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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May 22. 2024

독식하는 강림자의 복수

2024_이야챌린지_034_우인후

임시 표지

0일 차.

던전 푸르마의 둥지.

SS급으로 판정난 던전 앞에 도착한 천명의 길드원들은 일사불란 움직였다.

푸르마.

바람의 힘을 쓰는 그리핀, 불의 능력을 지닌 피닉스를 이어 등장한 대형 조류 몬스터로 강력한 물의 권능을 사용했다.

불과 3년 전, 그 하나로 최상위 길드와 수많은 중소 길드가 손도 쓰지 못하고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결코 만만한 마물이 아니었다.

그러나 천명, S급과 A급 헌터를 두루 갖추고 대기업 S.O그룹으로부터 대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 길드의 저력은 대단했다.

이를 단연 자부하는 길드원들.

그리고 그것은 인후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너무 무리하지는 마라, 우인후. 넌 소중한 재원이니까."


길드장과의 단독 면담.

든든한 손이 어깨를 두드렸다.


"아닙니다. 저 이번에는 천명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그래, 강한 개체를 상대하는 일이니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지도 모르겠어."

"반드시, 일으킬 것입니다."


심기일전하는 인후의 모습을 묘한 눈으로 지켜본 이소는 사람 좋게 웃었다.

누구보다도 그를 응원하고 있다.

이소의 손이 인벤토리를 뒤적였다.


"자, 다시 한 달 치다. 조급해하지 말고. 시간은 언제나 우리 편이니 말이다."


위로하는 길드장의 목소리에도 인후의 마음은 마냥 편하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만 끄덕인 그는 쓰게 웃으며 길드장의 호의를 받아들였다.


"그래, 던전에 들어가기 전에 미리 마시면 효과를 더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

"예. 그럼 이만 가서 준비하겠습니다."


인후의 목례에 가볍게 목을 까딱인 이소는 그가 나가자 돌변했다.

그의 입가에 걸린 비릿한 미소.


"흠. 드디어 때가 됐군. 너무 원망하진 마라, 우인후."


처음 그를 환영했던 마음은 진심이었다.

그러나 3년이 넘도록 A급에서 멈춘 길드원.

안타깝게도 그의 성장은 빛을 발하지 못할 것이다.


"이번 던전에서 한 번에 처리한다."

"존명."


그림자에 숨어있던 직속들이 일제히 답했다.

그제야 천막을 나온 이소는 분주한 길드원들을 다독이고, 그들의 분석을 보충했다.

한편, A급 대열에서 선두를 맡은 인후는 푸르마에 대해 설명하며 동급의 헌터들을 다독이고 있었다.

총명한 시선들을 느낀 그는 만족스럽게 웃었지만 이내 씁쓸함이 따라왔다.

입사 10년 차.

C급 헌터로 시작해 A까지 상승했지만, 그게 한계라는 듯 다음 등급의 벽은 넘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후임들은 어떤가.

벌써 S급을 넘어 길드의 최정예 멤버가 된 이들.

훨씬 더 앞에서 정렬하는 뒷모습을 보자, 무력함이 더 짙게 감돌았다.

간신히 마음을 다잡은 그가 다시 까마득한 후배들을 살폈다.


"우린 천명이다. 자부심을 갖고 전투에 임하면 된다. 그러나 너무 방심하지는 마라. 지형 자체가 까다로우니 한 번의 실수가 큰 희생으로 돌아올 수도 있을 거다."


이전에 살아남은 공략대로부터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그들을 이끄는 인후였다.

워낙 위험한 터라, 정찰도 쉬이 되지 않은 던전.

그래도 천명이란 이름값이 그 두려움을 없앴다.

또한 많은 이들이 푸르마와의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분명히 살아 돌아온 헌터들은 존재했다.

특히 그때 살아남아 S급의 반열에 오른 박지원 헌터가 천명에 들어와 별동대를 꾸렸으니, 만반의 준비를 다한 참이다.

A급들이 투지를 다지고 있을 무렵.

길드장 원이소가 상단에 올라 외쳤다.


"다들 살아남아 천명임을 증명하라!"

"와아아-!"


길드원들의 사기가 올라갔다.

인후 역시 상기된 얼굴로 던전을 바라봤다.

박지원 헌터와 같은 기적이 부디 허락되기를.

S급이 모두 진입하고, 가장 먼저 발을 내민 A급으로서 좀처럼 흥분이 가시지 않았다.

특히 천명에 속한 예지 능력의 헌터 윤지아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이번 던전 이후 S급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희망을 잃지 말아요, 인후 씨.'


그동안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됐는가.

바뀌는 시야 속에서 간절한 믿음을 가지는 그.

이내 다른 이들의 탄성이 들리자 다부진 태도로 돌아섰다.

잠시 후.

각기 전투를 대비한 A급들이 적극적으로 후방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그들을 전두지휘하며 나아가는 인후의 눈빛도 생생했다.


"다들 주목. 들어온 보고로는 진척도가 괜찮다고 하니 우리는 여기서 대기한다."

"예!"


다른 길드였다면 해당 취급에 반발했을지도 모르지만, 그들은 천명이었다.

또한 SS급 던전은 하루 만에 공략되는 곳과는 차원이 달랐다.

마나의 농도부터가 진득한 이곳.

솔직히 A급으로서는 이미 체내에 쌓여 빠르게 피로해진 상태다.

그것을 알아챈 인후는 마나를 끌어올려 대원들의 피로도를 낮췄다.

청명한 기운이 몸을 스며들자 한결 나아진 그들은 일제히 베이스캠프를 마련했다.

잠시 후.

잠깐 숨을 돌린 인후는 직속 부하인 영훈에게 일임하고, S급 대원들을 따라잡기 위해 신속하게 이동했다.

이런 단독 행위는 치명적이었지만, 이미 상부와는 얘기된 바.

그의 걸음은 거침없이 쾌속했다.

대체로 정리된 길목.

공동을 지나자 드디어 근방에서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 인후 왔구나."


그를 발견한 나희가 활짝 웃었다.

입사 동기.

그녀와의 인연은 길었다.

밝은 미소를 보자 긴장을 푼 인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중간보스급이 나올 땐가?"

"맞아. 그전에 재정비 중이었지. 그리고 네가 마침 와줘서 다행이야."

"그래? 그러고 보니 몇은 벌써 들어간 건가? 인원이 좀 비는데."


냉철하게 상황을 분석하는 그는 정말이지 훌륭한 지휘관이었다.

그러나 나긋나긋한 미소를 보이던 나희의 눈빛이 찰나 번뜩였다.

그리고 그 뜻을 헤아린 S급, 길드장의 직속들이 그를 에워쌌다.

순식간에 포위당한 인후는 당황하지 않았다.

이런 테스트는 흔히 있었던 일.

평소처럼 태연히 합을 나누는 인후였지만, 그는 곧 당혹스러운 눈으로 그림자들을 둘러봤다.


"확실히 이건 예상 못했군."


쿨럭.

달라진 패턴이 낯설었지만, 이해되는 바는 명확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경고.

그것을 알아들었지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독까지 쓰다니-"

"오, 그걸 견디네? 그거 가장 위험하다고 뽑힌 맹독인데, 역시 평범한 A급은 아니야."


나희의 감상이 살짝 거슬렸지만, 지금은 집중해야 할 때다.

마나를 이용해 독이 삽시간에 퍼지는 걸 막긴 했지만, 그게 전부였다.

다루기 힘든 맹독까지 쓰면서 대전을 한다는 것은 이미 평이한 것이 아니었다.


"대체 어째서-"


의미 없는 물음일 수도 있으나 알아야 했다.

왜 하필 이제 와서.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흐름.

내려앉은 머리 위로 들리는 조롱이, 말해주는 진실은 식어가는 몸을 끓게 했다.


"커억- 아직도 힘이 남았다니."


인후는 뒤집어지는 눈으로도 그들을 직시했다.

참 우스운 꼴이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숨을 다할 때까지, 그의 칼날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그들을 노렸다.

가사 상태에서도 확고한 의지는 소름 끼칠 정도로 적확하게 파고들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길드장도 큰 피해에 놀랐지만, 거기까지였다.

마지막 순간.

우인후와 눈이 마주친 것 같은 착각 속에서, 상황을 정리한 그는 생각을 털어냈다.

이로써 위협은 일찍이 끝을 냈다.

원이소는 흡족한 낯으로 시체를 짓이겼다.

그러나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았다.

스르르, 사라지는 육체가 불길함을 자극했다.

곧 직속들을 닦달한 그가 불쾌한 눈으로 빈자리를 노려봤다.

길드장이 불안에 휩싸인 시각.

천명의 대다수와는 달리 본사에 남은 지아는 여유롭게 찻잔을 내렸다.

드디어 오늘, 아 얼마나 기다렸던가.

해방감을 만끽한 그녀의 눈매가 휘어졌다.


"인후 씨, 고작 S급에 연연하기엔 당신의 그릇이 컸어요."


비록 그에 도달하려면 까다로운 조건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지금을 이끈 제 행동이 용서되는 건 아니겠지만요."


그건 인후를 위한 이타적인 마음보다는 이기적인 욕심이었다.

그보다 더 먼저 복수심을 불태운 자로서, 꼭 이 감정을 넘겨줘야 시작될 원이소의 지옥을 보기 위한 지극히 개인적인 바람이었다.

꼭 이곳의 그도 그곳과 마찬가지로, 불행하기를 누구보다도 소망하는 지아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

더 이상 볼 수 없는 미래를 앗아가도 좋으니, 오랜 염원을 들어준 이를 맞이하고자 몸을 일으키는 그녀였다.


-회귀. 두 번째 타임라인에서 복수에 성공한 주인공은 그거면 된 걸까? 자신을 고통스럽게 만든 건 첫 번째의 이들인데, 그럼 역시.


남몰래 설정을 다듬은 주리는 결정했다.

제목을 바꾸지 않기로.

그리고 다시 내용을 읽으며 전투 묘사의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달성까지는 아직 멀었지만, 차근히 수행하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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