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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ㅁㅇㅈ Sep 22. 2021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이 아일랜드 즐기는 방법

아일랜드와 한국, 다르면서 같은 것

아일랜드에서  가난한 외국인 유학생이었지만 하고 싶은  많았다. 오늘은  년에   번뿐인 Culture Night이었다. 컬처 나잇이란 아일랜드에서 다양한 문화 가능성을 체험할  있는 축제와도 같은 것이었다. 더블린 시내 전역에서 무료로 즐길  있고, 심지어 도시로 가는 버스와 트램도 무료! 오전부터 진행하는 행사들도 많지만 ‘문화의 답게 대부분 오후 5시부터 시작되었다.


두 다리와 저 검은 지도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가난한 유학생에게 무료로 즐길 수 있는 행사가 있다니 놓칠 수 없어, 현지 지사장님과 만나 더블린 구석구석을 돌아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노트 꾸기 사건’의 발단이 시작되었다. 약속은 오후 2시 트리니티 컬리지 앞에서였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약속 시간까지 시간이 꽤 남아서 근처 샵을 구경 중이었는데 마침 노트를 발견해 사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 귀에 들려오는 어마무시한 가격.

"8.5 Euro"


“Sorry???" 난 내 귀를 의심했고 너무 놀란 나머지 노트를 제자리에 돌려 두고는 엽서 한 장 사지 못하고 달아나듯 나와버렸다. 한국 집에 넘쳐나던 게 공책이고, 새로 사더라도 제법 두꺼운 스프링 노트도 3천 원이면 살 수 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학원 리셉션에 도움을 청해 보기로 했다. 혹시나 학생들을 위해 이면지를 마련해 두었다거나 노트 한 권쯤은 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부탁하러 온 입장이니 호흡 한 번 크게 쉬고 들어가기로 하자.

리셉션에는 마침 학원에 처음 왔을 때 도와준 스텝 캐롤리나가 있었다. 영어는 존댓말이 없지만 최대한 공손하고 예의 있게 물었다.

“저기 혹시 노트 좀 받을 수 있을까요? 그냥 스터디 노트 같은 거요. 여기선 노트가 너무 비싸거든요.”


그러자 캐롤리나는 웃으며 지도를 꺼내 들었다.

"여기 근처에 2유로 마트가 있어. 거기에 있는 것들은 모두 2유로야.”


실로 언빌리버블이었다.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지도를 펼쳐가면서까지 위치를 알려준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연발하고 2유로 마트를 찾아 나섰다. 그녀가 아니었으면 난 아마 울며 겨자먹기로 10유로 가까이되는 노트를 사고 말았거나, 한국에 다른 옷가지들과 함께 노트 몇 권을 부탁하고는 계절이 바뀌도록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바보같이 팬심만 잔뜩 사 오고, 노트는 여기서 사려고 했는데.. 내 계획에 노트의 사악한 가격은 없었다.


아무쪼록 학원에서 5분 거리에 있는 2유로 마트는 천국이었다. 마치 한국의 다이소 느낌이었는데 각종 생활용품에서부터 다양한 식료품까지 거의 모든 게 2유로였다. 노트 한 권에 만 원이 넘던 가게에서 위축된 심장이 여기서 다시 쿵쾅쿵쾅 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둘러보다 괜찮아 보이는 5~6권의 미니 노트를 단돈 1.5유로에 사게 됐다. 역시 모르면 혼자서 끙끙 대는 게 아니라 물어보는 게 답이구나.


내게 한줄기의 빛과도 같았던 2유로 마트


노트 꾸기 사건은 이렇게 일단락되고, 약속시간이 되어 지사장님과 만나 처음으로 한인마트도 가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변덕스러운 날씨는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지만 밥은 하루 만에 그리웠다. 따듯한 밥과 된장찌개가 얼마나 그립던지. 그리고 한국에선 한 달에 한두 번 먹을까 말까 했던 라면이 너무 먹고 싶었다. 트리니티 컬리지를 지나 복잡한 쇼핑가 오코넬 스트릿을 빠져나오면 조금 한적한 곳에 ‘코리아나’라고 적힌 간판의 한인마트가 보였다.


마트에 들어선 순간, 선미의 ‘24시간이 모자라’가 들리는데 얼마 만에 듣는 한국 노래인지 웃음이 났다. 그리고 눈에 보이는 반가운 한국 제품들. 한국에선 쳐다보지도 않았던 쌀포대에 시선이 머무르고, 햇반에서부터 3분 요리 시리즈들, 삼각김밥 등 즉석식품들 하나하나에도 시선이 갔다.


고심 끝에 햇반 2개와 라면 2봉을 데리고 왔다. 역시 한국인은 밥심 그리고 라면심이지.


하늘에 조금씩 어둠이 내리자 곳곳에 사람들도 모여들기 시작했다. 더블린의 건축 공간을 건축물에서부터 도시 디자인, 풍경까지 다룬 전시회도 있었고 아일랜드 대표 소설가인 제임스 조이스의 방을 주제로 한 곳도 있었다. 아일랜드 관련 다양한 디자인 제품을 파는 가게도 있었는데 내가 이 나라를 떠나기 전, 다시 오기로 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가본 곳들 중, 제일 여운이 남았던 곳은 마지막으로 간 전시회였는데 첫인상으로 따지면 제일 별로였던 곳이었다.


처음엔 그냥 그저 일상 같은 사진들이 걸려 있길래 이게 무슨 갤러리라는 걸까 했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아, 이게 아일랜드 가정의 일상이구나, 삶이구나 싶었다. 이웃 또는 친척들을 불러 모아 홈파티를 하는 사진이나 친구들끼리 한껏 멋 내고 드레스업 한 사진을 보면 우리 문화와는 참 다르구나 느꼈지만 아이들이 꾸밈없이 놀이터에서 놀고, 맑은 날이면 단지 내에 빨래를 널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흑백사진을 보고 있으니 우리 부모님의 옛 시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와 다르면서도 참 다를 게 없구나 느꼈다. 일상의 순간을 모으면 삶이 되듯, 일상을 기록한 사진들을 모아두니 제법 그럴싸한 전시회가 되었다. 결국 아일랜드도 사람 사는 같은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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