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롭게 시작한 글쓰기는 두 번째 글을 쓰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희망에 가득 찬, 꿈을 이루기 위해 반짝이는 눈으로 매일 열심히 사는 무언가에 미친듯한 사람이었으면 했다. 그 에너지는 31일이 지나니 다 끝나버렸다. 다 끝난 에너지라고 생각하니 무얼 해야 할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매일 아침 7시에 일어나 버스에 올라 비몽사몽 깜박 졸고 나면, 토메르에(터키어 어학원) 도착한다. 그렇게 4시간을 머릿속에 터키어를 욱여넣듯 배우고 나면, 오후엔 터키어, 영어 수업으로 된 대학원 수업이 기다리고 있다. 2시간 3시간을 안 그래도 어려운 고고학을 외국어로 수업 듣고 나면 온몸이 물에 젖은 솜 같다. 그러고 집에 돌아가면 기절하듯 30분 자고, 저녁 먹고 다시 토메르, 대학원 수업 숙제를 한다. 대학원 수업은 나를 긴장시켰고, 매번 수업 전이면 배가 아파 아무것도 못 먹기도 했다. 한 달을 이렇게 지내왔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 살 거 같았다. 나는 못할 거 같았다. 이렇게 공부한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내가 좋아서 내가 고집부려서 온 유학이니까..
터키에 온 지 딱 한 달이 지나니 왠지 모를 허무함과 두려움으로 며칠을 우울함 속에 살았다.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비자 문제, 거주 문제, 학교 등록, 길 외우기 등 외국인으로 이 곳에 살아가려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것들을 폭풍처럼 해결하고 나니 마음에 구멍이 뻥 뚫린 기분이었다. 외국인으로 다른 나라에 산다는 건 하나도 쉬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매일이 똑같았다. 토메르-학교-집, 마음에 여유는 조금도 없었다. 무엇도 놓치면 안 된다는 강박에 잠도 잘 이루지 못했다. 먼 미래의 일까지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를 기록하고 터키 고고학을 알려주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도 과제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엉엉 울었다. Fikri 교수님 눈을 마주치자마자 참았던 마음들이 우르르 쏟아졌다. ( 모두가 무서워하는 호랑이 교수님이시지만, 나한테는 펭귄 같은 교수님인 피키리 교수님. 이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적어보고 싶다) 어렵다고, 나만 게으른 거 같다고, 매일 쉬지도 않고 맥주도 안 마시고 학교랑 집만 가는데도 못하겠다고 그러니 교수님께서 그러셨다. 안 괜찮은 게 당연한 거라고 괜찮다고, 너는 집에서 몇천 킬로나 떨어져 있고 음식도 계절도 언어도 다 다른 곳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하는데 어떻게 괜찮을 수가 있냐고, 이제 한 달이라고 천천히 "Step by step"해도 괜찮다고 말씀하셨다.
창피한 줄도 모르고 울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모든 걸 다 이해하지 못해도 모든 걸 다 알지 못해도 된다고 생각하니 더 쉬워졌다. 남들보다 느려도 남들보다 빨리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하나씩 멈추지 않고 꾸준히만 하자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스트레스받는 것들 말고 나를 위로해주는 것들을 찾아보기도 했다. 사소하지만 무지하게 따뜻한 것들이 많았다 내 주변에
예를 들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면 머리맡에 초코바를 종류별로 사다 주는 친구, 아침도 못 먹고 튀어나가는 걸 알고 오즈게가 준비해주는 과일 도시락, 집 앞 가로등 아래 핀 벚꽃,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본 예쁜 노을, 처음 보는 데도 너무 반가워하는 강아지들, 밥 혼자 먹는 꼴을 못 보는 레이스, 밤마다 깨워서 밉지만 예쁜 샨스르, 블로그에서 만나 앙카라에서까지 도와주고 조언해주는 한국 언니, 언제든 내 숙제를 도와주는 터키 친구들, 좋아하는 치킨 사 먹으라고 불쑥 용돈 보내주는 내편. 정말 정말 위로받는 것들이 더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