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그렇게 적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굉장히 많이 적는 거 같은데..” “알 거 없어, 그냥 적는 거지. 뭐”
소녀를 향한 기억을 적었다. 많은 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적고 싶었다.
기억을 적으면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제법 근사한 풍경이긴 하지만 뭔가 내 맘에
들지는 않는다. 창밖의 풍경이 매일 같아서 그럴까. 차라리 우리 집 강아지와
노는 게 좀 더 재밌다고 느꼈다. 바라보는 건 여간 나와 맞지 않는다.
드디어 입학이다. 설레지가 않는다. 나는 감정이란 게 없는 동물일까.
감정이 없다. 나는 기쁜 마음도 없고, 긴장도 되지 않고, 그렇게 나는
입학이란 절차를 밟았다.
학교의 창문은 곁 창문만 대략 24개였다. 그 24개의 창문 중 내 반은 어디일까
라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렐까 했지만 그게 다였다.
약 한 달 정도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생각보다 너무 재미가 없었다.
소녀의 소식은 이 마을에도 꽤 알려졌다. 소녀와 같은 마을에 산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조사를 받았다.
“칼른과는 어떤 사이인가요?”부터 시작해서, 상세한 묘사를 부탁하는 게
너무 싫었다. 겨우 한 번 인사한 사이라고 수백 번을 설명해도 그들은 듣지 않았다.
듣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가득한 걸, 그들의 표정 하나하나에서 느꼈다.
지루하다. 사는 게 너무 재미가 없다. 무슨 이유로 살아가야 하나 싶다.
잠시 좋아했던 소녀도 없다. 학교는 너무 재미없는 곳이다.
아 그래도 강아지 애나와 잠시 놀 때는 재미있다.
애나는 내 소중한 강아지이다. 실질적인 애나의 주인은 아버지지만
아버지는 애나와 그리 자주 함께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아프다.
아버지는 병에 걸렸다. 그리고 입원 중이다. 그러나 찾아가지는 않는다.
아버지가 찾아오지 말라고 했다.
조금이라도 있는 친구들이 내게 묻는다. “야, 아버지가 찾아가지 말란다고,
진짜 찾아가지 않는 거야?”라고 물어봤다.
아버지가 무슨 병인지, 지금 당장 서술하진 않겠다. 그것은 아버지께 큰 실례다.
언젠간 설명하겠지만 지금 설명하긴 싫다.
아버지와 사이가 안 좋은가? 그건 아니다. 그렇다고 사이가 좋은 편도 아니다.
미지근한 물 같은 사이. 딱 그 정도다. 이제는 아버지 얘기를 잠시 하지 않겠다.
어머니 이야기를 할까 하다가. 멈추겠다.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 없다.
소녀보다도 더 기억이 없다. 내가 2살 때 집을 나갔다는 데, 무슨 기억이 있을까.
인간은 대체로 2살 이전의 기억이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2살 이전의 경험이나 기억이 없을 수 있다. 이는 뇌 발달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태아기부터 생후 첫해까지 겪은 경험들은 주로 감정 인식 등 기초적인 심리 기능을 담당하는 대뇌변연계에 저장된다. 고는 한다.
학교에서 듣는 수업은 전쟁의 역사, 영어 2, 신학 등이다. 그중에서도 전쟁의 역사 수업은
정말 미친 듯이 재미가 없다. 일단 선생님이 나랑 맞지 않는 듯하다.
그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 듯하다. 아니 핀다고 확신한다. 분필을 잡는 모습도 얼핏 보면
담배 피우는 사람이 담배를 잡는 딱 그 모습이다.
“선생님, 무엇을 먹고 오시던 상관은 없지만, 담배 냄새는 좀 안 나게 하실 수 없을까요?”
“교실에선 피지 않잖아”
“그건 당연한 거고요, 저는 담배냄새가 싫은 걸요”
“어딜 어른한테 말대꾸야 말대꾸는 조그만 게”
“담배 냄새를 빼고 오겠다고 약속해 주십시오”
“야 네가 무슨 반장이야?” “반장 어딨 어?”
“반장, 얘 이름 뭐야” 역시 반장은 내 이름을 알 리가 없다. 나는 반 아이들과 거의
대화를 하지 않는다. 딱히 이유란 없다. 그냥 대화라는 걸 하기가 싫다.
대화를 향한 의지가 없는 것일까.
한 다른 아이한테 얘기는 건네 봤다. ”선생님한테, 담배냄새 많이 나지 않아? “
”담배 냄새 많이 나긴 하지“
”그런데, 아무도 선생님한테 뭐라 그러지는 않잖아. “
”뭐라고 한다고 뭐가 달라지나, 저 선생, 여기 이사장 아들이잖아. “
”이사장이란 게 뭔데? “ ”이 학교 주인“
”학교의 주인은 학생 아니야? “ ”아 그건 그냥 어른들이 하는 말이고 “
”학교 가진 사람“
권위가 있는 사람의 아들이라, 권위에 대응할 수 없다는 게 참 이상하게 들렸다.
왜냐하면 전쟁의 역사에서 배우는 건, 조상들이 불의에 항거하고 거센 침략에도
흔들리지 않고 나아갔다는 용기였다.
용기를 가르치는 사람에게 정작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학생이 없다.
한편, 소녀의 죽음과 관련해서 교장선생님도 내게 질문을 했다.
”자네가 소녀와 같은 주택에서 살았다고 하지? “
”예“
”소녀가 이 학교에 오고 싶었다는 건 알고 있었고? “
”그 정도로 친하지 않습니다. “
”같은 주택이면, 좀 친하지 않나? “
”딱 한 번 봤습니다. 안녕이란 인사를 건넨 게 전부입니다. “
”친하지가 않은데, 인사는 왜 건넨 건가? “
”소녀가 인사를 먼저 했길래, 받아친 게 전부입니다. “
같은 마을, 같은 주택에 살았다는 이유로 나는 조사를 받는다. 소녀의 죽음은 나도 안타깝다.
나와 같은 나이, 어쩌면 같은 학교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사람, 내가 처음으로 누군가를 이쁟다고 여긴 사람. 그 소녀의 죽음은 안타깝다.
그러나 계속되는 소녀를 향한 질문은 내 추억을 마비시켰다. 추억에 제동이 생기는 듯하다.
차라리 성경 속 베드로처럼, 사제관계라면, 부인이라도 하겠다. 그러나 상당히 애매한 관계다.
따라서 불가능하다. 수학의 이론처럼, 착착 맞는 이론이다.
초등학교 수업도 재미없지만, 중학교 수업도 딱히 재밌지는 않다. 벌써 한 달이 지나고,
짝꿍을 바꿔야 하는 시간이 왔다.
”혼자 않겠습니다. 어차피 우리 반 인원은 홀수니까, 그래도 되죠? “
”뭐 굳이 그러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한 명이 오늘 전학을 왔다. “
”전학생과 짝을 하겠다는 건가?, 짜식 남자네, 여자 오는 건 어떻게 알고? “
나는 나의 안녕을 빌지는 못하는 걸까. 누군가 곁에 있는 게 어색하다. 나만의 안녕이 생기려면, 나는 누군가와 붙어있지 않아야 한다. 붙어있는 것이 어색하다. 아니 말을 거는 것조차 어색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싫다. 내 낙서를 들키기가 싫고, 내가 소녀를 향해 적은 내용을
들킬지도 모른다는 것도 싫다. 정확히 말해서 사람이 싫다. 사람을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
새 사람이 왔다. 묘하게 소녀를 닮았다. 소녀가 죽었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제법 잊힐 때쯤
소녀를 닮은 그녀가 전학을 왔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소녀에게는 쌍꺼풀이 없지만, 전학을 온 그녀에게는 쌍꺼풀이 있다는 사실이다.
”안녕? 네 이름이 뭐니? “
귀찮지만, 그래도 대답은 예의상 했다.
”도어“
”문이네, 문 이름이 문이야. 외우기는 쉽네 “
그 순간이었다. 이름을 불러줬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마음이 고장이라도 난 걸까.
나는 많은 것들에 귀찮음을 느끼는 사람이다. 대답조차 싫었다.
그런데 전학생이 내 이름을 부르는 순간, 뭔가 뭉클했다.
”야 우냐?, 내가 놀려서 우는 거야? “
놀려서 우는 게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눈물이 끝없이 나와서 그렇게
대답하진 못했다.
어느새 나는 울보가 됐다. 반에서 울보로 통했다. 별명도 생겼다.
”도어는 울보래요 “라고 나를 놀리는 녀석들이 많았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은 전학생이 나를 놀리면, 어색하지는 않지만
녀석들이 나를 놀리면, 한 대 패고 싶다.
진짜로 팼다.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사람이 이렇게도 변할 수가 있나 싶었다. 변화는 큰 게 아니다.
마음이 변하는 것, 변화다. 계절이 변하듯이 나는 바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