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불평스럽지도 그렇다고 만족스럽지도 않은 애매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답답하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뭘 원하는지도 몰라서 답답하다고 말도 못 했다.
그때 우연히 읽은 책에서 만난 문장 “정체성은 삶의 동기다.”
그 이후로 ‘정체성’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 박혀 한동안 빠지질 않았다. 나의 정체성을 스스로 설명할 수가 없었던 거다. 한 달쯤 지났을까 오랜만에 만난 친언니와 대화를 하다 슬쩍 고민을 흘렸다.
-아직도 내 정체성을 모르겠어.
-그거 왜 그런 줄 알아?
-왜 그런 건데?
-그동안 네가 꾸준히 해온 게 없으니까 그렇지.
의외로 답은 간단했다. 그 명료한 답을 듣고 머리가 띵- 했다.
그럼 내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뭘까. 당장 떠오르는 건 글쓰기였다. 작심삼일조차 어려운 내가(진부한 표현이 아니라 진짜다. 나는 다음날 아침에 눈뜨면 리셋되는 작심 일일이다.) 그나마 꾸준히 해온 일이 글쓰기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왠 걸, 한동안 덮어두었다 그리 오래지 않아 다시 시작하려는 줄 알았는데 마지막으로 글쓰기라고 남겨둔 것이 벌써 2년이 다 되어간다. 심지어 삼사십 개는 써뒀겠지 했던 글들도 자투리까지 짤짤 겨우 긁어모아야 스무 개도 안된다. ‘이제는 글쓰기를 취미라고 말할 수 있다.’라는 문장을 떡 하니 써둔 에세이가 생각났다. 취미 유목민이던 내가 드디어 나와 맞는 취미를 찾아 정착했다는 내용이었다. 부끄러웠다.
심지어 그보다 더 부끄러운 일이 생겼다. 몇 년 전까지 함께 글쓰기 하던 친구가 브런치에 쓴 글을 보게 된 것이다. 올라온 글의 수보다 그사이 눈에 띄게 좋아진 필력에 깜짝 놀랐다. 물론 예전부터 잘 쓰는 친구였지만 이제는 정말이지 제법 작가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내가 코로나를 핑계로 글쓰기 모임도 그만두고 쉬는 동안 친구는 다시 모임을 만들어 글을 쓰고 있었다. 꾸준함의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작년에 시작해서 석 달 만에 글 몇 개쯤 올리고 내팽개쳐버린 내 브런치를 보니 황량하기 그지없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내가 갖고 있던 약간의 재능을 허비해버린 셈이지. 인생은 아무것도 이루지 않기에는 너무도 길지만 무언가를 이루기에는 너무도 짧은 것이라고 입으로는 경구를 읊조리면서 사실은 자신의 부족한 재능이 드러날지도 모른다는 비겁한 두려움과 고심을 싫어하는 게으름이 나의 모든 것이었던 게지. 나보다도 훨씬 모자라는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그것을 갈고닦는데 전념한 결과 당당히 시인이 된 자들이 얼마든지 있는데 말이야. 호랑이가 되어버린 지금에야 겨우 그것을 깨달았지 뭔가. 그것을 생각하면 나는 지금도 가슴에 타는 듯한 회한을 느낀다네. 내가 구슬이 아님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애써 노력하여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또 내가 어느 정도 믿고 있었기 때문에 평범한 인간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이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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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보다 능력이 대단하지도 않으면서 노력을 티 내고 싶지도 않았다. 노력한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남들에게 부족한 내 실력이 들킬 것만 같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내가 꾸준히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였다.
이제는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싶다. 가장 먼저 게으른 완벽주의에서 벗어나려 한다.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되겠지. 친구가 대단한 건 맞지만 그건 내가 아니라 더 대단해 보이는 거고 내가 작아 보였지만 그건 나라서 작아 보이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그저 각자 자신의 구슬이 빛바래지 않도록 열심히 닦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