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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수 Aug 07. 2018

9화: 범섬이 보이는 법환 올레길

문화예술창고 몬딱

#1. 범섬과의 귀한 인연   


 제주 서귀포 바다에는 서귀포항 전방 좌우 가까이로 섶섬, 새섬, 문섬, 범섬, 서건도가 줄지어 흩어져 있다. 범섬은 이 중에서 가장 크고 역사적,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는 섬인데, 나에게도 작지 않은 인연이 있다.  

   

법환포구 앞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호랑이를 닮아 보인다 해서 범섬 혹은 호도(虎島)라 불린다. 역사 기록을 찾아보면, 고려 말엽에 원나라 세력이었던 목호(몽골에서 온 목부)들의 난을 평정할 때 최영 장군이 이 범섬에서 마지막 전투를 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일견 고성(古城)처럼도 보이는데, 멀리서 보면 마치 큰 호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있는 모습과도 같아 호도(虎島)라고도 불린다.    

 

스마트폰 사진/범섬/김민수


나는 2017년에 이중섭 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선정되어 1년간 레지던시 생활을 하였다. 그때 스마트폰 사진 작업을 많이 하였는데, 범섬 쪽은 스튜디오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 당연히 촬영을 위해 자주 찾았다. 여기저기 출삿길에도 자주 지나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창밖으로 ‘범섬 안녕!’ 하며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고 다닐 정도로 나는 범섬이 좋았다.

  

스마트폰 사진/범섬/김민수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나서, 나는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로 이주하게 되었다. 이제 거리상으로도 조금 멀어져 범섬을 자주 마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어느 날 제주 KCTV 방송국에서 전화가 왔다.  

    

“작가님, 범섬 촬영에 함께해 주세요!”

“네? 범섬요?”    


방송국에서는 총 10부작의 특별기획 프로그램 <곶자왈 생명水를 품다>를 촬영하고 있었다. 그중 <7편 숲의 섬으로>는 서귀포의 부속섬인 ‘범섬, 섶섬, 문섬’의 자연 생태를 학술적으로 탐방하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에 식물학자 2명과 사진가 1명을 구성하는데, 사진가인 나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게다가 섬에 직접 오른다는 것이다. 현재 범섬은 문화재 보존지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만 올라갈 수 있다. 그런 특별한 곳에, 나에게 함께 가자고 한다.   

 

스마트폰 사진/범섬/김민수


그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기이한 흥분을 느꼈다. 1년을 그렇게 범섬에게 인사를 하고나니 이제 범섬이 나를 불러 주는 것이다. 나는 3일 동안 KCTV 방송국 촬영팀과 함께 무인도인 범섬, 문섬, 섶섬에 들어가 생태계 조사팀과 더불어 사진 작업을 하였다.   

 

나와 범섬의 귀한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처럼 내게 범섬은 제주도에서 친구가 되어주었다.  


#2. 범섬이 보이는 법환 올레길   



‘찾아가는 갤러리트럭’은 9번째 전시 장소로 범섬이 잘 바라다보이는 법환리 해변을 택했다. 이곳은 올레길 7코스가 통과하는 곳으로, 뜨거운 여름날이면 오후에 지역 주민과 여행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다. 승환과 나는 오후 4시 30분경에 도착하여 해안길 초입에 트럭을 세우고 갤러리를 오픈하였다.   

 

“와! 이게 뭐에요?”    


초등학생 여자아이 하나가 뛰어온다. 호기심이 굉장해 보인다. 그런데 승환의 작품을 보더니, 아이 입에서 깜짝 놀랍게도 승환의 작품과 비슷한 장르의 외국 유명 작가 이름이 거론된다. 앤디 워홀(Andy Warhol), 키스 해링(Keith Haring), 바스키아(Jean Michel Basquiat) 등, 게다가 자기 생각도 거침없이 덧붙인다.    


“너, 몇 학년이야?”

“5학년이에요.”   

 

승환은 자신의 작품을 재빨리 알아봐 주는 아이를 매우 대견스러워하며 함께 작품 이야기를 나눈다. 그림 그리는 방법도 알려주겠노라며 특별히 사인까지 해서 명함을 건네주고는, ‘문화예술창고 몬딱’으로 초대한다. 아이의 엄마도 찾아와 갤러리트럭에 한참을 머물다 간다. 이렇게 우연히 만나는 관람객은 우리를 기쁘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범섬이 갤러리트럭 너머에 있다. 나는 오랜만에 손을 흔들어 범섬에 인사를 했다. 범섬을 배경으로 스마트폰 사진도 몇 장 찍었다. 목말을 태우고 가는 아이 아빠의 모습이 정겹다. 오늘은 관광지여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이 전시를 즐기고 간다.  

  


“몬딱에서 오셨네요!”   


오늘도 우리를 알아보는 이가 있다. 이이는 ‘제주 한달살이’를 하다가 상주하고 싶어져서 여기서 취업을 하였단다. 퇴근해서 산책길에 우연히 우리 갤러리트럭을 보고 다가와 말을 건넨 것이란다. 그런데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지인의 지인이 된다. 제주는 큰 섬이지만, 조금 지내고 보면 한 다리 건너 아는 사람들이 된다. 인연이 인연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길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이 차곡차곡 쌓여간다. 내가 범섬을 부르고, 승환이 초등학생을 부르고, 제주살이하는 아주머니가 우리를 불렀다.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고,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르면 우리는 그새 친구가 된다.   

 

다음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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