통제되었고 다른 차들은 다들 서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가 나오는 길목 앞에 경찰 오토바이가 다른 차들을 막고 서 있었고, 우리는 텅 빈 도로를 계속 초록불 신호를 받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구급차가 좌회전을 할 때에는 좌회전 하는 길목에 기다리고 있던 다른 경찰 오토바이가 길을 에스코트했다. 하늘에 헬리콥터가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중에 남편이 신문에 난 사고 기사를 보더니, 그 날 헬기도 떴다고 했다. 난 아직도 그 사고 기사를 읽지 못한다.)
대통령이 갈 때 이렇게 갈텐데,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또 울었다. 울다 보니 병원에 도착했다. 나는 눈물을 닦고, 아이 구급차 뒤에 서서 아이가 내리길 기다렸다. 누군가 나에게 아이는 진정제 같은 주사를 맞아 잠을 잘 수도 있는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구급차 문이 열리고 아이가 탄 침대가 내려왔다. 한 번 더 눈물을 닦았다. 나는 아이에게 늘 말하던 톤으로, 아니 조금 더 높은 톤으로 아이 이름을 부르며, "엄마 여기에 있어. 엄마가 기다리고 있었어."라고 말했다. 아이는 날 보더니 다시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누가 아이는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내 목소리를 듣자 마자 바로 눈을 뜨고 나를 찾았다고 했다. 마음이 아팠다. 아이는 내 목소리에 반응하고, 내 말만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아이 손을 잡고 병원에 들어갔다.
복도를 따라 가다 어떤 병실 문이 열렸다. 크고 환한 병실 안에는 20-30명 정도 되는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모두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방 가운데에 커다란 CT 촬영 기계가 보였다. 의사들이 많이 있는 것을 보자 나는 마음이 좀 안심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그 때 어떤 여자 의사(혹은 간호사)가 내게 엄마는 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보고 강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다시 눈물을 닦았다. 아이는 계속 나를 보고 있었다. 여러 명의 의사가 나에게 자신의 이름과 전공을 이야기하며 질문을 했고, 나는 대답했다.
의사들이 아이 눈에 불빛을 비춰 보고, 아이에게 손가락과 발가락을 움직여 보라고 했다. 아이는 힘들어하며 조금씩 움직였다. 아이는 바로 CT를 찍을 준비를 했다. 누군가 내게 아이에게 CT 찍는 것을 말해달라며, 아이가 CT를 찍을 동안 사람들은 옆 방에 들어가는데, 내게 여기 있을 것인지 같이 갈 것인지 물었다. 나는 아이와 함께 있겠다고 했다. 그러자 납으로 만든것 같은 아주 무겁고 붉은색 옷을 가져와 내게 입혔다. 목에도 무거운 뭔가를 둘렀다. 방사선을 막는 옷인 것 같았다.
저기 내 아이는 맨몸으로 누워 찍는데, 나 혼자 이런 옷을 입는 것이 미안했다. 옷을 대충 두르고 CT 기계에 누워 있는 아이 손을 잡았다. 나는 아이에게 "이제 동그란 통 속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을 거야. 사진 찍을 때 소리가 윙윙 나는데, 하나도 아프지 않아"라고 이야기했다. 아이는 계속 나를 부르고 내 손을 꽉 잡았지만 울지 않았다. 나는 평상시처럼 "우리 아기 아주 잘한다"고 말했다.
큰 원통을 몇 번 왔다갔다 하며 아이는 CT를 찍었다. CT 촬영이 끝나자 사람들이 아이를 침대로 옮기려고 아이 목이 움직이지 않게 조심히 고정하는데, 누군가 말했다. "His neck is O.K." 이 말이 내 귀에 꽂히듯 들렸다. 나는 병원에 오며 아이가 잘못되면 어쩌나, 머리나 목이, 척추가 다쳤으면 어쩌나 걱정을 정말 많이 했다. 어디 하나 움직이지 못해도 이상하지 않을 사고였다. 한 의사가 내게 오더니 지금 CT로는 머리와 목이 괜찮다고 했다. 내가 척추는 어떻냐고 물었다. 영어로 척추가 생각이 안나, 내 척추를 가리키며 'long bone'이라고 했다. 의사가 척추도, 갈비뼈도 괜찮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는 폐와 간을 다쳤다고 했다. 내부 출혈과 손에 골절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오늘 high care unit으로 옮겨 방에 상태를 본 후에, 수술이 필요한지 아닌지 판단하겠다고 했다.
아이는 병원 3층의 high care unit으로 올라갔다. 나는 너무 너무 걱정이 되었지만, 일단 아이의 머리와 목, 척추가 괜찮고 조금이지만 손과 발을 움직일 수 있고, 사고 이후 눈이 계속 빛나고 있어서 마음이 조금 놓였다. 3층 병실에 준비된 아이 침대에는 소피아라고 쓰여진 작은 원숭이 인형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는 내게 물이 먹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배가 고프다고 했다.
사고가 나기 전 아이와 나는 마켓에서 키블링이라 불리는 생선튀김을 사먹고 물은 마시지 않았다. 아이는 학교에서 점심 때 마지막으로 물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날 급히 수술을 하게 될 수도 있어서 아이는 무엇을 먹을 수도 마실 수도 없었다. 이걸 아이에게 이해시키는 것이 혼자 구급차를 타게 하는 것보다, 난생 처음 큰 통에 들어가 CT 촬영을 하도록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웠다. 아이는 내 말을 듣고 그럼 자기는 저녁을 못 먹는 것이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몇 번이나 물었다.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긴 했지만 이 날 저녁에는 정말 집착 수준으로, 자신이 먹지 못하면 당장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먹지 못한다는 것에 아이는 무척 불안해했다.
아이는 사고 이후 계속 알몸으로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다. 춥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지만, 아직 검사할 것이 많아 환자복을 주지 않는건가보다 생각하며 요청하지 않았다. 곧 아이 손등과 발목에 길고 굵은 주사바늘이 들어가더니 여러 가지 약이 아이 몸 속으로 들어갔다. 수액과 여러 진통제였다. 여러 명의 의사와 간호사가 다녀갔고, 아이 손가락 여기 저기를 찌르며 피를 뽑았다. 손가락에는 심장박동과 호흡 등을 체크하는 집게를 달고, 가슴에는 전기가 통하는 스티커를 여러 개 붙였다. 아이는 구급차부터 하고 온 산소마스크를 벗고 콧줄을 달았다. 아이 오른쪽에는 심장과 호흡을 보여주는 모니터가 삐삑 소리를 내며 번쩍거렸고, 왼쪽에는 여러 약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렇게 누워았는 아이를 보니 아이가 정말 아파보였다. 아이는 계속 목이 마르다고 했지만 물을 줄 수 없었다. 스폰지로 물을 적셔 입 안을 적셔주는데, 입 안에 피딱지가 가득해 입을 벌리기도 어려웠다.
간호사들이 오며 나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대답했다. 나이 든 간호사가 나에게 저녁이 필요한지 물었다. 자신이 준비해 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대답했다. 아이 침대로 여러 검사 장비가 왔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엑스레이를 찍었다. 또 뭔지 모를 검사를 많이 했다. 모두 이동 없이 아이의 침대에서 이루어졌다. 병원 시스템이 잘 되어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침대에 누워 어느새 잠이 들었다.
모니터에 표시되는 아이의 심장과 호흡은 무척 안정적이었다. 아이의 머리와 목, 척추 모두 무사했다. 간과 폐를 다치고 손가락이 골절되었다. 평소였으면 간과 폐를 다친 것이 정말 큰 일이었을텐데,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이만하길 천만다행이라고, 너무 감사하다고 마음 속으로 몇 번씩 기도를 했다. 나이 든 여자 간호사가 식빵과 햄, 치즈, 잼을 담은 접시를 내게 가져왔다. 나는 입맛도 없고 배가 고프지도 않았다. 아이는 그렇게 먹고 싶어해도 물 한 잔 마시지 못하는데, 나 혼자 먹는 것이 너무 미안했다.
저녁을 안 먹고 있었더니 아까 그 간호사가 와서 먹고 싶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했다. 간호사는 "먹고 안 먹고는 너의 선택이야. 하지만 아이는 오늘 밤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엄마가 필요할거야. 아이를 돌보려면 엄마는 에너지가 있어야 해."라고 말했다. 간호사가 가고 난 뒤 나는 소가 풀을 뜯어 먹는 것처럼 빵을 우걱우걱 먹었다. 간호사는 나의 선택이라고 했지만, 나에게는 선택이 없었다.
아이는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눈만 뜨면 뭔가를 먹고 싶어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아이가 점점 화가 나는 것이 보였다. 아무렴, 먹지 못하면 화가 나는 법이다. 나는 아이의 화가 건강하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아이가 화를 내자 이상하게 안심이 되었다. 아이는 화를 내다 다시 잠이 들었다. 아이가 잠이 들면 나는 삑삑 소리를 내며 요란하게 움직이는 심장박동과 호흡 측정기를 뚫어지게 봤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것이 있으면 당장이라도 잡아 낼 기세로 나는 계속 화면을 봤다. 모니터는 번쩍번쩍 삑삑거리며 내게 괜찮다고 쉴새 없이 말해줬다. 신호는 요란하게 나를 위로해줬다.
새벽 1시가 좀 넘어 남편이 왔다. 아이는 자고 있었다. 나는 아이를 사이에 두고 사고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했다. 병원에서 들은 것도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했다. 남편은 별 말 없이 들었다. 남편도 많이 놀랐을텐데, 자는 아이의 얼굴을 보고 좀 안심을 한 것 같았다. 아이는 코가 막혀 숨 쉬기가 꽤 불편해 보였지만, 애써 열심히 숨쉬며 깨지 않고 잤다.
간호사에게 부탁했더니 남편에게도 내게 주었던 반만 펴지는 파란 의자와 이불을 가져다 주었다. 간호사는 한 사람은 아이 옆에서, 다른 한 사람은 환자가 없어 비어있는 공간에서 자라고 했다. 나는 신경이 너무 예민하고 날카로워 혼자 쉬고 싶었지만, 아이를 못 보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나는 아이 침대 옆에 파란 의자를 펴고 이불을 덮었다. 아이 옆에서 번쩍거리는 화면을 계속 봤다. 눈이 아팠지만 내가 눈을 감는 동안 혹시 이상한 신호가 나오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신호가 흔들리면 붉은 불이 무섭게 깜빡거렸고, 간호사가 왔다. 새벽에 어설피 잠이 들었다 깼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사고가 난 날이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