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정반합으로 나아갈 때
4월 중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새로운 시작을 선언하는 부부의 혼인 서약을 보고 돌아왔다.
그러고서 몇 주 정도 지났을까? 초여름 날씨나 다름없다는 말이 무색하게, 금세 스산한 분위기에 접어들었다.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게 또 어디 있을까 싶다.
해가 뉘엿뉘엿 들어가던 결혼식의 끝자락, 신랑이 하객들을 증인으로 신부에게 다시 한번 청혼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 프로그래머(개발자)들은, 첫 번째 버전이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선 제 기능을 할 수 있는 초기 버전을 만들고, 계속 그것의 기능을 개선하며 오류를 수정해 갑니다. 더 나은 방향으로 버전이 향상되는 것이죠.
당신과 나 우리 두 사람도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 살아왔고, 처음 함께 꾸리는 가정에 항상 좋은 일만 있었으면 하지만, 쉽지 않으리라는 걸 압니다. 그럼에도 우리 두 사람, 나는 당신과 함께하는 삶을 만들어 갈 겁니다. 나는 당신을 믿을 겁니다. 함께 해줘서 고맙습니다.
투박하고 뚝딱거렸으며, 긴장 속에 입술과 목이 말랐음에도, 온전히 전해진 신랑의 말들. 참 멋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축사를 해주신 목사님의 이야기 역시 인상 깊었다. 바로 서로를 사랑한 사자와 소에 관한 이야기였다.
서로를 깊이 사랑한 사자와 소가 있었습니다. 이 둘이 결혼을 하면서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약속을 했답니다.
사자는 최선을 다해서 날마다 소에게 면하고 맛있는 살코기를 아침마다 가져다주었습니다. 소는 그것이 힘들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그리고 소도 날마다 사자에게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가장 싱싱한 풀을 가지고 사자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사자도 그것이 힘들었지만 또 괴로웠지만 참고 또 참았습니다.
소와 사자가 서로를 향한 마음이 크면 클수록 또 서로를 향한 최선이 크면 클수록, 오히려 두 사람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둘을 서로를 위해 더욱 참았습니다.
그러다 이 소와 사자가 결국 시간이 지나서 크게 다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둘은 싸우면서 모두 똑같은 말을 했습니다.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그것은 뭐냐면 '나는 당신에게 최선을 다했어'였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하는 것, 정말 중요하지요. 이것 못지않게 우리 중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내 중심이 아니라 우리의 배우자 중심으로, 상대를 중심으로 사랑하는 법들을 익혀가는 것입니다.
그것 또한 너무나 중요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자기의 생각과 이익을 구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니까요.
매년 한두 차례 결혼식에 참석할 때마다 두 사람과 양가 가족을 축복하는 말을 들어오면서, 항상 좋은 말, 바른말이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왜 두 사람의 말이 계속 머릿 속에 남아 뱅뱅 도는 걸까.
결혼을 단순히 축하할 일로만 보는 것을 넘어, 삶의 방식으로서 이야기하려고 했던 것 때문이려나. 요 몇 년 사이 내가 그동안 놓쳤던 부분을 뒤늦게 되새김질하며 지내왔기 때문이려나.
결혼과 날씨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2년 전 춘삼월에 확진되어 근신하며 <기상청 사람들>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던 기억이 났다. 사실 한 5년 전부터 드라마를 진득하게 보는 일이 아예 없었던 참이었다 영화라면 모를까, 드라마 한 시리즈를 언제 시간 내서 다 볼까?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그러다 문득, <기상청 사람들>을 두고 한쪽에서는 유튜버들이 오랜만에 막장? 드라마라며 호들갑을 떠는데, 또 어느 쪽에서는 정말 '기상청 사람들'이 고증도 잘했고 자신들의 이야기를 조명한 것 같다며 화색을 비추는 통에 대체 무슨 드라마인지 궁금해졌다.
시간이 지나 지금 다시 관객평을 들여다보니, '역대급 고구마 드라마'에 '구시대적이고 억지설정'이라는 말이 많더라. 당시 시청자 게시판이며 댓글도 비슷한 흐름이었던 것 같다. 시원시원하지 않고, 찌질하며, 답답하다고.
당시 시청자들이 느낀 게 맞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드라마는 내 꿈의 대리만족이고, 판타지이며, 허구이니까. 편히 쉬면서 힐링을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날벼락이었을 테니.
그런데 이 점은, 내가 드라마의 흐름을 보는 동안 등장인물들이 하나같이 내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유이기도 하다.
불행했던 가정사로 결혼을 거부하는 남자, 치열하게 커리어를 쌓으며 살아왔지만 사랑에 배신당한 여자, 믿음직스럽지 못한 데다 자기 열등감에 빠져 바람을 핀 남자... 촉망받던 인재에서 지금은 육아와 남편 뒷바라지로 지친 여자, 일과 책임감에 빠져 가족과 멀어졌다가 뒤늦게 노력하는 남자와 그런 그가 어색한 가족들...
대중 드라마라고 하면, 잘못한 남편, 찌질한 남자, 배신한 놈은 일말의 용서없이 처단하는 사이다 스토리여야 하고, 주인공은 이들을 단죄하는 심판자이며 멋지고 시원시원한 성격에 눈빛만 보아도 믿음이 가야 제격일 것이다. 헌데, 남주인공들이 하나같이 찌질하거나 배신자고, 무책임하며 믿음이 가지 않는데 오죽했을까. (다만 이건, 그런 니즈를 갖고 있는 사람들에 한정한 이야기이다.)
거꾸로 그렇기 때문에 극 중 인물들의 태도와 선택, 실패에 대해 눈길이 가는 건- 아마 과거나 현재의 나와 닮았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상대방에게 믿음직한 사람이 되기는커녕, 구질구질하고 변변치 못한 남자들에게는 더더욱.
사람은, 사람들은, 아니 어쩌면 삶 자체가 모순의 연속이다. 콘텐츠는 그런 우리들의 재미없는 삶, 넓은 스팩트럼 속에서 제작자나 관객의 주관점(관심사)에 맞춰 극히 일부, 흥미로운 부분을 따와서 단순화하고 재연(representation)하는 것임으로, 현실에만 두고 싶은 그런 못난 모습들-찌질, 잘못, 배신, 억척스러움-을 응징하지 않고 품에 안는 포용의 서사는 달갑지 못했을 것 같다.
그런 못난이들에게 서사를 부여함으로써 정당화하거나, 함부로 용서하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런 모순 덩어리, 모난 모습의 사람들, 그들이 어떻게 한 걸음씩 딛고 살아가는지 궁금했다.
갖은 부조리와 억울함에 갇히지 않고 씩씩하게, 중요한 순간엔 서로 반성하고 포옹해 주는 삶의 모습이라 마음이 갔던 건지도 모른다. 현실을 산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닐까, 싶어서.
- 2024. 4. 19.
*마지막화를 급하게 해피엔딩으로 마무리한 건 정말 별로긴 했다. 몇몇 억지설정이 보인다는 것도 물론 인정. 그 점을 제외하면, 억지 로맨스가 지겹다는 분은 한 번 봐볼 만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