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생각서랍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pica n Nov 21. 2020

누군가의 결혼식을 촬영하고 난 후기(2편)

성취감과 먹고사니즘의 사이에서

※ 이번 글은 '누군가의 결혼식을 다녀오며 - 삶과 관계에 대한 고민'(1편)에서 이어집니다. 앞의 이야기를 먼저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난 일요일 낮에 누군가의 결혼식을 오랜만에 다녀왔고, 불과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시간이 엄청나게 많이 흘러간 기분이다.  


 뭐 실제로도 하루하고 반나절은 족히 지났으니 엄청난 분과 엄청난 시가 흘러가긴 했고, 그동안 나는 여기저기 취업사이트를 뒤지기도 하고, 밥을 지어먹고 책을 읽었다가, 운동을 다녀오기도 했으며, 글을 썼다.

 촬영해온 결혼식 영상은 어떻게 편집을 할지 고민하다, 월요일 오후까지 일정을 마치고 난 뒤부터 시작해 새벽에 마쳤다.


 결혼식에 다녀와서 약 30시간 사이에 온갖 일들이 있었던 까닭인지 체감 상 시간이 참 많이 지났다 싶었는데, 막상 촬영을 의뢰했던 신부로부터 화요일 아침부터 독촉? 문의가 온 걸 보고 오늘이 언제인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미 영상 편집은 마쳤고 렌더링(영상 편집 설계도를 기반으로 실제 영상파일로 출력하는 과정)과 유튜브 업로드만 남은 상태라 곧 끝날 것이라고 안내했다.

 흠, 분명 처음에 촬영일을 제외하고 못해도 사흘은 걸린다고 안내를 했을 터인데. 여하간 갑자기 고객으로부터 아침부터 마감독촉?이 오면서, 갑자기 이번 의뢰가 잘 마무리될 수 있을까? 괜한 일을 벌인 건 아닐까? 싶은 걱정이 들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간 돈을 받고 영상을 촬영한 지 6년도 더 지나면서, 나는 사무일과 일상으로도 바쁘게 살았(다고 핑계를 들었)고, 그러다 보니 지인들의 결혼식 영상 역시 마치 블랙홀 사진기처럼 잘 담아두었다가, 결혼식 1주년을 앞두고 깜짝 선물처럼 선사하는 게으른 기록자였기 때문이다.

 추억버프 때문인지, 지인이 무상?으로 선물한 까닭인지 다들 고맙다고 말을 하긴 하는데, 아무리 영상으로 밥벌어먹고 살려고 했다고 해도 사람 취향과 실제 만족도를 내가 어떻게 다 알겠는가. 해서, 딱히 시간에 쫓기는 기분이 들지는 않았지만 마음 한켠에 스멀스멀, 괜히 일이 꼬이려나 싶은 우려가 들었다.

 

 영상은 예정된 시각에 맞춰 잘 나왔고, 의뢰인이었던 신부는 다행히 만족했는지 고맙다는 말을 (카톡으로) 연신 반복했다. 어디서 주워들은 "괜찮으셨다면 '매우만족' 부탁드려요"를 부탁하려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의뢰금을 쾌척하시더라.


 갑자기 얼떨떨한 상태에서 고객에게 영상을 부치고 그분이 남긴 '매우만족' 후기를 보았다.  그분은 식을 3일 앞둔 오후 급하게 예약을 했는데, "저렴한 금액에 열정적으로 촬영해주시고, 퀄러티도 내용도 뭐하나 버릴 것 없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라고 적어주셨다.

 직접 육성으로 나눈 대화라곤 식장에서 시작과 끝에 나눈 인사 정도였고, 나머지는 전부 카톡 메시지로 연락하는 현대식? 비즈니스 관계였는데도 텍스트 너머로 고객이 정말로 만족한 것이 느껴졌고, 그가 필요로 하는 몫을 잘 해냈다는 만족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지향하는 가치, 진정성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인정받은 것 같아 여러모로 기분도 좋아졌다.  최근 들어 이렇게 충만한 감정, 성취감을 느낀 일이 있었던가 싶기도 하고.


 불특정 누군가와 의뢰로 만나는 사이였지만, 먹고사니즘에 이끌려 대충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애초에 그럴 거였으면 다른 돈벌이가 (많이)되는 일을 하겠다는 심산이었기에 이번 일을 통해 더욱 느끼는 바가 많았던 것 같다.


 11월 들어 갑자기 상황이 급변해, '인생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었나' 고민하던 중 조우한 에피소드였다.

 거의 10년 동안 쌓아왔던 노력과 진정성이 평가절하 당하고 사람들로부터 연락이 끊겨 고립되었는데도, 아직 쫄딱 망하지는 않아서 정신을 덜 차린 걸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의식 중에 타인을 위한 삶, 가치를 지향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하다 이런 경험도 하게 된 것인지.



누군가는 말한다. 남의 호주머니에서 돈 나오게 하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라고.

거 당연한 소리를.

나 자신과 주변에 늘상 하는 말이지만, 우리는 7~8천원 하는 한 끼 식사를 놓고도 천원이 더 비싸네 싸네. 싼 게 비지떡이네, 혜자네, 가성비 갑이네. 가게주인/주방장이 초심을 잃었네, 음식 맛이 변했네, 성의가 있니 없니를 따지지 않던가. 그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아, 진상은 논외) 입장 바꿔놓고 돈 내는 사람이 되면 누구나 다 그러니까.


그래서 우리는 내 돈을 받아가는 자가 숱한 사기꾼들, 요령꾼들 사이의 숨은 장인인지, 장인인 척하는 업자인지를 따지고, 노포와 숨은 맛집, 명인을 만나고자 헤매는 게 아닐까. 내 시간을 그만한 가치 있는 사람과 거래하고 싶을 테니까.


공공이든 민간이든, 구멍가게든 대기업이든
타인과 시간을 거래하는 일은 참 어려우면서도 심플하다.


실력과 정성을 담아서, 진정 돕고 싶은 마음으로 대하는 것.  

내가 대접받고 싶고, 돈을 기꺼이 내고 싶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