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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을 만나러 간 길

선운사에 물든 하루

by 가히

성큼 다가온 9월의 주말, 마음 맞는 선후배와의 약속을 위해 나른한 아침잠을 털고 일어났다. 창밖의 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지만 오후엔 맑아진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우리는 상사화를 만나러 선운사로 향했다.


평일 내내 일에 몰두하던 후배와 “다리 힘 있을 때 열심히 놀자”는 선배의 수다 덕에 차 안은 세 여자의 활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고창에 가까워질수록 굵어진 비가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비가 계속 오려나 봐!”라는 내 말에 후배가 웃으며 물었다.

“차에 우산 있죠?”

“그럼, 충분히 있지.”

그러자 선배가 한마디 던졌다.

“비 오면 더 좋아~ ㅎㅎ”


그 순간 우리는 모두 깔깔대며 비속의 낭만을 즐겨보리라 마음먹었다. 하지만 선운사에 도착하자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란빛으로 열려 있었다.


주차장에는 알록달록 등산복을 입은 사람들이 대형 관광버스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고창 멜론축제’에 참가하는 관광객들로 보였다. 우리는 상사화가 피어 있는 진입로를 따라 걸으며 만개한 꽃의 환영을 받았다.


붉고 발그레한 꽃들에 넋을 잃은 채 그 모습에 정신없이 카메라를 들이댔다. 돌아오는 차속에서야 셋이 함께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알아 자렸다.


걷는 동안 우리는 자연스레 꽃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사화와 꽃무릇은 닮았지만 다른 꽃이라는 사실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상사화>


상사화는 8~9월, 꽃무릇은 9~10월에 피며 크기와 색에서도 차이가 있었다. ‘기대, 순결한 사랑’을 뜻하는 상사화와 달리 선운사에 만발한 붉은 꽃들은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상징하는 꽃무릇이었다. 화려하고 강렬한 붉은빛 뒤에 애틋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는 꽃의 전설에 마음이 아련해졌다.


꿈꾸듯 범람하는 가을 불꽃에도

영영, 만날 수 없는 그리움

한이 되어

핏빛으로 물든다.

ㅡ이여울 시인의 꽃무릇 중에서ㅡ


돌아오는 비록 우리들의 사진은 없지만 꽃은 만발하고 세 여자가 함께한 웃음과 수다 그리고 가을의 기억이 오래도록 눈과 가슴에 남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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