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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pica n Nov 20. 2020

누군가의 결혼식을 다녀오며(1편)

삶과 관계에 대한 고민



어쩌다 보니 1년에 꼭 한 번꼴로 결혼식을 다녀올 일이 생긴다.  작년 9월 마지막으로 올해는 식장에 갈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오늘 일이 생겼다.


특이한 점은, 나와 아무 연고도 없는 지역에서 열리는,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들의 결혼식이었다는 것.  

먹고사는 일을 위해 거래관계로서 식장을 방문한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는 그동안 가까운 지인과 친구들의 결혼식을 기록해왔는데 그건 매번 나름 이유가 있는 행동이었다. 그 중 일로서 결혼식장을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 그것도 7년만이었다.



 내가 누군가의 결혼식을 기록하려고 했던 이유는, 가장 축복받고 기억에 남아야 할 결혼식이 그간의 여러 준비와 삶의 무게로 인해 정신없이 지나가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경험상 이건 비단 결혼식뿐 아니라 다른 행사들도 마찬가지였는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사람은 그 일정이 다 끝날 때까지 온전히 행사를 즐길 수 없다는 특성 때문이었다.


 전통혼례에서 서양식으로 대세가 바뀌고 아무리 결혼식의 자잘한 준비를 컨밴션이나 컨설턴트에게 맡긴다고 해도, 결정과 중요한 준비는 주인공 부부와 가족 내외가 할 몫이니.



 여하튼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약간 긴장되고 어색한 느낌이 감돌고 있지만, 2019년까지만 해도 대부분 결혼식은 여러 사람들로 붐볐고 정해진 시간 안에 맞춰 공장처럼 찍어내는 결혼식 일정 속에서 양가 가족과 신랑 신부는 식이 시작할 때 이미 그간의 행사 준비로 지친 모습이 역력해 보였다.


 겉으론 멀쩡해 보여도 그건 일종의 화광반조랄까, 마라톤의 완주 직전 상태라고 할까. 심한 경우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으로 달리다 온 신부도 있었을 정도니(아, 이건 좀 심한 케이스인가)  꼭 맞는 표현은 아니겠지만, 자기 생일파티를 직접 준비하는 것이나,  간난애기가 자기 돌잔치를 준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정신이 없는 건 둘째 치더라도, 여러 결혼식을 방문해보면 할수록, 두 신혼부부만이 주인공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생일이라는 날이 그 당사자가 태어나고 그날까지 잘 자랄 수 있도록 애정과 관심, 응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과 은인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와 같은 맥락에서 말이다.


 온갖 RPG게임 속 주인공은 말할 것도 없고, 다마고치 게임이나 프린세스 메이커, 프로듀서101 속의 주인공이 성장하는 것만 보아도, 우리는 얼마나 뿌듯해하고 대견했던가.  그런데 신혼부부의 수십 년을 지켜봐 온 가족들은 그 마음이 어떨는지.  나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영역이지만, 당사자들 역시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여러 사람들의, 특히 가족들의 삶의 교차점에 있는 그 중요한 순간을 꼭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가까운 지인들은 사진 촬영은 하지만 영상을 남기는 경우가 없어서 내 몫이 되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 누군가 시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지만 삶을 기록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을 안고서 말이다.



 그렇게 오늘도, 어떤 두 가족과 새로운 한 가족의 이야기를 기록하기 위해 식장을 방문했다.


오랜만에 일면식도 없는 타인의 결혼식을 보면서,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결혼식을 지켜보게 되었다.  신랑 신부는 다소 긴장한 것처럼 보였고, 그 때문인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 어수선한 시국에 백년가약을 준비하느라, 여느 신혼부부들보다 더욱 까다로운 준비기간과 걱정의 시간을 거쳤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일종의 크루즈 모드처럼, 웨딩컨벤션 관계자들의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본식, 원판촬영, 폐백까지 약 1시간 반 정도의 여정을 마치니 신혼부부 두 사람의 지친 기색이 돌았다. 가족들도 마찬가지. 이번에도 내 생각이 맞았구나 싶었다.  주인공이 직접 자기 행사를 기획하고 출연하기까지 하는 건, 참 고생스러운 일이다.




 참 우습게도 작년 9월 결혼식장을 나서는 길에는 비슷한 또래의 거의 마지막 지인이었던 까닭에 약간의 우울감과 온갖 인생에 대한 고민들로 가득했는데, 이번엔 전혀 다른 차원의 생각들로 꽉 찼다는 점이다.


"과연 결혼이 끝일까?"부터 시작해서, "결혼(식)은 왜 하는 걸까?",  "100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70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가족이란 무엇일까?", "가족들에게 잘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등등의 생각 말이다. 불과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사이에 나에게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부디 오늘 축복받은 신혼부부들은, 서로를 의지하며 좋은 가족으로 성장해나가길 기원한다. 결코 쉽지 않을 것이고, 많은 사건과 장애들이 있겠지만, 그건 혼자 있을 때에도 분명 마주할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보다는 둘이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과 짐을 나누는 것, 서로에게 힘이 되는 것이 100년이라는 삶을 살아가는데 더욱 도움이 될 것이리라.  


 누군가의 말처럼 결혼이 능사도 아니고, 꼭 해야 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 분들도 서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들이 곁에 꼭 있길 바란다. 당장 내일에도 무슨 일이 생길지 알 수 없는, 긴 인생을 살아가는데 혼자 짐을 짊어지는 것처럼 힘든 일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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