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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 Jeongseon Sep 17. 2023

기브앤테이크

유월엔 생일이 있다. 생일이면 오갈 선물이 부담스러웠다. 받을 때는 기쁘지만 이 사회는 기브 앤 테이크가 되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된다. 오랜 세월 그 간단한 사실을 모르고, 주면 주는 대로 받기만 해왔던 나는, 그게 누군가에겐 매우 속상한 일이라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반드시 줬으니 그만큼 받아내야 한다는 마음이 아니란 걸 안다. 하지만 받는 데 익숙해져서 무감해져 있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 내가 그 문제의 사람이었다.


요 몇 년간 여러 가지 사정으로 직장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는 매우 가난해진 상태이다. 모든 예금을 다 까먹고 빚을 진 채 한 달, 한 달을 이자만 겨우 갚으며 살아가고 있다. 해서 누군가의 생일이 오는 것도, 각종 경조사가 닥치는 것도 무서웠다. 최소한의 사회생활을 위해서는 최소한의 도리라는 게 통용된다. 그걸 치르는 게 두려웠다. 누군가 아끼는 사람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넘겨야 하는 시간은 생각 외로 씁쓸했다. 줄 수 없는 게, 그게 내 가난 때문인 것이 부끄러웠다.


생일이 시작된 자정이 조금 지난 시간에 주로 사용하는 SNS에 생일 선물 보내지 말고 서로 주고받지 말고 축복만 빌어달라고 적었다. 그 축복이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퍼져나가길 기원했다. 감사하게도 다정하고 착한 사람들이 축복을 빌어주고 축하를 해주고 마음을 보내왔다. 그리고 되받는 게 포기됐을 그 상태를 가볍게 치워버리고 다정한 선물을 보내왔다. 마치 “닥쳐, 네 생일 선물은 내가 챙긴다. 후훗.” “생일은 받으라고 있는 날이야. 던진다, 받아랏.” 이런 웹툰 대사 같은 게 머리에 빙글빙글 돌았다.


평소와 같이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운동을 하고 돌아와 앉아 있으려니 뱀장어가 바닥부터 흙탕물을 일으키듯 마음이 흔들리며 흐려졌다. 괜찮다고 생각하려 했으나 괜찮지 않았나 보다. 생일이 되면 아팠다. 마음이 무너져 내리고 그간 메말라 바삭바삭 부서지는 시간의 축은 먼지처럼 부유하곤 했다. 사는 것에 의미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라 생일은 태어나 고통받기 시작하는 알람 같은 날이었다. 오래된 와인 열어 마셨다. 마시며 생각했다. 애썼구나. 오늘도 물론, 지금까지 나 참 많이 애썼구나. 그래서 내겐 여러 축하의 행동들이, 슬픈 중에도 일으키는 힘이 되기도 했다.


사람과의 관계를 잘 유지 하는 방법을 몰라서, 다가오면 다가오는 대로 기꺼워하고, 주면 주는 대로 온 마음을 다해 기뻐하고, 비밀을 듣지 않으려 애쓰고, 비밀을 들으면 함구하려 애썼다. 어떤 형태의 배신이든, 그게 비밀을 지키지 않았던 행동이든 이간질이든 아니면 비방이든, 내 선에서 최대한 선해하고, 선해서 안 되면 기다려라도 보고, 그래도 안 되면 떠나보냈다. 담백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간과한 게 있었으니, 이 나라는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 마음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언제나 돈이다. 마음의 크기 같은 것이야 그 값어치는 액수로 책정된다. 그러니 거금을 나름 투자했다 생각했던 상대가 되갚지도 않고 데면데면하면 싫겠지.


이것을 깨닫고부터는 나는 받는 것을 꺼리게 됐다. 정말로 나는 되갚을 능력이 안 되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게 된다고 해도 마음의 크기를 수치화하는 게 어색해서 꺼리게 됐다. 안 받고 속상하지 않은, 아예 처음부터 얽히는 게 하나도 없는 관계가 오히려 말끔하기 때문이다. 받았기에 어떻게든 되갚아야 한다는 중압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그러니 되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결국 탈락한다.


주고받는 기계적 관계에서 멀어진 사람들과의 교류는 평온하다. 한동안 받기만 해도 괜찮고 한동안 내가 주기만 해도 괜찮다. 하필 그의 생일에 땅을 파도 동전 한 푼 없어서 말로만 생일 축하한다고 말하더라도 다른 때 여유가 되는 어느 날 그에게 필요한 것을 보내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문제의 인간이란 것을 인정하지만 반성하지 않는다. 받기만 하는 인간이라 비난하면 비난받기로 한다. 어차피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주기만 하려 했고 주기만 했다. 그들은 때론 내가 무엇이든 줄 때면 그 가치가, 그 당시 내가 가진 전부인 걸 아는 사람들이다. 그게 천 원이든 백만 원이든, 전부였다고, 거기엔 계산 자체를 생각해 본 적 없다고 증언해 줄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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