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대구에는 ‘앞산’이라는 투박하지만 정겨운 이름의 산이 있다.
그 산은 늦은 밤 멀리서도 밝게 보이는 전망대가 있어 정상보다는 전망대 코스로 야간산행을 다니는 사람이 많은 곳이다. 올라갈 때 한 시간, 내려올 때 삼십 분 정도의 적당한 산행코스로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인기가 좋다. 하지만 산행코스가 짧다고 산책길처럼 만만한 곳은 아니다. 보기에도 위압감을 주는 엄청난 경사가 등산로 입구부터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도 앞산은 거리가 멀어 한동안 가지 않다가 곧 가게 될 한라산 등산에 대비해 최근에 두 번 다녀왔다.
앞산 전망대로 가는 길은 두 갈래가 있는데 전망대까지 600m 남은 지점에서 다시 만난다. 처음엔 비교적 경사가 완만한 숲길 코스, 그리고 다음은 경사가 가파른 안일사 코스로 해서 갔다. 처음 숲길로 다녀왔을 땐 숨찬 기억도 크게 없고 개운했던 기억뿐이라 두 번째엔 자신만만하게 가파른 코스로 걸었다.
지난주 숲길로 갔을 때와 달리 안일사 코스로 걸으니 중간쯤 해서 숨이 턱턱 막혀왔다. 숲길 코스 땐 두어 번 서서 숨을 고르고 정상까지 어려움 없이 올랐는데 말이다. 가만 생각해보니 초반에 쏟아부은 에너지 차이가 원인이었다. 경사가 어마어마한 곳인데 웬일로 힘이 들지 않아 그대로 쭉쭉 올라간 게 화근이었다. 에너지의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에너지 보존의 법칙이 떠올랐다. 페이스 조절을 못 한 차이가 이렇게 나는구나 싶었다. 혼자서 산을 오르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이 났다. 그제야 지난번 올라갈 때도 똑같이 헉헉대며 힘들어했던 기억이 났다. 지난번에는 힘들지 않았던 게 아니라 내려오고 나서 힘든 기억을 새까맣게 잊었던 거다. 힘든 일도 지나고 나면 아름답게 미화된다더니 딱 그 짝이었다. 몇 년 전 지리산 종주 때 만난 등산객이 친구에게 내뱉던 하소연이 떠올랐다.
-종주한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찾은 내가 미친년이지. 이렇게 힘든 걸 까먹고 있었어!! 내가 또 오면 진짜 인간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 등산객이 지리산을 또 오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누구나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도 지리산을 생각하면 다리가 퉁퉁 부어 양손으로 허벅지를 잡아 올리면서 하산한 고생보다는 천왕봉 일출의 감동이 훨씬 강력해서 누군가 지리산에 대해 묻는다면 해가 뜨기 전 여명의 아름다움과 달큼한 숲 냄새에 대해 말할 참이다.
지난주 잊었던 힘든 기억과 지리산 종주를 떠올리다가 그동안 종종 등산 때마다 짜 맞추어 보던 인생과 등산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다. 누구나 자신만의 페이스가 있다. 생각이 많으면 더 힘들다. 함께 오르는 사람이 중요하다. 쉬면 더 쉬고 싶어진다... 이처럼 등산은 우리가 사는 삶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서 참 매력적이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언젠가 완주한다는 사실도 그렇다. 누구나 속도의 차이만 있을 뿐 스스로 포기하지 않으면 언젠가 성공한다는 게 나에게 큰 힘이 된다. 옛날 시조에서도 말하고 있지 않나. “태산이 높다고 한들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를 높다 하더라.”
산은 내게 정상에 오르는 것 자체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여러 번 앞산을 오르면서도 각자 다르게 기억되는 건 그 과정이 전부 달라서이다. 어떤 날은 함께 간 사람과 나눈 대화가 재밌었고, 어떤 날은 미세먼지 없이 깨끗한 야경이 특히나 예뻤고, 또 어떤 날은 늦은 봄 마지막까지 피어있는 벚꽃이 반가웠던 것처럼. 그중에 등산 신기록을 세운 날은 내 기억에 없다. 그냥 전보다 체력이 좋아졌나 보다 하고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오를 때 못 본 쉼터를 내려갈 때 보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여유를 가져야지 한번 더 다짐해본다.
그저 한라산 예행연습으로 찾은 두 번의 산행 치고 꽤 많은 교훈을 준 고마운 ‘앞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