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에서 느끼는 것들
수영을 처음 시작하게 된 것은 순전히 타의에 의해서였다. 엄마가 운동 하나는 할 줄 알아야 한다면서 억지로 수영 학원을 보낸 것이 시초였다. 등 떠밀려 한 것치고는 오래 배웠지만 당시에 나는 어린 마음에 매번 지각하는 것으로 반항을 했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시작한 것도, 열심히 운동해서 건강한 몸을 만들겠다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많은 학생들의 동기가 그러하듯이 그저 ‘엄마가 시켜서’ 시작한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수영 수업에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수영 끝나고 학원 앞에서 먹는 떡볶이를 더 좋아했던 것 같다.
그렇게 수영을 무려 3년이나 배웠다. 3년간 지각을 거의 빠짐없이 했지만 그래도 접영까지 배우고 나름 수영 학원에서 고참이 되어갔다. 대부분의 운동 학원들이 그렇지만 오래 다니는 학생이 있으면 대회에 참석시킨다. 내게 대회 참석의 기회가 온 것은 나로서 기분 좋은 일이었다. 그렇게 불량스러운 태도로 다닌 나에게도 기회를 줄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대회는 얼마나 작았던지, 내가 다니던 수영장에서, 그것도 주말 하루 동안, 20명 남짓의 학생들이 종목별로 참석하는 것이었다.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당시 대회에 7명 정도 나와 함께 자유형을 시합했던 것 같다. 여기서 3등만 하면 적어도 동메달을 딸 수 있는, 매우 쉬운 시합이었다. 공교롭게도 소수점 차이로 4등을 하면서 메달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의외로 침착했던 것 같다. 그때 나의 평소 행적을 돌이켰던 것일까. 메달을 받지 못했지만 대회 참석에 의의를 뒀던 것 같다. 나는 그 뒤로 다른 운동을 시작하면서 수영을 그만두게 되었다.
이렇게 시작부터 어긋나고 끝도 좋지 않은 수영이었지만 지금은 나에게 큰 행복을 주는 운동이다. 수영을 하고 나면 코에 남는 특유의 물 냄새도 좋고, 젖은 머리를 말리며 락커룸을 나오는 것도 좋다. 또한 몸에 좋은 운동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사실도 내게 큰 행복이다. 하지만 수영이 가져다주는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바로 ‘자유’다. 단순히 몸을 움직일 수 있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의미가 아닌,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의미의 자유다. 물속에서는 모든 신경을 나에게 집중할 수 있다. 아니, 사실 나에게 집중해야만 수영을 할 수 있다. 나에 대한 집중을 놓치면 자세가 망가지고 호흡이 어긋난다. 수영을 할 때만큼은 오롯한 나의 존재를 느낄 수 있다. 내 밑에 깔려있는 타일들을 보면서, 혹은 내 머리 위를 지나가는 깃발들을 보면서 나는 나만의 세상에 들어가게 된다.
물속의 세상은 모든 것을 구속한다. 소리도 단절되고 움직임도 제한시킨다. 서로 대화도 할 수 없고 어깨동무를 하기도 어렵다. 이런 제한은 외로움을 주기도 한다. 또 수영을 배우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물속에서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중에서도 물이 가장 강하게 우리를 압박하는 것은 바로 호흡이다.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 이는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과 연결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오히려 수영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본능에 반하는 행동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동시에 물속의 세상은 나를 해방시킨다. 앞서 말했듯이, 물속에서는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오롯한 나만의 공간을 찾기 어렵다. 카페에 혼자 가도, 방에 혼자 있어도 주변 사람들 혹은 가족들을 의식할 수밖에 없다. 비록 수영을 할 때는 그 생각이 동작에 집중되긴 하지만 물속은 여전히 나만의 공간을 제공한다. 혼자 물속에 빠져 있으면 다양한 생각에 잠길 수 있다. 조용한 물속에서 생각을 하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지기도 한다. 물론 호흡을 하느라 그 시간이 아주 짧지만, 그 고요한 경험은 나에게 큰 행복이다.
이처럼 물속은 모순된 공간이다. 나의 숨을 제한하는 동시에 나에게 자유를 준다. 사실 숨을 잠시 멈추는 것은 꽤나 힘들고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일상생활에서는 참지 못할 악취가 나지 않는 한 호흡을 멈출 이유가 없다. 이를 다소 과장해서 말하자면 본능을 억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이 본능을 억제해서 얻는 것들은 대체로 소중하다. 잠을 참고 얻어낸 결실들, 다이어트를 해서 얻은 날씬한 몸매 등은 우리가 큰 희생을 치르면서 얻어낸 것들이다. 물론 희생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결실도 큰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에서 희생에 따라 결과의 소중함이 어느 정도 올라가는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는 얄팍한 보상심리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수영에서만큼은 그 보상이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어떤 것으로도 얻을 수 없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나는 수영을 통해 숨을 잠시 멈추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물속으로 잠기면, 물거품 소리가 나고, 그것이 잦아들면서 고요함이 찾아온다. 이는 무섭고 두려운 적막감과 다르다. 마음의 안정을 얻은 상태다. 그 속에서 몸을 움직여 수영을 한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하늘을 나는 기분이 든다. 잊고 있었지만, 어린 시절에도 어렴풋이 경험한 느낌이다. 앞으로도 자주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