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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좋아나 Jan 18. 2023

나도 달리기를 말할 때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거의 매일 달리는 이야기

오늘이니 2023년 1월 18일이니, 올해의 시작부터 18일 동안 총 57km를 뛰었다. 장염으로 앓았던 며칠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뛴 셈이다.


이번 달리기는 깊은 곳에서 부터 올라오는 충동에서 시작되었다.


밴쿠버에서 만난 친구 둘이 아침마다 달리기를 하고 출근한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뭐든 함께하기를 좋아하는 친구가 자기도 함께 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같은 건물에 사는 나에게도 같이 뛰기를 권했다. 나도 홍콩에서 가끔 달렸던 기억이 좋았어서 선뜻 응했다. 달리기로 한 날 아침, 여느 밴쿠버의 겨울 아침처럼 하늘은 매우 흐렸고, 흐린 날엔 대체로 몸을 일으키기 힘들었다. 친구가 아침에 깨워준 덕에 겨우 몸을 일으켜 우버를 타고 친구네 집까지 갔었다. 달리기를 하러 우버를 타고 가다니, 이게 무슨 비효율인가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겠다고 운동화까지 신고 나온 나의 의지를 폄하하지 않기로 했다.


예일타운 입구에서 친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을과 겨울의 밴쿠버는 늘 밤부터 아침까지 비가 오거나, 비가 오지 않고 흐린 날엔 나뭇잎에 아침 이슬이 빼곡할 정도로 습기가 가득했다. 으슬으슬하고 촉촉한 아침에 우리는 손인사를 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거의 2년 만의 달리기라 살짝 걱정스러웠으나 막상 달리기 시작하니 밴쿠버 강변의 가로수들과 강변의 나즈막하게 이어지는 아름다운 건물들 사이로 달리는 기분이 매우 좋았다. 아침의 싸늘하고 습기 가득한 공기도 달리기와 함께 시원하고 상쾌한 바람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스크 없이 밴쿠버의 맑은 공기 사이를 가르며 달리니 달리기의 참맛이 이건가 싶었다. 달리기 후에 아몬드 크로와상과 아메리카노까지 한 세트로 아름다운 달리기였다. 그렇게 채 3km 도 되지 않은 짧은 달리기의 인상은 매우 강렬하게 남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달리기를 시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한국에 돌아온 후,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아메리카 대륙과의 이별 인사처럼 걸린 코로나의 후유증에서 슬슬 회복되어 가는 참이었다. 달리기에 대한 강한 충동이 들기 시작했다. 12월 말이라 새해부터 시작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내가 느낀 감정은 만들어낸 의지가 아니라 솟구치는 충동이었다. 당장 뛰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욕구였다. 마침 12월 중순부터 영하 10도 이하로 휘몰아치던 날씨가 낮에는 영상 0도 정도까지는 올라가기 시작했다. 스포츠브라에 반팔 하나와 긴팔 하나, 맨투맨에 바람막이까지 다섯겹을 껴입고, 밑에는 레깅스와 트레이닝 바지 두 겹의 바지를 껴입었다. 아무래도 머리가 시릴것 같아 비니까지 챙겨 쓰고 한강공원으로 향했다.


밴쿠버의 으슬으슬한 추위와 달리 서울의 칼바람은 어는점 언저리에서도 어마어마했다. 첫 1km 는 추위와의 싸움이었다.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뱉는 기도가 아려왔고, 강바람에 볼이 얼얼했다. 아무리 뛰어도 달리기 어플에서 1km를 알리는 메시지가 들려오지 않아 몇 번이고 핸드폰을 꺼내서 확인했다. 1km를 달리니 달리기를 몸이 인지하는 첫 신호가 왔다. 갑자기 눈이 번쩍 뜨이고 세상 모든 것의 색깔이 선명해졌다. 그 쨍한, 눈 앞의 높은 채도가 내가 느끼는 달리기를 감각하는 첫 유쾌한 느낌이다. 머리가 마치 정신과 약을 먹은 듯이 맑아지는 느낌. 아, 이게 내가 달리기를 그리워했던 이유였지!


달리기를 시작한 건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1년 1월 1일, 홍콩에서였다. 날짜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때의 달리기는 새해 다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코로나와 함께 시작된 재택근무가 1년여간 지속되던 와중이었다. 9시 출근 시간과 함께 일어나 노트북을 켜고 하루를 시작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비몽사몽 일을 시작하다보니 효율이 나지 않아, 아침에 머리를 좀 깨운 후 하루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월 1일부터 출근 전 달리기를 시작했고, 보상을 위해 일주일을 매일 달린 후엔 홍콩 운동화거리에서 러닝화를 사겠다고 선언했다.


홍콩에서는 유난히 조깅인구가 많았다. 바닷가를 산책할 때면 다양한 모습으로 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날씨가 더우니 반바지만 입고 윗통은 까고 달리는 사람도 꽤 있었고, 잘 달리는 사람도 있고, 달리는 폼이 이상한 사람도 있고, 잘 차려입고 달리는 사람도 있고, 잠옷바람으로 나온 듯한 사람도 있고, 모두 각자의 모습으로 남녀노소 달리고 있었다. 나도 요가복 하나 입고 나가서 바닷가 데크를 달리기 시작했다. 초심자라 용기가 대단했다. 첫 날 부터 5km를 달리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일단 2.5km 거리까지 뛰고나니 일단 집에 돌아가서 재택근무를 시작해야해서 나머지 2.5km도 뛰든 걷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첫 날 그렇게 5km를 달리기 반, 걷기 반으로 성공하고 나니, 비록 반은 걸었지만 나 자신도 5km를 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그동안 요가를 수련해온 빛이 발한걸까. 그렇게 나는 딱 일주일동안 매일 5km 씩 뛰었고, 운동화거리에서 러닝화를 두 개나 장만한 후, 더 이상 아침에 뛰지 않았다. 가끔 이어진 재택근무에 답답한 날에 친구들과 해피밸리 트랙을 돌기도 하고, 가끔 바닷가 데크를 뛰긴 했지만 간헐적이었다.


의지로 시작한 달리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반면, 좋은 기억과 함께 충동으로 이어진 달리기는 꽤 오래 지속되고 있다. 혼자 달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일 낮, 하루 중 온도가 가장 높은 시간을 골라서 밖에 나간다. 달리기에는 장비도 필요없다. 굳이 새로 장만한 것은 물빨래가 가능한 비니와 무릎보호대 정도. 늘 비슷한 복장으로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장소를 달린다. 몇 주 동안 달리다 보니 3km 로 시작한 달리기가 쉬지않고 5km까지 가능해졌다. 그리고 달리기에서 내가 좋아하는 두 번째 감각을 매 달리기 마다 느끼기 시작했다. 1km 구간 이후 한 동안 같은 속도의 달리기를 이어가다보면 높은 채도의 감각처럼 강렬한 느낌은 아니지만, 달리는 상쾌함이 오래 지속되는 순간이 시작된다. Runner's high 라는 것이 이 두번 째 감각이 심화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어제는 홍콩의 해피밸리 트랙에서 친구들 여럿과 함께 뛰었을 때의 5km 기록을 회복했다. 그 때 처럼 숨도 많이 차지 않았고 구간 내내 기록도 꾸준했다. 저번주만 해도 쉬지않고 5km를 달리지 못했었는데 며칠만에 달라진 나를 발견한다.


매일 아침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아침 달리기의 장점은 매일 작은 성취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어제의 나보다 오늘의 나는 조금 더 많이 뛰거나, 조금 더 빨리 달릴 수 있다. 어제는 숨이 차서 걸었던 구간에서 오늘은 어제만큼 숨이 차지 않고 달릴 수 있다. 이처럼 정직하게 나의 발전을 지켜 볼 수 있는 운동이 있을까. 매일 나이키 런에 차곡차곡 쌓여가는 숫자를 보며 뿌듯해한다. 그리고 내일은 조금 더 멀리 달려 볼 수 있을까 기대하게 된다. 가벼워진 몸도 덤이다.


충동으로 시작한 달리기는 매일 느끼는 유쾌한 두 감각, 그리고 작은 성취와 함께 순항중이다.

매일 달리는 코스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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