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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야 Jun 0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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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_이야챌린지_036_오석태

임시 표지

늘 꿈꾸었다.
그리고 그 바람의 첫 단추를 꿰었을 때, 느낀 희열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석태의 걸음은 가볍고도 진중했다.
기쁨과 설렘을 안고, 신호등 앞에 멈춰 서자 높은 건물이 들어왔다.
건너편의 빛나는 빌딩.
두 번의 낙방 끝에 합격한, 꿈의 기업.
선망 어린 눈빛으로 훑은 석태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그토록 고대하던 이백토스트에 입사한 신입사원은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주말에도 고달팠던 아버지가 직접 만들어주었던 유일한 간식의 기억.
그것으로도 충분했다.
엉성한 모양마저도 반갑고, 푸석한 맛까지도 즐거웠던 시간.
일찍이 마주한 이별 속에서 그를 버티게 했던 토스트는 그리움과 다정함의 산물이었다.
비록 두 차례 떨어지는 쓰라림이 있었지만, 이제는 당당한 걸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너는 석태.
아직은 휑한 목 언저리에 걸 사원증도 눈에 선했다.
네 번째 방문인 그로서는 본사까지 가는 길이 익숙했으나, 마음가짐은 현저히 달랐고.
들뜬 채로 걸어가던 찰나.
끼이익-
코앞에서 정차한 차 때문에 놀란 석태였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다.
결과적으로 멈춘 차체였기에 사고 나지 않은 그는 사과를 받고 지나갔다.

"후. 빨리 건너자."

혹시라도 목표 달성을 하기도 전에, 큰일이 나면 안되니 서둘러서 도착한 석태는 가쁜 숨을 내둘렀다.
잠시 기둥에서 숨을 돌린 석태의 어두운 낯빛이 사그라졌다.
이제야 안심된 그는 주변을 경계하며 계속 나아갔다.
드디어 건물에 입성한 지금.
벅찬 감동이 밀려오자 저절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강형원.
같은 동네에서 자란 소꿉친구.
그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자신은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비록 그는 자신의 입사를 축하하며 끈질긴 노력 덕택이라고 하였지만, 석태의 생각은 달랐다.

"고맙다, 형원아."

바쁘게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 짧은 감상을 마친 석태도 안으로 들어갔다.
이백토스트.
전국은 물론 해외까지 진출한 토스트 전문점의 프랜차이즈.
그 명성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독점하다시피 쌓아 올린 토스트 프랜차이즈의 표본.
그러나 기업의 대가는 달랐다.
이백토스트의 대표, 이백운은 독점하여 시장을 단일화시키는 것을 지양하고 꾸준히 유지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시장 내 경쟁을 위해 '펄스라이즈'를 시도했다.
펄스라이즈.
이백토스트 본사 출신의 직원들을 지원해 새로운 토스트 가게를 운영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방식으로, 그들에게 기술과 전략 등을 나누어 개인 브랜드화에도 힘썼다.
기업 대표로서 손해 볼 수도 있는 사안을 과감히 실행한 결단.
하지만 이백운은 오히려 더 수월한 프랜차이즈 관리와 운영으로, 기업의 이미지 타격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형원의 고모님도 따로 운영 중이시지."

미삭토스트.
초등학생 때부터 이백토스트만큼이나 자주 갔던 형원이네 토스트 가게.
처음 3년은 이백의 상표 표시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온전한 개인 브랜드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시도할 수 있는 것도 다양했다.
가령 형원이 좋아하던 귤과 호박을 듬뿍 넣어 만든 귤호박 토스트도 이곳에서 개발되었으며, 역유통을 통해 이백토스트의 메뉴로 자리 잡았던 것도.
시즌 한정 음료가 더 어울리는 토스트를 추천해 시즌별 맛잘알 세트를 만든 것도.

"고모님이 짠 전략이 먹혀들어서 완전 SNS 맛집이 다 됐지."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석태의 눈이 빛났다.
그 역시도 본사에서 열심히 일한 다음, 자신만의 토스트 가게를 차리는 것이 최종 목표였다.
그래서 미삭토스트에서 따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입사할 계획이었지만.

'그땐 문턱이 그렇게 높을 줄 몰랐지.'

이미 사장인 윤희에게 편의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입사까지 도와달라고 하는 것은 염치없다고 느낀 석태.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면접을 준비했지만, 열정만으로는.
아니, 어쩌면 부족했을지도 모르는 열의로는 합격하지 못한 그.
결국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형원이 고모에게 전해주어 족집게 강의를 받은 덕분에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할 수 있었다.

'아마 그걸로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여전히 빙빙 돌고 있었겠어.'

자신에게는 특별한 경험일지라도, 다른 이들에게는 진부한 사연일 수도 있을 뿐더러 그게 조금이라도 설득력을 가지려면.
띵.
여러 사람들과 부대끼며 엘리베이터에 오른 석태가 안내 문자를 되짚었다.
13층.
버튼이 눌린 것을 보자 긴장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는 석태였다.
매번 정신없이 면접을 치르긴 했으나, 그때의 순간은 남달랐다.

'그리움과 다정함이 깃든 토스트를 재현한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버지의 토스트는 엉성하고 푸석했다.
그러나 맛있었고 강렬했다.
하지만 그대로 구현한다면 시장의 논리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상품조차 되지 않는 토스트가 될 것이고.
몇 가지 재료로 집에서 해먹을 수 있다면 굳이 밖에서 사서 먹을 이유도 없었다.
고민하는 석태의 침묵은 길어졌다.
잠시 시간을 달라고 했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답은 없었다.
애태움 속에서 간절함이 절박해질 무렵.

'이게 뭐야~ 다 탔잖아. 모양은 삐뚤빼뚤하고!'
'먹어보면 또 다를걸~?'

겉보기에는 불만족스러운 토스트에 투정을 부렸던 자신.
하지만 아버지는 굴하지 않고, 먹기 좋게 잘라서 넣어줬다.
실은 그 시간이 좋았는데.
부족한 태로도, 힘든 와중에 자신과 함께 주말을 보내려던 아버지의 노력과 마음이 기뻤던 지난날.

"아빠가 잘못 만든 토스트를 개발해 더 저렴하게 판매할 것입니다. 고수들도 실수할 때가 있고, 초심자들은 매 순간이 그렇습니다. 토스트 매장에서 일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토스트를 만들 때 매뉴얼대로 진행했지만 도저히 팔 수 없게 완성됐던 때가 있습니다."

과거 경험을 떠올리는 석태의 눈이 당시 느꼈던 난감함을 내비쳤다.

"스스로 실패했다는 생각에 집중하기 어려웠던 그때. 사장님이 그래도 맛은 좋다고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이백토스트에서 개발하고 유통한 소스는 이런 실수에 빛을 잃지 않는다고 자부하면서 다시 기회를 주셨던 사장님 덕분에 보기 좋게 완성할 수 있었습니다."

석태는 그로부터 자신감을 얻은 자신이 혹 실수를 되풀이하더라도 기죽지 않았던 일과 다른 알바생들을 교육할 때에도 힘을 줬던 일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그 이야기 끝에 남은 것은 확실했다.

'어? 생각보다 훨씬 맛있네!'
'후후, 아들. 그게 대기업의 맛이란다. 나중에 아들도 크면 이해할 거야.'

이백토스트의 비법 소스에는 놀라운 힘이 깃들었다.
요리 초보들도 과감히 시도할 수 있는, 작은 실수도 보조할 수 있는 이백의 자긍심.

"온전히 소스에 의지한 기본 토스트를 통해 근본의 맛을 보여주겠습니다."

그가 다정함과 그리움을 이백의 소스라고 말하자, 뿌듯한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평가를 끝낸 면접관들은 오랜만에 초심을 돌아볼 수 있었다.
띵.
13층에 도착하자, 현실로 복귀한 석태가 심호흡하고는 내렸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선임.

"안녕하세요. 신입사원 오석태입니다!"
"밝은 분이 들어왔네요~ 저는 황유선이에요. 자리부터 알려줄게요."
"예, 잘 부탁드립니다."

유선을 따라 사무실에 들어온 석태는 삐걱대며 인사를 건넸다.
다행히 그의 태도를 지적하지 않은 이들을 지나 배정받은 자리에 앉았다.

"일단 여기 파일부터 확인하고, 다 읽으면 그때 여기 메신저로 저한테 알려주면 되고. 로그인 정보는 거기 포스트잇에 적혀있으니까 그걸로 들어가면 돼요. 또 사원증은 오늘 중에 나올 건데, 로비에서 따로 연락 올 거예요."
"네."
"보다가 궁금한 사항 있으면 한 번에 물어볼 수 있게 미리 정리해두고요."
"알겠습니다."

유선이 돌아서자 엉거주춤으로 일어난 석태가 작게 목례를 건넸다.
이내 다시 자리에 앉은 그는 전달받은 사항을 되짚으며 하나씩 수행해 나갔다.
기본 업무 내용을 다룬 파일을 집중해서 읽으며, 간단하게 나와있는 사안 중 이해되지 않는 것을 기록하던 손이 잠시 멈췄다.
그의 최종 목표와 관련된 것들도 자세하게 정리되어 있는 파일이었다.

'역시 3년 계약 이후 자율제구나.'

그리고 대상자는 5년 이상 근속한 직원이라는 점이 그의 눈길을 끌었다.
그것을 보자 예전에 읽었던 기사가 떠올랐다.

'한 직장에서 5년 이상 근속하는 건 연봉보다는 좋은 동료 때문이라던데.'

꿈을 위해선 오래 일할 생각이지만, 그간의 경험을 비춰보았을 때 같이 일하는 사람은 생각 이상으로 중요했다.
아직까진 나쁘지 않은 사무실 분위기.
그러나 이제 막 출근한 그가 뭘 알겠는가.
자신의 업무에 집중하는 사람들에게 폐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는 계속해서 기본 자료를 확인했다.
석태가 한창 신입사원의 자세와 태도를 고수할 때.

"좀 낯설다? 무단 개입까지 하고."
"…올 땐 오더라도, 희망을 꺾고 데려올 순 없잖아."
"단계에 불과한대도?"
"이건 결국 존중의 문제니까."

잿빛 머리카락이 바람에 자유롭게 휘날렸다.

"그래? 나는 이 배치에 그런 감상은 사치라고 생각하는데."

하지만 그를 막지는 않았다.
그저 건조한 눈으로 쓸어낸 테라는 몸을 돌렸다.
그래도 운명은 기어코 이끌고 말 테니, 괜한 짓을 한 거겠지만.

'거기에 널 앉힌 이유겠지.'

자신이 아니라.
멀어지는 테라를 보던 잿빛 눈동자가 다시 적합자를 향했다.
이든은 바랐다.
잠깐일지라도 유예한 보람이 있기를, 사소한 위로가 되기를.
아이디를 입력하는 손가락이 짧게 움찔거렸다.
괜히 오싹한 영단어를 떨치고는 메신저를 접속하는 석태의 하루는 이제 막 굴러가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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