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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떠난 여행에서 만난 이중섭

가을이 내게 욌다

by 가히

아무 생각 없이 친구를 따라나선 주말 오후, 음악회 제목은 <Travel Concert>였다.

공연 장소가 ‘예술의 전당 대공연장’이라는 말에 웅장한 무대를 떠올렸다. 하지만 티켓을 받기 위해 친구와 일찌감치 도착한 현장은 평소와 달랐다. 대공연장 입구는 굳게 닫혀 있었고 사람들이 줄 서 있는 곳은 출연진 대기실 입구 문 앞이었다. 합창단 활동을 하며 여러 번 공연해 온 나는 그날 음악회가 일상적인 공연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상황을 묻는 내게 공연 안내원의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오늘은 무대 위에서 즐기는 특별공연이에요. 들어가 보시면 압니다.”


대기실들을 지나 평소 어두워 보였던 공연 전 무대는 환하게 밝혀 있었고 그 위 낮은 계단마다 방석이 놓여 있었다. 객석이 아니라 무대 바닥에 앉아 즐기는 음악회였다. 맞은편에는 피아노와 마이크가 준비되어 있어서 소극장 같은 아늑한 분위기가 펼쳐졌다.



늘 객석에서 공연을 관람했던 친구는 처음 무대 위에 올라서며 놀라고 신기해했다.


"여기가 무대구나! 어머, 저 커튼 뒤가 객석이라고? 진짜 신기하다~"


예상치 못한 낯선 무대 풍경은 나 역시 새롭고 흥미로웠다.


공연시간이 되어가자 무대 위 '방석객석'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Travel concert>의 주제는 '한국'이었고 레퍼토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 명태. 비목. 마중 등 한국가곡들로 구성되었다. 그중 낯선 제목의 노래가 눈에 띄었다 - < 중섭의 사계>


천재화가 이중섭을 추억하는 사계절의 노래였다. 이날 진행을 맡은 피아니스트 정환호 자신이 작사 작곡을 한 곡이란 소개에 객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주제마다 달라지는 <중섭의 사계>는 잔잔한 봄의 멜로디에서 이중섭이 가족들과 함께 보냈던 제주 여름의 밝고 투명한 여름의 선율로 이어졌다. 피아노의 아련한 반주곡 가을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는 화가의 깊은 슬픔이 깊게 느껴지는 겨울까지, 공연의 주인공인 베이스 김대영의 동굴 저음이 만들어 내는 <중섭의 사계>는 한 편의 뮤직드라마가 되어 내 가슴을 울렸다. 윤동주 시에 곡을 붙인 <별 헤는 밤>은 김대영 성악가의 초연으로 세상에 소개되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베이스 김대영의 낮은 음성이 들려주는 ㅡ별 하나의 추억과, 별 하나의 사랑과 별 하나의 쓸쓸함의ㅡ별 헤는 밤을 들으며 가을 속으로 빠져든 시간은 물 흐르듯 순식간에 지나갔다.


모두 6곡의 노래들과 두 번의 앙코르까지 무대 위 객석에서 차오르는 마음으로 공연에 열중했다. 관객들의 계속되는 박수로 세 번째 앙코르곡이 이어졌다. 무대의 주인공과 관객들이 하나가 되어 감동의 떼창이 된 노래는 바로 <나의 살던 고향은>이었다. 어릴 적 수없이 불렀던 이 노래를 내가 마치 주인공 가수인양 무대 위에 앉아 목청껏 부르며 공연의 아쉬움을 뒤로했다.


공연이 끝나고 마주한 가을 오후, 햇살은 음악과 함께 오고 있었다. 계절을 보내고 기다리며 기대하는 우리 마음속 특별한 의미는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지나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과 다가올 시간에 대한 설렘이 아닐까. 계절마다 서로 다른 이야기와 마음을 담아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 가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오늘 가을이란 이름 속에 오래도록 간직될 나만의 하루를 가슴에 담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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