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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윈 Apr 10. 2024

넌 그렇게 프로로 살아라, 난 이렇게 아마추어로 살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마지막 기회다. 0:3.

 

 9회 말 투아웃 2 스트라이크 3 볼 상황. 풀카운트 접전. 주자 만루. 투수는 긴장한 상태로 공을 꽉 말아 쥐고 타자는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고 배트를 꽉 붙잡는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포수의 사인과 함께 투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이 날아온다. 타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하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투수의 손을 떠난 공은 타자의 배트에 맞아 푸른 하늘을 활강한다. 푸른 하늘에 새하얀 공은 저 멀리 날아가 펜스를 넘어 솨아 하고 떨어진다. 정적이 흐른다. 정적이 흐르고, 전광판에 0:3은 4:3으로 바뀐다. 우우우우. 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와 아아아 하는 소리가 들린다. 


 타자는 아무것도 듣지 못한다. 무의식적으로 배트를 던지고 1루, 2루, 3루를 차례로 돌아 홈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곧이어 동료들이 뛰어나와 타자를 끌어안는다. 그제야 타자는 듣기 시작한다. 경기장의 환호를! 그리고 타자는 느끼기 시작한다. 그 모든 것이 바로 자기가 쳐낸 공 하나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네 인생은 야구와 같다. 나 혼자 아무리 잘나고 잘해도 다른 사람들 없이는 게임을 할 수조차 없고 이길 수도 없다. 공 하나하나에 환호의 축배가 들릴 때도 있고 절망의 독배가 들릴 때도 있다. 야구는? 인생이다. 인생.  




 야구가 인생이라면 우리나라 야구역사에는 정말이지 기적 같은 삽질을 보는 것 같은, 그런 기적 같은 '팀(team)생'을 살다 간 팀이 하나 있다. 그들은 기적적인 연패, 기적적인 승률과 기적적인 방어율과 기적적인 타율로 대한민국 야구역사에 큰 배설물을 남겨두셨도다. 오오오. 


 책의 저자 박민규 씨는 말한다. 이건 억지로 하려고 해도 만들어내기 힘든 기록이라고. 그렇다. 어쩌면 그들은 일부러 치욕적인 기록이라는 배설물을 남겼는지도 모른다. 그들의 본 실력을 숨겨둔 채로. 마치 가면을 쓰기 전의 브루스 웨인이나 피터 파커처럼 그들은 일부러 지고 지고 지고 또 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은 우리네 인생을 수호하는 다크나이트, 배트맨이자 우리들의 친절한 이웃인 스파이더맨이었던 것이다. 아니 야구 실력을 숨긴 게 무슨 얼어 죽을 놈의 다크나이트고 배트맨이고 스파이더맨이냐고? 그냥 그들을 따라 하는 어설픈 시민이 더 맞겠지! 


 하지만 박민규 씨는 당당하게 말했다. 그들은 영웅이 맞아! 왜냐고? 사람들의 인생이 프로화 되는 것을 거부한 영웅이기 때문이지! 


 바야흐로 때는 90년대 초반. 대한민국에는 프로야구 개막과 함께 '프로' 열풍이 불었다. 당시 아마추어라는 단어는 인간이 인간에게 할 수 있는 가장 모욕적인 언사라고 박민규 씨는 평했다. 세상은 프로를 위해 돌아갔고 프로를 낳기 위해 존재했다. 아마추어는 사회악으로 도장 찍혀 불가축천 민 취급을 당했었다. 오호통재라, 정말로 끔찍한 시대가 아닐 수 없구나! 

 

 우리의 책 속 주인공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프로야구 개막과 프로 열풍, 그리고 군사정권이 민주정권으로 바뀌는 격동의 세상 속에서 보냈다. 그 역시 그런 세상과 거리를 두지는 못했다. 그는 어렸고 세상의 프로화를 거부하기엔 너무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주인공은 중학생이 되고 나서 단짝 친구와 함께 한 프로팀의 팬클럽이 된다! 바로 그 팀이 이 책의 제목과도 같은 ‘삼미 슈퍼스타즈’였던 것이다. 인천사람이라는 지연의 이유로 그는 선택권 없이 삼미의 팬이 된다. 


 패배와 패배의 연속. 그러한 반복되는 패배를 겪으면서 주인공과 친구는 난생처음 패배라는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다. 그들은 다른 팀을 응원하는 아이들처럼 자랑스럽게 투구포즈를 연습하거나 야구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사이다를 먹을지 콜라를 먹을지 고민하는, 그들은 자신감이 사라진 패배주의자가 되어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주인공은 사회가 요구하는 '프로'의 중요성을 알게 된다. 승리하지 못하면, 승리하는 팀에 합류하지 못하면 패배자가 된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고, 비웃고 무시한다. 그것이 당연시되는 것이 바로 우리네 사회라는 것이지!

 

 시간은 흐르고 결국 최하위를 빌빌기던 삼미는 해체를 하게 되고 주인공의 삶과도 멀어지게 된다. 주인공과 친구는 삼미의 마지막 경기를 본다. 역시 개판 오 분 전 경기를 끝내고, 그들은 자신들의 마지막을 위해 경기장에 찾아온 사람들에게 인사를 한다.


 아무도 욕하지 않고, 그저 수고했다며 박수를 쳐준다. 그게 다다. '프로'가 아닌, 리그에 적응하지 못한 그들에게 내려진 온갖 모멸을 그동안 견디느라 수고했다. 그런 의미의 박수였다. 그때 주인공은 깨닫는다. 


 '야, 이렇게 살다 간 나도 삼미처럼 될 것 같은데?'


 주인공은 프로가 되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한다. 좋은 대학을 들어갔고, 좋은 직장에 입사한다.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그는 스스로 생각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기에 이젠 나에게 행복이 찾아오는구나. 나는 프로다. 이 사회는 나를 내칠 수 없을 거야.'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21세기 밀레니엄 시대! 하지만 변한 것은 없었다. 누구의 예언처럼 세계는 멸망하지도 않았고 그저 예전과 똑같이 높으신 분들은 주먹다짐을 하셨고 고등학생들은 입시시험에 시달리며 학원가의 불을 훤하게 밝히며 여전히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프로로 살았던 사람들, 프로로써 남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프로로서 살았기에 21세기 밀레니엄 시대를 여유롭게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프로’라는 단어는 그저 곰에게 물려준 사탕처럼 세상이 사람들에게 던져준 마취제와 같았다. 


 세상은 사람들을 이용하기 위해 프로의식을 이용했을 뿐이고 자칭 프로들의 쓸개에 호스를 끼워 그들의 '인담'을 쭉쭉 뽑아냈다. 이제 단물이 안 나오네? 이용가치가 떨어졌네? 세상은 구조조정과 명예퇴직이라는 빗자루를 이용해서 그들을 가차 없이 쓸어냈다. 


 우리의 주인공 역시 그 빗자루를 피해가지는 못했다. 결국 능력과 노력보다는 학연 지연 혈연의 커넥션이 더욱더 중시되는 사회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 이혼하게 되고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진다. 


 그는 사회라는 시계의 톱니바퀴에 불가했다. 낡고 녹슨 톱니바퀴를 새것으로 교체하듯, 그 역시 그렇게 교체되었다. 주인공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주인공의 옛 친구가 나타난다. 


 그들은 라면을 끓여 먹다가 문득 그가 주인공에게 말한다. 뭐냐고? 바로 삼미 슈퍼스타즈! “우리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팀! 진짜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야구를 못했던 그 팀! 기억해?” 


 주인공은 이 놈이 미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와 함께 지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야구를 하면서 알게 된다. 그들이 전해준 메시지를 아니 이제야 알게 되다니! 그렇게 우리의 주인공은 프로야구리그에서 경기를 했지만 전혀 프로답지 않은 경기를 했던 그들을, 삼미 슈퍼스타즈를 다시 보게 된다.


 삼미는 야구를 못하지만 야구를 사랑하고 야구를 즐긴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구나. 이게 인생이구나! 프로라고 생각했지만 프로가 아니었던 주인공과 주인공의 친구는 프로사회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긁어모아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을 결성한다. 


 그들은 나름대로 열심히 훈련을 하지만 남들 눈에는 노는 것처럼 보인다. 전지훈련은 삼천포로 간다. 뛰다가 힘들면 걷고 걷다가 힘들면 앉고 앉다가 힘들면 눕는다. 눕다가 잠이 오면? 자면 되지 뭐! 그래도 그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프로가 아니라 '아마추어'니까. 시계라는 세상에 있다가 낡아빠지면 교체당하는 톱니바퀴보다 아마추어로서 세상 밖에서 세상이 굴러가는 것을 즐기며 볼 수 있는 관목자로서의 삶을 선택한 것이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팀'과 '동네 아저씨들이 모인 야구팀'의 경기가 있는 날이다.


 0:3. 9회 말 투아웃. 2 스트라이크 3 볼 상황. 풀카운트 접전. 주자 만루. 투수는 긴장한 상태로 공을 꽉 말아 쥐고 타자는 다시 한번 자세를 가다듬고 배트를 꽉 붙잡는다. 둘 사이에 미묘한 긴장감이 흐른다. 이윽고, 포수의 사인과 함께 투수는 고개를 끄덕인다. 공이 날아온다. 타자는 확신에 찬 표정으로 배트를 휘두른다. 

 

 따악! 하는 소리와 함께 공은 투수와 유격수를 지나 펜스에 직격 한다. 모두가 달려야 한다! 하지만 주자들은 아무도 달리지 않는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온다. 그때 경기장의 모습은 어떨까. 


  공을 친 타자라는 놈은 실수했다는 듯이 배트를 땅바닥에 떨군 채 머리를 쥐어뜯고 있고

 1루에 서있던 주자는 하늘에 구름이 너무 예뻐 하늘만 쳐다보고 있으시고

 2루에 서있던 주자는 전광판에 비친 미모의 관객 분 구경하신다고 여념이 없으시네?

 3루에 서있는 주자는 그 척박한 야구장 흙바닥에서 자란 새싹을 보며 생명의 아름다움과 위대함에 감탄하고 있으시다. 

 

 그들은 누구보다 행복해 보인다. 물론 대책도 없어 보이고 열정도 없어 보이고 그냥 그 자체가 없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시위를, 그리고 대중들에게 의미를 주기 위해! 나름대로의 대책을 세우고, 자신들의 경기에 나름대로의 메세지를 부여한다. 


 세상은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멍청이들아. 그만 열심히 하고 주위를 둘러봐. 지금 하늘에 구름이 얼마나 예쁜지, 지금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사람이 얼마나 예쁘고 멋진지, 네 발 밑의 작은 생명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느껴보라고! 

 

 관중석에서 쓰레기가 투하된다. 이미 상대편 선수들은 방을 뺀 상태다. 하지만 우리의 삼미 슈퍼스타즈 팬클럽 회원들은, 마지막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클럽의 회원들은 그런 관중들의 사랑도 감사하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손을 꽉 마주 잡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한다. 비록 폭죽대신 쓰레기가 터지고 환호대신 야유가 들리긴 하지만 뭐, 그 정도쯤이야. 뭐 어쨌거나 그들은 다시 말한다. 


 우린 게임을 즐겼어. 그걸로 만족한다니까. 야구도 좋지만 말이야,


 구름이 오늘따라 너무 이쁜 데 어떻게 하냐? 다시 플레이 볼이다! 던져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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