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서 둘, 셋 그리고 다시 둘이 되다
우렁각시 미역국
미역국을 유난히 좋아하셨던 우리 엄마. 딸 다섯을 낳을 때마다 먹었던 미역국은 엄마의 추억이었을까. 어쩌면 자신을 낳아준 내 외할머니의 기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맛은 물리적 화학적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과학적 요소이지만 우리의 감각과 기억 속에 자리 잡을 땐 바로 정서가 된다. 어린 시절 엄마의 음식이 세월 속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이유이다.
몇 년 전 내 생일을 하루 앞둔 날 프로젝트로 바쁘다던 서울 사는 큰아들이 불쑥 본가에 내려왔다. 이런저런 얘기로 저녁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 주방으로 나갔을 때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식탁 위 반찬들과 잡곡밥에 소고기 미역국까지 거한 아침식사가 내 눈앞에 차려져 있었다.
할 말을 잃고 얼음처럼 서있던 그때 우렁각시가 되어 나타난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생신 축하드려요! 제가 꼭 한번 미역국에 생신상을 차려주고 싶어서ᆢ"
새벽같이 일어나 생일상을 준비한 아들은 해맑게 말하며 나를 보고 있었다.
'감동이란 바로 이런 단어였다.' 미역국 재료에 끓이는 법까지 모두 외할머니께 물어물어 준비했다는 아들 말에 자식을 향한 고마움과 딸의 미안함이 차례로 밀려왔다.
나는 언제 한 번이라도 엄마에게 내 아들 같은 자식이었던가! 한없이 부족한 딸의 죄스러운 심정이었던 그날, 행복했지만 가슴이 아련했던 내 생일 아침이었다.
저 혼자 잘난 듯 하나였던 딸은 자식을 낳아 둘이 된 세상을 만났고 그 둘은 엄마의 엄마와 함께 셋의 모습으로 하나가 되었다. 셋이 만든 세상은 따뜻했고 그 가운데에 선 나에게 그날은 무한축복의 시간이었다.
[ 새 세 마리가 세상의 내용과 관계를 바꿔놓는다ᆢ. 이 세상은 세 마리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새 세 마리는 따로따로 혼자서 날아가는 새들이다. 하나 됨을 잃지 않고 셋을 이루는 세상이 좋은 세상일 것이다.]ㅡ김훈 '셋' 라면을 끓이며
막을 수 없는 유한의 삶을 따라 떠난 엄마가 생각난다. 셋에서 둘이 된 우리는 셋이었음을 기억하며 하나의 모습으로 날고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