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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마 Dec 10. 2019

#3. 멕시코에서 날씨가 가장 좋다는 그 곳.

떼끼스끼아빤 (Tequisquiapan)

따뜻한 날씨는 내가 멕시코를 좋아하는 이유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는 데다가 수족냉증까지 있는 나는 코끝을 스치는 바람이 차가워질 무렵부터 미리 겁을 먹을 만큼 겨울을 끔찍이도 싫어한다.

그래서인지 추위에 맞서기 위해 방한용품을 꽁꽁 싸맬 일이 없는 멕시코는 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살기 좋은 곳이었다.

물론 멕시코 시티에서도 겨울이면 길거리에서 패딩을 입은 사람들을 종종 마주치기는 했지만, 시티의 겨울철 최저 기온은 겨우 영상 5도 정도로 한국의 강추위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사실 패딩 입은 사람들을 볼 때면 늘 의아하기도 했다. 영상 날씨에 패딩이라니!)


내가 일했던 회사의 사장님 또한 날씨 좋은 나라에 살고 있다는 데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주말이면 이 나라의 온화한 기후와 여유로움을 만끽하기 위해 멕시코 근교에 있는 시골 마을의 별장으로 자주 떠나곤 했었다. 멕시코 시티도 날씨는 좋지만, 도시가 내뿜는 온갖 공해와 각종 소음들은 마음에 온전한 휴식을 가져다 주기에는 어딘가 마땅찮은 부분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는 별장으로 놀러 갈 때 가끔씩 몇 명의 직원들도 함께 데려가곤 했었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에게 주는 일종의 복지 같은 것이었는데, 본인이 직접 운전을 해서 별장까지 데려다주고, 방 한편을 기꺼이 내어주고 맛있는 밥까지 사주는 호의를 베풀었었다.

하지만 그것이 직원들의 마음에 와 닿는 복지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리 좋은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공짜로 먹는다 한들, 상사와 함께 하느니 혼자 방구석에서 아무거나 먹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그것도 주말에.

그래서 우리 회사 사람들에게는 별장 여행에 초대(?) 받을 때면 가지 않을 핑곗거리를 열심히 쥐어짜 내고는 했다.

하지만 당시 인턴이었던 나와는 별 상관이 없는 일이었었고, 멕시코 탐방에 늘 목말라 있던 나는 한 번쯤은 별장이 있는 그 동네를 놀러 가 보고 싶었다.




입사 후 2개월 정도 지났을 때였을까. 어느 날 나에게도 기회가 왔다.

사장은 대차게 인턴 기회를 만들어낸 것에 대해서 나에 대해 얼마간의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였는지 나와 몇 명의 직원들에게 주말 별장 여행을 제안한 것이다.

나는 제안을 거절할 어떤 이유도, 용기도 없었고 기쁜 마음으로 초대에 응했다.


별장은 멕시코시티에서 북서쪽으로 차로 두 시간 반 남짓 달리면 닿는 곳에 위치한 떼끼스끼아빤(Tequisquiapan, 이하 떼끼스)에 있었다.

떼끼스는 두어 시간이면 온 마을을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작고 고요한 곳으로, 멕시코 시티처럼 괴팍한 운전수도 없고 왁자지껄한 외국인 관광객도 없는 평온한 시골 마을이었다.

마침 운이 좋게도 멕시코의 가장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인 '망자의 날(Día de Muertos)'에 가게 되어 마을 곳곳에 예쁘게 수 놓아진 거리를 만날 수 있었는데, 이 장식들이 단조로운 작은 마을에 활기를 불어 넣는 듯 했다.


떼끼스끼아빤의 교회 (Parroquia Santa María de la Asunción)
떼끼스끼아빤의 거리


사장님은 몇십 년 전 이 곳에 처음 왔을 때 포근하고 맑은 날씨에 반해 별장을 사게 되었다고 했다. 멕시코의 그 어떤 곳보다도 날씨가 좋다나. 그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의 주인도 이 곳에 놀러 왔다가 정착하게 된 스페인 사람이었는데, 이 조그마한 마을은 잔잔하고도 강력하게 사람을 끌어 당기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았다.


마을도 마을이지만, 내게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별장이었다.

뒷 마당에서 보이는 모습도 아주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말 그대로 그림 같았다. 그 어떤 잡음도 없는 이 곳에서 해먹에 누워 한가로이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 빼고 모든 것이 멈춘 듯, 세상과 동 떨어져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가만히 있으면 도태되는 듯한 불안감을 주는 한국 사회에서 숨 가쁘게 달리는 것에 익숙한 나에게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 때리고 있어도 어떤 압박도 가하지 않고 무심히 내버려두는 그런 느낌이랄까.


별장의 뒷 마당에서 보이는 풍경

 

내가 나중에 대학을 졸업할 무렵 이 회사에서 정직원 자리를 제안을 받았을 때에 떠올린 멕시코의 수많은 그리운 이미지 중 하나가 이 풍경이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풍경 속 모습은 떼끼스이지만, 이 때 느낀 평온함은 내가 멕시코에 대해 느끼는 전반적인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멕시코의 따뜻한 날씨가 주는 매력은 기후 그 자체에 있다기 보다는 따뜻함 속에서 느껴지는 느긋함과 여유에 있었던 것 같다.


결국 나의 기억 속에서 미화된 이 곳은 스페인 식당 주인을 이끌었던 것처럼, 인턴 생활이 끝난 후에 다시 나를 멕시코로 이끈 강력한 이유를 만들어냈다.



*멕시코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면서 글을 쓰다 혼자 다시 꽂혀 버려 (..) 멕시코행 비행기표를 샀습니다.

이번엔 일주일 정도의 짧은 여행이 되겠지만 2020년의 멕시코 모습도 담아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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