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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일리 Dec 19. 2024

비정함, 부정(父情)의 반대말

오늘 너무나 가슴 아픈 기사를 읽었다. 포항에서 일어난 일인데, 12월 초에 한 가족이 사는 아파트에서 불이 났고 그로 인해 중태에 빠진 상태로 화상 치료를 받는 21살 청년의 이야기였다.


놀랍게도 방화범은 그 청년의 아버지였다. 당시 24살, 21살의 건장한 두 청년이자 형제는 아버지를 말려봤지만 소용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는 집에 기름을 뿌리고 부탄가스를 터트렸고, 화재 현장에서 사망했다. 그리고 형은 전신 2도, 동생은 전신 3도의 화상을 입었다. 형은 수술 후 안정을 찾고 회복 중이지만, 동생은 1차 수술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건강 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가 3억 2천만 원이 들고, 생존율이 5%라는 설명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동생의 해군 전우들이 모금 활동에 나서줘서 5억 원이 모금되었다. 그렇지만 앞으로 2억 4천만 원가량의 치료비가 더 필요하다고.


동생은 어릴 적에 색소폰 신동으로 유명했었다고 한다. 크면서 더욱 음악적 재능을 키워 한양대 실용음악과에 입학했고, 해군에 지원해 복무를 마쳤다. 그리고 다시 학교로 복학할 예정이었는데 그만 사고가 나고 만 것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친구였다는 해군 전우들의 전언이 가슴을 먹먹하게 했다. 모금이 시작된 지 나흘 만에 5억 원이 달성된 것을 보면 얼마나 건실한 청년이었는지 짐작이 간다.


어떤 가정사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런데 그 아버지는 꼭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왜 창창한 나이의 두 청년까지 위험에 빠뜨려야 했는지 내가 다 야속하기만 하다. 그리고 박경리 작가님의 소설 <토지> 속 강포수가 떠올랐다. 자신의 존재만으로도 아들의 미래에 폐가 될까 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강포수. 이런 부정(父情) 앞에서 고인이 되신 그분의 비정(非情)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사건 당일, 아버지의 방화 시도를 119에 직접 신고했다는 아들들. 아마도 그들은 젊은이들만의 강한 힘을 사용해 물리적으로 아버지를 제압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20대 청년들임을 감안한 추측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놔두고 도망을 갔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 화마 아순식간에 그들을 덮쳤겠지만, 그 청년들은 위급 속에서 틀림없이 아버지를 향한 어떤 필사적인 노력을 했을 것이다. 과연 그들의 아버지는 지금이라도 하늘에서 아들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훗날 아이가 내 울타리에서 떠나갈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음을 느낀다. 아이를 잘 길러서 독립을 시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편으론 나와 남편이 아이에게 짐이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말이다. 오늘 기사를 읽으니 더더욱 그렇다. 가슴이 답답하고 강포수의 선택을 자꾸 떠올려 보게 된다. 기사 속 건장한 몸의 청년이 붕대를 칭칭 감고 누워있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



*기사 원문

https://v.daum.net/v/202412190759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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