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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연 Nov 20. 2020

짧게 보는 지난 1년

터키에서 한국, 한국에서 터키까지

  

  작년 5월을 마지막으로 짠내나는 글 한편 올리고 사실 한번도 브런치에 들어오지 않았다. 10개월 안에 터키어 자격증을 따야한다는 압박감과 생전 처음 접하는 문화, 앞으로 나가가지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은 감정들이 섞여서 언제부턴지 터키에서의 생활을 즐기지 못했다.  


  결과적으로는 기적처럼 터키어 자격증도 따고 (이것도 약간의 문제가 당연히 있었지만) 2월에는 겨울방학을 맞아 한국에 갔다. 터키를 떠날 즈음에는 코로나가 새로운 감기인가? 정도의 가벼운 뉴스였는데 심지어 그때는 공항에서 마스크한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시선이 부끄러웠는데..한국에 간지 일주일만에 모든 비행편이 닫혀버렸다. 반강제로 반년을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보내게 되었고, 연구소에서 몇 달간 일하며 교수님들과 선후배들과 지내며 지쳤던 마음이 위로가 됐다. 한국에서 고고학계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석사생들은 어떻게 수업하고 어떤 공부를 하는지 어깨 너머로 많이 느끼고 배울 수 있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 나름대로 시간을 보내고 나니 터키로 갈 수 있는 비행기가 생겼고 2020년 11월 1일 다시 터키에 왔다.

    

  사실 이번에 터키에 오는 것도 정말 만만치 않았던게 (늘 에피소드가 넘친다) 사실은 10월 31일에 도착해야하는데, 새벽 4시 반쯤 국제전화로 잠결에 전화를 받았다. 카타르에서 걸려온 카타르 항공의 전화였는데 맨 정신에 만발의 준비로 받아도 떨리는 영어 통화를 비몽사몽 받고 나니 긴장감에 배가 다 아팠다. 비행기가 취소 됐으니 다음 날 비행기로 옮겨졌다는 말이었는데, 취소 메일만 와있고 새로운 항공권은 전달받지 못해서 다음 날 9시에 한국 카타르 지사에 전화해서 다시 확인받기 전까지 잠을 한숨도 못잤다. 다행히 친절하신 한국 지사 직원분이 꼼꼼히 확인해주시고 항공권도 다시 보내주셔서 낮 12시나 돼서 정리가 됐다.     


  비행기에서는 마스크, 페이스캡을 식사시간 빼고는 무조건 착용했어야 했다. 엄청나게 불편할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비행기에서 잘 먹고 잘 자고 무사히 왔다. 앙카라 공항에 내리자마자 반년 동안 감춰두었던 터키어를 마구 뿜으며 기차역 공항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던 오즈게를 무사히 만났다. 근데 당장 엊그제 헤어진거처럼 편안했다. 오즈게가 참 귀여운 친구인게 몇일 전부터 걱정했단다. 오랜만에 보는데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나 어떻게 말해야하나 근데 만나자마자 그냥 어제 본거 같다고 배꼽잡고 웃었다.      

  

  이번 가을 학기도 온라인 수업으로 진행되서 꼭 터키에 와야하는 의무는 없었다. 많이들 터키 코로나 상황을 걱정해주시기도 하고, 한국에서 있는걸 조언해주시기도 했지만 당장 이번 학기가 끝나면 논문을 써야하고 가장 크게 고민했던 건 울면서 공부했던 터키어를 안쓰니 자꾸 까먹는다는거였다.      


  어찌됐든 다시 터키에 왔고, 작년 2월에 왔던 터키보다 더 마음도 몸도 커진 기분이다. (엄마가 해준 밥을 몇 달 먹다보니 너무 쪄버렸다) 지금은 카이세리에 있는 Kültepe-Kaniş (큘테페-카니쉬) 고고학 유적 캠프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지내고 있다. 이 곳에 있는거라고는 큘테페 멤버, 강아지 7마리, 고양이 6마리, 염소 2마리, 거위 2마리 뿐인 깡시골이니 코로나는 걱정마시길 :)


  글의 배경 사진은 큘테페에서 보이는 카이세리의 Erciyes 라는 산이다. 겨울에 스키장으로 유명한데, 너무 추워서 멀리서 보는게 제일 예쁘다. 짧게 보는 1년이라고 제목을 달았는데 전혀 짧지가 않아서 민망하지만..앞으로는 큘테페에서 지내는 글을 간간히 적어볼까 한다.

아침이면 우유달라고 줄서서 기다리는 애기들은 가르치지 않아도 알아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지키고 우리는 나가지 않고 와인도 피자도 캠프에서 만들어 마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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