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ica n Apr 03. 2022

내가 바랐던 것들로부터 온 편지

2019 - 2022. 4.


몇 년간 공들였던 지역에서 도망치다시피 이직했었다.


그것도 벌써 2년이 지났으니, 약간은 흐릿해질 만 한데 자꾸만 되뇌게 된다.

당시 이유는 제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다는 것이었는데,

그 밑에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실망, 배신감, 허탈함 등등이 깔려있었다.


지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삶의 모순에 대해 조금 더 덤덤하게 받아들여보려 애쓰고 있지만, 그때는 더 이상 나아갈 길도 가능성도 없이 침잠하고, 갈수록 더 안 좋아질 것이라는 절망감에 빠져있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공들였던 몸담았던 조직은 실제로 부패하고 곪아서 앞서 뛰쳐나왔던 곳들과 비슷한 모양새로 망해가고 있다.


내가 그곳에 있었다면 더 나아졌을까? 글세,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아니었을 것 같다. 다만, 스스로 충분히 맷집을 키우지 못한 지점에 대한 아쉬움이 분명히 있고, 조직은 모르겠으나 지역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지울 수 없는 부채감을 안고 있다.


스스로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던 방식과 가치가 부정당하고 공격받던 순간,

그리고 주변은커녕 스스로도 그것을 지켜내지 못할 때가 왔었다.

좋게 말하면 그 고비를 버텨내지 못했고, 이후로도 확신을 가져보려 했지만 실패의 연속이었다.


밤 11시를 앞두고 한참 대학원 과제를 마무리한 다음 10여분만에 L마트로 가서 단 2분 만에 번개쇼핑을 마치고 집에 왔다.

그렇게 정신없이 집에 돌아와 늦은 저녁을 먹는데 Y에게서 카톡이 왔다. 한 두달? 아니 석 달만이었나? 무슨 일인지 싶어 전화를 걸었더니 연결이 되지 않아 잠시 걱정스러웠는데, 웬걸 영상 통화가 걸려왔다. U와 둘이 창업을 하게 되었다며 한창 축하주?를 마시고 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에 덧붙여 나에게 고마움과 아쉬움, 아련함을 전해왔다. 3년 전에는 딱히 내 이야기에 반응하는 것 같지 않았던 터라 약간은 의외였다. 사람이 없고 나니 그 공백이 느껴진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그들이 내게 무엇을 배울 수 있었을까, 나는 배울만한 사람이었을까.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정작 나는 근 3년간 '타인으로부터 자신감을 얻는 삶'의 폐해를 호되게 겪고 난 후,

2년에 걸쳐 자존감을 자가발전하는 노력을 했지만 그마저도 녹록지 않음을 느끼던 차였다.


좋은 사람들, 스스로 멈추지 않고 발전해가는 사람들과 모여야 하겠지.

그렇게 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참 불가능에 가깝고.. 일종의 로또 같은 가능성에 하염없이 현실도피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거진의 이전글 그래서 내(네)가 원하는게 뭔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