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편인 그대를 용서하노라
커피 한 잔에 '욱'을 참는 지혜
어느 날 남편과 함께 들른 아들 집엔 있어 보이는 커피기계가 싱크대 위 인테리어처럼 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경쟁하듯 늘어나는 카페가 지척인데 뭔 기계까지' 싶었지만 어쩌리.
취향에서 취미가 된 커피를 제대로 즐기겠다며 수입산 유명기계를 구입했다는 아들은 남편과 함께 전문가들 인양 커피 이야기로 삼매경에 빠진 모습이었다.
그날 아들이 내려준 커피는 평소 사 마시는 커피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평소 아메리키보다 라테를 즐기는 내 취향 때문일 수도 있다.
"엄청 다르지"
"으응,. 그러네..."
종용하듯 차별화를 기대하는 아들에게 영혼 없는 대답으로 반응했다.
하지만 남편은 나름 커피에 입문을 마음먹었던 듯 아들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그날 이후 드립커피를 즐기는 남자가 되어 우리 집엔 각종 원두가 쌓이기 시작했다.
주말아침 커피 향이 집안에 은은히 퍼진다. 남편에게 주말은 나름 귀하다는 원두를 구해 커피를 내리는 일상의 시간이 되었다.
"향이 꽤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선물로 받은 원두를 갈며 남편이 한 마디 건넨다. 드리퍼에 물을 부으며 탄성이 이어진다.
"와! 이 원두, 진짜 향이 예술이다.~ 로스팅도 얼마 안 된 것 같이 신선하네!"
내가 준 원두에 과하다 싶은 칭찬일색으로 온 집안을 커피 향으로 뒤덮으며 좋아했다.
아침 운동 후 커피를 마시려고 확인한 드리퍼 밑 주전자는 깨끗하게 빈 상태였다. 유난 떨며 내린 커피를 본인 머그잔에 모두 담아 남편은 서재로 들어가 버린 후였다. 한 잔 내려달라고 할까 하다 어이없기도 괘씸하기도 해 그냥 입을 닫았다
눈치가 없는 건지 배려가 없는 건지.
아마 둘 다 임에 틀림없는 자기중심 답답형 남자는 내가 준 원두를 혼자서 행복하게 즐기고 조만간 또 얻을 수 없겠냐고 묻는 비상식 몰염치의 발언을 할 거다에 한 표를 걸어본다. 옆구리를 찔러야 이해하고 면전에서 확인해야 알아듣는 35년 지기 룸메이트는 언제쯤 커피의 향을 나누는 센스를 보이려나.
어쩌면 평생 계속될 어이없는 상황에 허황된 기대로 '욱'하는 마누라가 되느니 이대로 접는 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거라 결론 내린다.
향으로 마시는 커피가 아닌 향만 마신 주말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