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일리 Sep 03. 2024

가을로 가는 길목에서 토지 1권을 마치며

토지 1권을 다 읽었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하여 책장을 훌훌 넘기다 보니 어느새 한 권을 끝낸 것이다. 대하소설인 만큼 당시 개화기 역사적 사실들도 곳곳에 어우러져 있어 결코 쉬운 내용은 아니었다. 그래도 주옥같은 대사와 표현들이 많아서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글을 쓰게 됐다.




1편


4장. 수수께끼

아직은 소리 없이, 결말이 어떻게 날 것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사태를 관망할 밖에 없는 최참판댁 하인들은, 그러나 다 같이 미묘한 갈등 같은 것을 느끼고 있는 것을 숨길 수 없었다.


최참판댁을 둘러싼 스토리 전개가 흥미진진!



6장 마을 아낙들

일 속에 파묻혀 사는 농촌 아낙들, 그중에서 과부라든가 내외간의 정분이 없는 여자들에게 야릇한 심화를 일게 하는 만큼 용이는 잘난 남자였고, 그 같은 잘난 남자를 지아비로 삼은 강청댁은 불행할 수밖에 없는 여자였다.


용이와 강청댁, 그리고 월선이의 삼각관계. 불륜을 눈앞에서 지켜보며 강짜를 부리는 강천댁이 너무 불쌍했다. 정말 남자에게 있어서 첫사랑의 의미가 그렇게 대단한 것인지? 월선이와 강제로 헤어져야 했던 그 사연도 슬프긴 하지만 그 사이에 낀 강천댁을 지켜보기가 더 힘들었다.


(스포 주의)

앞으로 이 로맨스가 임이네와는 어떻게 역일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7장 상민 윤보와 중인 문의원

"늙어 뱅들어 죽는거사 용상에 앉은 임금이나 막살이하는 내나 매일반이라. 내사 머엇을 믿는 사람은 아니다마는 사는 재미는 맘속에 있다 그 말이지. 두 활개 치고 훨훨 댕기는 기이 나는 젤 좋더마."

"글공부를 했느냐? (중략) 안 하면 잊어버린다."


어떻게 나이 들어 살아야 하는 지를 알려주었던 귀한 문장들이었다.



11장 개명 양반

물은 아래로 흐르게 마련이더라고, 하인들의 투를 보아 조준구는 윤씨부인이나 최치수에게 반가운 손님은 아닌 듯싶다.


비유가 찰떡이었. 한편으론 <부활>에서 '사람 마음은 물과 같다'라고 한 구절이 떠오르며 물과 인간의 속성이 많이 닿아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원래 예의범절이란 편리한 거는 못 되는 게요. 윤리 도덕이라는 것도 거추장스러운 거지요,


예의와 윤리, 도덕의 측면에서... 오늘날 우리가 좀 거추장스럽게 살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례허식은 당연히 없어져야겠지만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것들이 간소화되면 인간다움 역시 사라지기 때문이다.



허한 구석이 있어야, (중략) 막는 힘이 약할 것 같으면 밀고 나오는 게요, 아우성을 치면서. 천대받는 놈치고 약지 않은 놈 보았소?


이 부분이 왠지 구천이를 향한 치수의 울분과 격한 마음이 더해진 것 같았다.



12장 꿈속의 수미산

길상: 그 수미산에 가믄 말입니다. 은금보화로 말짱 집을 맨들아놨다 캅디다.


수미산이란 어디에 있는 것이고 무엇을 뜻할까?



서희의 마음이 자란 것이다. 슬픔은, 다른 아이들에게 보다 그에게 더 많은 지혜를 주었던 것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와 이별한 서희가 너무 짠하다. 그리고 그 슬픔으로 인해 조숙해져 버렸다는 사실도 안쓰럽다.



13장 무녀

하늘에서는 눈보라 같이 별이 쏟아져 내려왔다. 쏟아지는 별들은 반공중에서 제각기 맴을 돈다. 그러나 그것은 별이 아니었다. 월선의 눈에서 튀는 어지러운 불꽃이었고 뛰는 가슴과 현기에서 오는 불꽃의 난무였다.


월선의 설렘이 별로 너무 예쁘게 묘사되어 기억에 남는다.



숲에서의 뻐꾸기 소리 뿐이었다.


결국 월선이는 뻐꾸기을 암시하는 것일까?
12, 13장은 애절함이 가득 묻어나는 파트였.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두 남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14장 악당과 마녀

운이란 본시 변덕스러워서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는 법이 없다.

황금의 더미가 소리도 없이 무너져서 흐트러져가는 것 같았고 희한한 꿈을 깨고 나서 늙은이 뼉다구 같은 천장의 서까래를 바라보는 허무한 마음, 그러나 절망은 아니었다.


인생 전반을 아우르는 서술, 묘사가 주옥같다.



15장 첫 논쟁

치수의 압력에 눌리다 보면 무엇이든 지껄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답답함을 느낀다.


기가 센 치수다.


농민들은 변화를 싫어한다.


<부활>에서도 농민들은 개혁 앞에서 소극적이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농민들의 보수적인 성향을 엿볼 수 있었다.



농민들은 또한 권위에 대한 숭배가 지극한 생리를 지니고 있다. (중략) 오만하고 조금치의 접근도 불허하는 양반의 권위의식 때문에 숭배하는 것이다.


권위의식에 무조건적인 복종. 이런 것이 군중 심리일까?



17장 습격

논가 도랑물에 잠긴 달이 강청댁을 따라온다.

끝없이 굽이진 강물과 들판과 숲을 따라, 강물에 잠긴, 때론 도랑물에 잠긴 달이 아까보다 빠르게 강청댁을 뒤쫓아가고 있었으며...

(습격 후)

강청댁은 날듯 달려간다.


습격씬에서 긴장감이 엄청 고조되다가 강청댁이 걱정하며 잽싸게 돌아가는 모습에 그만 육성으로 웃었다. 박경리 작가님 유머에 스며든다.



19장 사자

옛날에 소금장수가 예쁜 각실 데리고 달아났대.


서희가 엄마에 관한 진실을 알게됐나보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벌한테 개미 네댓 마리가 덤벼드는 것이다. (... ) 잔인하고 무서운 아귀다.


최참판댁을 둘러싼 악인들의 쟁탈전이 개미로 비유된 것 같다. 특히 길상이가 벌을 구해주는 장면이 눈에 띄는데, 길상이가 최씨 집안에 귀인일지 계속 읽어봐야겠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누더기 꼴의 두꺼비를 걷어찬다. 누리탱탱한 배 바닥을 드러내고 저만큼 나가떨어졌던 두꺼비는 몸을 뒤집더니 다시 엉금엉금 기어간다.


양반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신세가 된 김평산. 그 비애와 비참함이 두꺼비에 투영되었. 바닥 생활을 하지만 다시 어떻게든 일어서본다는 의지가 담 있다.



2편

1장 사라진 여자

남과 같이 잠잘 생각 말고 읽었던 글 다시 읽고 썼던 글 다시 쓰고, 그러면 차츰 이치를 알게 되느니라.


마치 나에게 하는 말 같아서 자꾸 가슴에 박히었다. 잠 줄여서 읽고 쓰고 열심히 해야지!! 토지 2권으로 넘어간다.






1권 완독 후 독서모임 회원님들과 줌으로 대화를 나눴다. 각자 인상적이었던 인물, 상황, 묘사 등에 대한 생각을 주고받으니 책 한 권을 더욱 풍성하게 읽은 느낌이다. 그래서 앞으로가 더더욱 기대되었다. 독서의 계절인 가을이 더 기다려지는 이유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하소설 <토지> 함께 읽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