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떼쓰는 아이, 그런 나를 사랑해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호구 에서- 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20대 중반까지,
예전에는 회사며 어디에서나 시키는 대로 다 하고, 남을 우선으로 하는 그런 삶을 살았다.
그러다 몇 개의 회사와 프로젝트를 거치면서, 그런 삶이 '호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키는 대로 했는데도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거나, 나를 보호받지 못하는 상황들이 생겼다. 뭐 그 정도면 양반이고 나를 '이용'하려는 사람들, 더러는 아예 쓰고 버리려는 경우까지 당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몇백만원을 들여 학원을 (결과적으로?) 잘못 등록해서 내용증명을 보내는 혼자만의 전쟁을 치르기도 했고, 대출받은 전세금을 홀라당 날리는 사건도 겪었다. 부시장실로 떳떳하지 못한 자가 망해봐라는 식의 민원을 넣는 사람도 있었고, 내 뒷조사를 해서 악마의 편집을 해 투서를 넣는 사람, 코피 터져가며 야근했던 수개월을 거꾸로 '수당 부정수급'이며 '공공시설 사적 이용 등' 음해공작의 근거로 공격하려던 사람 등등...
그러다 한 2-3년 전인가, 문득 보니 나는 나름 내 기준대로 행동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나 자신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몇몇 후배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던 것이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비추어졌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착한 사람인데, 남을 도우려는 사람인데'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사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착한 것도 아니었고, 솔직한 사람도 아니었으며, 역지사지도 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아쉽게도, 나에 대한 자평이 '착각'이었다는 것조차 이제 와서 알게 되었다.
돌아보니 나는 처음부터 그저 내 생각을 우선으로 놓고 살았을 뿐이었고, 그 좁은 틀을 벗어나기 위해 안간 노력을 한 현재에 이르러서야 이 정도 수준으로 자기반성이 가능하게 되었다.
스스로의 노력도 노력이었겠지만, 아마 지금 나의 상황이 그것을 더 빨리 가능하게? 해주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받지못한것들 에 대한 억울함
나는 그동안 내가 받지 못한 것들에 '억울하고', '서운해'하며 살았다. 대학생 시절까지도 다른 애들과 비교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했던 것 같다.
지금 당장 떠오르는 기억은... 고등학생 시절 'MC스□어를 쓰는데, 나도 저거 쓰면 성적 잘 나올 수 있는데', '다른 집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도 뭐라고 하지 않는데, 알람시계를 맞춰놓고 못 일어난 게 그렇게 잘못된 일일까', 대학생 시절에는 '동기들은 다 학원도 가고 유학도 가네. 나는 직접 벌어서 가라고 하네' 그런 일들.
입사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에는 '학벌보고 능력 안 본다', '낙하산에 라인 따져서 뽑네', '소처럼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도 희망고문이구나' 뭐 그런 생각까지도 했던 것 같다.
마치 내 것처럼 내가 응당 받아야 하는데, 그만큼의 자격이나 준비가 이미 된 사람처럼 말이다.
지금 와서 보면, '나는 참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런 나를 봤던 부모님, 선배, 상사분들은 얼마나 답답하고 아쉬웠을까 그런 생각도 든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상황 탓하고, 핑계를 먼저 대는 사람이었지 않았나 싶다. 스스로 먼저 노력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들도 나에게 무한정 시간이며 뭐를 줄 수 없었을 거라는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비로소 그들과 비슷한 상황에 이르러서야 말이다. 자기 삶을 건사하는 것도 녹록지 않은데, 많은 것을 함께 나누려 노력했다는 것을.
맞다. 철이 덜 들었던 거다, 그것도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눈에 보이는 노력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해보지 않았으면서, 자기 입장에서 계속 뭐 맡겨놓은 것처럼 달라고만 하는 내가 얼마나 답답했을까. 떼쓰는 어린애 마냥 말이다.
사실, 불과 최근에도 마트에서 어머니를 붙잡고 울고불고하는 어린애를 보았었다. 그 아이를 보면서, 나는 나 스스로를 생각해보기 전에 회사에서 나에게 온갖 억지를 쓰는 사람들이 먼저 생각났다.
마치 법 위에 있는 것처럼, 온갖 규칙을 무시하고 자신이 법인 것처럼 생떼를 쓰는 사람들 말이다.
헌데, 사실 그들을 뭐라고 할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 역시 내 삶에서, 나에게 사랑과 믿음을 주었던 사람들에게 그런 행동을 저지르고 있었다. 그들은 꿋꿋이 나를 믿고 응원하는 마음만으로 내게 무언가를 주지 않았을 것이다. 대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보면 나의 부모님도 넉넉하거나 풍족하지만은 않았을 텐데, 경제적으로나 심적으로나 말이다.
나의 몇몇 선배들, 그리고 내가 함께 일했던 상사들은 대체 나의 뭘 믿고 그렇게 일을 하고, 사고를 쳐도 감내했을까...
그동안 나는 그런 게 안 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간 '당했던 것들', '받지 못했던 것들', '잃어버린 것들'이 억울하고, 걱정되고 불안하다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 결과적 후배며 다른 사람들에게 인색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아온' 사람이었는데, 세상에 당연한 거라곤 하나도 없는데, 마치 그런 마음들을 당연한 내 것처럼 굴며 살아온 시간이 부끄러워진다.
인자함? 넓은 아량? 여유?
아니, 이걸 무어라 단어로 옮겨 적기에는 소실되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저, 받지 못한 것들을 토로하는 어린아이에서, 누군가와 무엇을 나누고 도움을 주고 뒤를 지지해주는 '어른과 선배로 변화하는 시간'이라고 하자.
받은 것들에 고마워하고, 자기를 돌아볼 줄 아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그런 시간. 나누고 주는데도 무언가 마음에 생기는 순간들 말이다.
앞으로 그런 삶을 살아가도록 노력해야겠다. 적어도 내가 그동안 받은 것 이상으로, 아- 그건 '내가 받은 것들에 감사하고 다시 누군가와 나누는 마음이었구나'라고 감탄하고, 다시 또 감사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