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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 죄송한 사람들

 일요일 밤, “등록” 버튼을 누르고 막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직후부터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상품에 관심 있어 연락드려요”, “직거래 어디서 할 수 있나요”. 동시에 네이버 카페 앱 알림도 울리고 있었다.


 중고나라에 이제 막 3개째 글을 올린 참이었다. 아직 13개를 더 올려야했지만 포기해야 했다. 문자 앱에 가득한 +82-10-0000-0000만 봐도 멀미가 났다. 3개의 약속을 잡는데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제품에 대한 문의는 없었기 때문에 서로의 시간만 맞추면 되었다. 하나 같이 급하게 물건이 필요하다고 했기 때문에 바로 다음 날로 약속을 잡았다. 퇴근 후 2건의 직거래를 하고 첫 글쓰기 수업을 들으러 가야 했다. 하나만 삐끗해도 진땀 날 일정이었다. 빠듯한 이동 시간을 걱정하다 늦게서야 잠이 들었다.


 월요일 아침 8시 55분, 자전거를 구매 하겠다던 사람에게서 “판매자님, 어제 여쭤보지 못했는데”로 시작되는 문자가 왔다. 정확히 5분 후인 9시에 거래는 취소되었다. “제가 탈게 아니고 선물주려고 해서 깨끗한 제품으로 구매해야 할꺼 같습니다 번거롭게 해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다음 예약 하신분에게 넘기겠습니다”라고 그는 말했다. 분명 눈으로 글자를 읽었는데 목소리가 들렸다. 성별과 연령, 정중함을 연기하는 말투와 모습까지도 그려졌다. 맛집 문 앞 대기자 리스트처럼 나한테도 예약 장부같은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어이가 없었다.


 장부는 없지만 나에겐 지난 밤 쌓인 문자들이 있었다. 다음 순번인 듯한 사람에게 문자를 보냈다. “거래가 불발 되었는데 구매 의사가 있으신가요?” “네 어떤 모델이죠?” 만화처럼 내 머리 주위로 말풍선이 떠다녔다.  


 서너 사람에게 연락을 해 보았지만 다들 “다음 사람”에게 넘기겠다고 했다. 10분 거리에 살고 있다며 지금 당장 올 수 있다던 사람도 양보를 했다. 또 다시 뭔가 오해 받은 듯한 기분이었다.


 “시간 약속하고 취소하는 분들 사양합니다. 꼭 구매 하실 분만 연락주세요.”라는 내용을 덧붙여 다시 글을 올렸다. 또 다시 쏟아지는 문자, 댓글, 전화. 내 자전거를 사러 -그게 언제든- 내 시간에 맞추어 올 수 있으며, 절대 약속을 취소하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는 사람들의 연락처를 잔뜩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약속을 잡고 예약 중이라는 댓글을 달아놓은 후에도 아직 거래가 안 되었다면 내가 올린 가격보다 더 비싼 값에 사겠다는 문자가 왔다. 지친 채로 점심을 먹고 의자에 앉은 채로 낮잠을 잤다.


 일어나니 또 다른 문자가 와있었다. 미싱을 구매 하기로 한 사람이었다. 첫 문장은 “제가 어젠 미쳤었나봅니다”였다. 전철을 타고 미싱을 사러 온다고 해서 말렸더니, 근처 사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서 역까지 옮기겠다던 사람이었다. 나는 그가 지난 밤에 미쳐있었지만 오전 내내 고민한 끝에 이성을 되찾았고, 파주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전 패스하겠습니다 미안합니다”로 끝난 6줄 짜리 반성문 같은 문자에는 마침표가 하나도 없었다. ‘그러고보니 오전의 그도 마침표가 없는 5줄 짜리 문자를 보냈지... 죄송한 사람들은 너무 죄송한 나머지 마침표도 찍을 수 없는 걸까? 아니, 그게 중요한게 아니고...’ 머릿속에 혼잣말이 맴돌았다.


 첫 번째 죄송한 사람에게는 분에 못 이겨 화를 냈고, 양보하는 사람들에게는 “네”라고 대답을 했지만, 두 번째 죄송한 사람에게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월요일 오후의 나는 친절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었다. 일요일 밤의 뜨거운 사람들은 사라지고 피로한 나만 홀로 남았다. 다시 올린 판매글에는 몇 개의 뜨거운 문장들을 추가해야 했다. 난 아직 14개의 물건을 팔아야 하고 죄송한 사람들은 내 물건을 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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