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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May 24. 2022

홍콩에 가면 섬에 들르세요 - 펭차우 편

최애 섬, 펭차우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라는 옛 노래를 아시는지. 내가 이 노래를 알게 된 것은 불독맨션의 이한철 님의 리메이크 버전을 통해서였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는 '나성은 어디에 붙어있는 동네지?'라는 생각에 검색해봤다가 한국이 아닌 미국의 도시인 것에 놀랬던 기억이 있다. 아무튼 '나성에 가면 편지를 띄우세요~'를 '홍콩에 가면 섬에 들르세요~'로 바꿔 흥얼거려보며, 사랑하는 홍콩의 작은 섬들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시작해 본다.


보통 홍콩에 여행을 가면 거대한 쇼핑몰로 쇼핑이나, 미슐랭 또는 로컬 맛집들, 란콰이퐁에서의 바와 클럽들, 몽콕의 야시장, 멀리 가면 스탠리의 시장과 바다 앞에서의 맥주 한 잔 정도의 여행을 하게 된다. 홍콩에 살기 전의 나도 딱 그 정도의 여행을 했었더랬다.


그러나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를 강하게 시행했던 홍콩에서의 삶에서 위의 것들은 즐기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레스토랑은 6시 이후에 문을 닫았고 2인 초과의 식사는 불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당연스레 밤에 가게 되는 바들도 문을 열지 않았다. 몽콕의 북적이는 야시장에 향하는 것은 꺼려졌다. 결국 홍콩에서 내가 향할 수 있는 곳은 자연이었다. 홍콩에 가서 알게 된 것은 홍콩 현지인들과 expat들이 하이킹을 즐긴다는 것이었다. 산으로의 하이킹도 많이 다녔지만, 내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홍콩의 작은 섬들을 하이킹하는 것이었다.


홍콩에서 관광지로 가장 알려진 섬은 청차우이다. 청춘들이 커플 자전거를 나눠 탄다는, 휴일이면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청차우는 왠지 내가 향할 곳은 아닌 것 같아 가보지 않았다. 알려진 청차우 대신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들을 여러 군데 다녀본 다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섬들을 추려 소개해 보고자 한다. 그중 가장 첫 번째는 홍콩에서 내가 가장 애정 했던, 알려지지 않은 작은 섬, 펭차우이다.


디스커버리베이 맞은편에 있는 작은 섬, 펭차우(Peng chau, 坪州).


펭차우 (Peng chau)


펭차우와의 만남은 참으로 우연이었다. 홍콩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와 함께 디스커버리베이 여행을 했을 때였다. 디스커버리베이는 홍콩 국제공항이 위치한 란타우섬의 동쪽에 위치한 동네인데 홍콩섬의 복닥복닥함이 싫은 사람들이 여유로움을 찾아 사는 곳이다. 비치가 유명하고, 비치를 따라서 레스토랑과 바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무엇보다 디즈니랜드와 가까워 홍콩인들도 짧은 휴가로 많이 찾는 곳이다. 개인적으로 느낌은 몰락한 유럽 소도시의 느낌이었다. 럭셔리한 한가로움이 아닌 한때 럭셔리했지만 지금은 퇴색해버린, 크로아티아나 폴란드의 소도시들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상상해봤었다(두 나라 모두 가본 적 없음). 친구와 함께 1박 2일 호캉스로 디스커버리베이에 갔었는데, 호텔과 동네는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는 딱히 끌리는 맛집이 없다는 것이었다. 관광객들이 가는 뻔한 레스토랑뿐이었다. 나는 주로 맛집을 구글 지도를 확대해가며 찾는데, 그렇게 호텔 침대에 누워 디스커버리베이 주변의 지도를 이리저리 확대해보다가 우연히 바로 옆 작은 섬에 구글 평점이 4.0이 넘는 식당들이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즉흥적으로 친구와 함께 돌아가는 길에 그 작은 섬으로 향하는 페리를 타고 들러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페리 선착장이라고 부르기엔 택시정류장급의 작은 선착장에 수많은 의심을 갖고 기다리다가 페리라고 부르기엔 택시급의 작은 배를 타고, 섬이라고 하기엔 독도가 이 정도 크기 일까 싶은 곳에 처음 발을 들였다. 그 모든 작음이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으나, 그 작음이 나에게 큰 설렘을 줄 줄이야.

 

작은 선착장 풍경과 택시급으로 작은 페리


그렇게 도착한 그 작은 섬이 바로 펭차우이다. 펭차우는 한자로 坪州로, 들 '평'자와 섬 '주'자를 쓴다. 홍콩에서 섬은 州(섬 주, 광동어로 차우) 또는 島(섬 도, 광동어로 또우)를 쓰는데 큰 섬인 홍콩섬과 라마섬에는 島를 쓰고 나머지 대부분은 州를 쓰는 것으로 보아 주로 큰 섬에 섬 '도'자를 쓰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내 뇌피셜이다. 아무튼, 한자를 해석하면 펭차우는 들처럼 편평한 섬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섬이다. 이름값을 하는 것처럼 펭차우는 고지대가 거의 없고, 섬의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는 것도 20분이면 가능할 정도로 매우 편평한 섬이다.


홍콩에서 가장 좋아하는 섬이 어디냐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나는 펭차우를 꼽는다. 아름다운 바다와 한가로운 작은 바닷가 마을, 아직 발전하지 않아 곳곳에 숨어있는 힙한 까페나 가게들, 그리고 작은 섬 치고 충분한 수의 맛집들, 정말 작고 소중한 나의 작은 섬이다. 얼마나 한가로우냐 하면, 정크 보트에서 펭차우에 사는 한 독일인 친구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펭차우에서 요즘 가장 큰 뉴스는 1년 만에 섬에 새로운 까페가 생겼다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별일이 안 벌어진다는 이야기다. 별의 별일이 가득한 바쁘다바빠 현대사회 서울과 홍콩에서 살던 사람이 끌리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홍콩에서 지내면서 펭차우에 세 번 정도 갔었다. 첫 발견에 반해버려서 주변 친구들을 계속 데리고 갔다. 맛집과 까페에 가보기도 했고, 비치에서 피크닉을 하기도 했고, 하이킹과 함께 둘러보기도 했다. 홍콩의 센트럴의 페리 선착장에서 페리를 타고 30분 정도 가면 펭차우에 도착한다. 펭차우의 선착장에 내리면 주황과 노랑의 밝은 유럽풍 건물이 맞아준다. 그 건물을 중심으로 쭉 직진하면 펭차우의 가장 번화한(?)이라고 하기엔 두 블록 남짓의 중심가가 나온다. 그 중심가엔 디스커버리베이보다 맛있고 저렴한 맛집들이 있고, 그 좌우 양쪽으로 걸음을 옮기면 좌우가 풍경이 다른 소소하게 즐거운 여행을 해 볼 수 있다.


랜드마크인 페리선착장 맞은편의 알록달록 건물. 자리 잘 잡고 쉬고 계신 홍콩 할아버지와 함께. 홍콩할아버지들은 대체로 참 귀엽다.


중심가의 몇 가지 추천 맛집


중심가라고 하기엔 걸어서 10분이면 다 둘러볼 듯한 펭차우의 읍내엔 몇 가지 추천할 만한 맛집들이 있다.


1. Express Restaurant

바닷가에서 갓 잡아 올려온 해산물로 홍콩식 로컬 음식을 내어 주는 곳이다. 게요리와 마늘과 가는 국수를 올린 조개 요리, 중국요리에서 빛을 발하는 가지 볶음에 볶음밥을 시키면, 여자 셋은 충분히 배두들기며 나올 법하다. 후에 소개하는 디저트까지 맛보기엔 배부르겠지만, All up to you. 맛뿐만 아니라, 식당의 외관과 내관에서 모두 홍콩 특유의 현지의 느낌 그대로를 느껴볼 수 있다. 영어는 잘 통하지 않으니 사진을 보여주며 주문하는 것이 좋겠다. 사장님도 충분히 친절하셨던 기억.


금붕어까지 홍콩스러운 내부.
홍콩의 어느 해산물집에 가던 조개에 마늘이랑 얇은 국수 얹어진 저거는 꼭 시키세요.


https://goo.gl/maps/Sv45Yi8E3V31US6u5


2. Hoho kitchen

홍콩의 전형적인 차찬탱인데 유명한 메뉴는 멜론빵에 아이스크림을 끼워주는 아이스크림 빵이다. 나머지 메뉴는 특별할 것 없으니, 식후 디저트로 아이스크림 빵 하나씩 나눠먹는 것을 추천한다. 홍콩에서의 특이한 음료 메뉴로 커피와 밀크티를 섞은 똥윤영도 함께 먹으면, 당도가 가득 충전되어 정신이 번쩍 든다.


아스크림빵과 똥윤영(커피에 밀크티를 탄 홍콩의 기상천외한 음료, 은근 맛이 괜찮다)


https://goo.gl/maps/uWbrap2GRczDyPbj8


3. Kee Sum cafe

소개하는 세 개의 레스토랑 중 가장 인기가 많은 곳으로 보인다. 펭차우에 갈 때마다 유일하게 줄을 길게 서는 것을 목격했던 곳이다. 코로나 때 줄을 섰으니 코로나 이후에는 훨씬 더 할듯. 가장 유명하고 맛있는 메뉴는 새우토스트로 새우살을 빵에 끼워 뛰긴 것으로 마요네즈 베이스 소스에 찍어 먹을 수 있게 내어 준다. 홍콩의 시그니처 음료 아이스레몬차, 똥랭차와 함께 테이크 아웃해서 돌아다니면서 먹으면 튀김의 느끼함도 싹 내려간다.


새우토스트. 가서드셔도 되고 테이크아웃도 됩니다.

https://goo.gl/maps/1PoW83qxtEae7JuH6


4. Bikecoffee man

당시 펭차우엔 자전거에서 커피를 파는 힙스터가 있었다. 홍콩섬과 펭차우를 왔다 갔다 하며 사는 듯한 그에게 DM을 보내서 콜드 브루 두 병을 구매했다. 오전에 홍콩섬에 있었다는 그는 오후에 멋진 타투를 하고 머리를 멋지게 기른 힙스터의 모습으로 나타나 내가 아이스크림 빵을 먹고 있던 호호키친 앞까지 자전거를 몰고 와서 콜드 브루를 건네주었다. 아직 펭차우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인스타그램을 다시 들어가 보니 홍콩섬에 브루어리를 낸 듯하다.


이 구역 최고 힙스터 바이크커피맨이 배달해준 콜드브루. 병도 참 예쁘다.


바이크 커피맨의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p/CDSssu9Aj5N/?utm_source=ig_web_copy_link



피어(Pier)에서 우측으로 향하면,


선착장에서 랜드마크인 주황, 노랑의 유럽풍 건물을 바라보고 우측으로 향하면 작은 마을이 나타난다. 일본이나 대만의 작은 마을을 연상케 하는 작은 마을 골목골목을 다니다 보면 현지 삶을 한껏 느껴볼 수 있다. 왠지 마을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일 듯한 아름다운 나무와 바닷가 바로 옆에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 보면 마음이 한결 평화로워진다. 바다 앞 벤치에 앉아 잔잔한 바다를 마주하다 보면 금방 한두 시간이 흘러가 있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마을 사이 작은 빈티지샵에는 펭차우 기념엽서 몇 장과 무료로 가져가라고 내놓은 책과 씨디 몇 장도 가져올 수 있다. 빈티지샵에서 구매한 엽서는 그날부터 내내 내 벽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고즈넉한 마을과 산책로가 이어지는 우측길.
엽서 세 장 구매하고 책과 씨디를 공짜로 얻어온 빈티지 샵입니다.


길의 끝까지 향하다 보면 폐건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홍콩엔 폐가를 탐험하는 facebook group도 존재한다. 우리나라보다 빨리 서구 문명이 들어와서 1900년대 초반의 서양식 생활방식을 찾아볼 수 있는 곳 들도 많다. 1900년도 초반의 홍콩을 배경으로 한 '피아노 교사'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한국인 작가가 쓴 소설인데, 등장인물 중에 한국인은 없다. 그 시절에도 잘 사는 서양인들이 주로 살았던 미드레벨과 지금과 다른 모습의 완차이, 100여 년 전부터 영업을 한 오랜 호텔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로웠던 소설이다. 이런 색다른 취미도 가능한 곳이 홍콩이다. 물론 펭차우의 폐건물은 서양문화를 엿볼 수 있는 그것과는 거리는 먼, 그냥 폐건물이다. 지나가다 한번 구경해보는 정도로 가보면 좋을 듯하다.


 https://www.facebook.com/groups/801573476651269



피어(Pier)에서 좌측으로 향하면,


피어에서 좌측으로 항하면 하이킹할 수 있는 산책로가 시작된다. 바다를 따라 걸을 수 있는 나무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구글 지도에서 Peng Yu Path라고 적혀 있는 곳을 따라 걸으면 된다. 사이사이 몇 개의 비치들이 있는데, 돗자리를 들고 가서 마음에 드는 비치에 자리 잡고 피크닉을 해도 좋다. 어디든 사람이 북적이지 않는다. 나는 한 번은 친구들과 미리 핫도그를 만들어가서 피크닉을 했었고, 또 한 번은 바닷가에서 땅따먹기를 하고 놀았었다. 바다 건너편으로 멀리 디즈니랜드가 보이고, 석양이 참 아름답다. 디즈니랜드가 다시 열었다고 들었는데, 이젠 밤에 불꽃놀이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은 비치들이 있는 펭차우의 좌측에서의 추억. 피크닉과 땅따먹기.


코로나의 위세가 약해지면서 다시 하늘길이 열리고 있다. 홍콩은 드디어 비거주민도 입국을 받기 시작해서 관광객도 이제 입국할 수 있으나, 아직 입국 이후 호텔에서 일주일간의 격리는 피할 수 없다. 일주일 이내의 관광을 주로 하는 곳이니 일주일간의 호텔 격리는 관광객에게 무리인지라 아직은 홍콩으로 떠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홍콩의 격리기간이 3주에서 2주, 1주로까지 줄어들었으니, 격리가 없어지는 그날을 기다려보며 홍콩의 작은 섬들을 구글 지도에 저장해 보는 것이 어떨지.


이런 귀여운 무임승차의 모습이 있는 곳.




다음 섬은 주윤발의 고향으로 유명한 라마섬으로 향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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