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철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온 기우는 가방과 점퍼를 방에 던져두고 샤워를 했다. 샤워가 끝나고 화장실 문을 열자 고소한 고등어구이 냄새가 났다. 기우는 수건으로 머리를 말리며 부엌으로 향했다. 어머니는 아침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우는 수건을 의자에 걸고 자리에 앉았다.
"무슨 회사가 아무리 그래도 일을 하루 종일 시켜."
어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고 기우는 물을 마시며 말했다.
"몰라요. 교대 근무자가 갑자기 일을 그만둬서, 그냥 제가 일 더 했어요. 돈도 벌고 좋죠."
"아무리 돈이 좋아도, 다음에 또 이렇게 하라고 하면 하지 마. 그러다 몸 상하겠다."
어머니가 기우의 앞에 밥이 담긴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기우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숟가락을 들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고등어 구이가 식탁에 올랐지만 아직 피로가 다 풀리지 않아 입맛이 딱히 없었다. 그는 절반정도 밥을 먹고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더 먹으라고 이야기했지만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방으로 향했다.
기우는 피곤하긴 했지만, 어제 하루 종일 일을 한터라 그대로 잠자기엔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침대에 누으려다가 몸을 돌려 의자에 앉고 컴퓨터 전원을 켰다. 스타크래프트 몇 판 정도만 하고 잠을 자기로 했다. 게임의 패색이 짙어졌을 때 그의 어머니가 화가 난 듯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또 게임이야?"
"한 판만 하고 잘게요."
"피곤하다면서 밥도 안 먹고, 방에 와서 한다는 게 게임이야? 잠을 자."
"아, 제발 잔소리 좀 그만하세요. 돈 벌잖아요. 학비 내가 낼 거라고요. 내가 술을 먹고 들어온 것도 아니고 놀다 들어온 것도 아닌데. 어제 하루 종일 일하고 집에 와서 게임 좀 하다가 자겠다는 데 그것도 안 돼요?"
기우가 화가 난 듯 키보드를 내려치며 소리쳤다. 최근 어머니의 잔소리가 많아지긴 했었다. 게임 좀 그만해라, 공부를 좀 해라, 피곤한데 빨리 자라, 방 좀 치우고 깨끗하게 지내라... 기우는 그런 어머니의 잔소리가 악의가 전혀 없음을, 자신을 걱정해서 하는 잔소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자신감과, 공장에서 인정받고 있는 우월감, 그리고 부모님을 배려하고 있는 자신의 효도를 깎아내리는 어머니의 잔소리가 듣기가 싫었다. 여태 참고 참았지만, 그날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해봐."
"됐어요. 잘 거예요. 나가세요."
기우는 어머니의 눈을 보지도 않은 채 말하고는 컴퓨터 코드를 확 뽑아버리고 침대에 누웠다. 어머니가 자신을 노려보는 시선이 느껴졌고, '그렇게 까지 말할 필요는 없었는데.'라는 생각도 들어 지금이라도 일어나 사과를 할까 하는 마음도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짐을 덜어주려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어머니에 대한 섭섭함이 더욱더 컸기에, 그는 눈을 꾹 감고 어머니가 나가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방을 나가는 어머니의 발소리가 들렸고, 기우는 일어나서 방문을 닫고 문을 잠갔다. 마음이 불편했지만, 왠지 모르게 후련한 기분도 들었다. 한숨 자고 밤에 친구와 술이나 한 잔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다 잠에 빠졌다.
-
어린 기우는 밤새 잠을 뒤척였고 창문으로 아침 해가 밝아오를 때 즈음, 그는 잠에서 깨어있었다. 곧 어머니가 불을 켜는 소리가 들렸고, 눈꺼풀 너머로 형광등 빛이 느껴졌다. 어머니가 흔들어 깨웠지만 기우는 자는 척 눈을 계속 감았다. 친구를 보는 것이 부끄러웠고, 그래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사정없이 몸을 흔드는 어머니의 재촉에 기우는 마지못해 침대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이젠 며칠째인지 세기도 싫은 된장찌개와 반찬들이 식탁에 올라와 있었고 아버지는 벌써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다. 기우는 동생과 함께 자리에 앉아 숟가락을 뜨는 둥 마는 둥 깨작거렸다.
"엄마, 나 오늘 열나는 것 같아. 학교 안 가면 안 돼?"
"열?"
어머니는 밥을 먹다 말고 기우의 이마에 손을 대고 자신의 이마에는 반대쪽 손을 댔다. 그러고는 다시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열은 없는데. 꾀병 부리지 말고 어서 밥 먹어. 아빠 나갈 때 같이 나가야지."
"엄마, 나 오늘은 진짜 학교 가기가 싫어."
"얘가 큰일 날 소리를.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어서 밥 먹어."
기우는 금세 시무룩해졌다. 세상엔 자기편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졌다. 학교에 가서 친구에게 뭐라고 둘러대야 될지, 아니 친구가 자신을 어떻게 볼지가 걱정이 돼서 입맛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밥공기를 비우라는 부모님의 강요에 기우는 억지로 밥을 입 안으로 밀어 넣고 학교에 갈 준비를 했다.
머리를 감고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한 다음 자신의 방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낡고, 무슨 브랜드인지 알 수도 없는 옷이었다. 아마 기우의 사촌 형이나 동네 형들이 입었던 옷이었을 것이다. 이제 형들에겐 맞지 않는 옷을 어머니는 어디선가 구해오셨고, 그것을 기우와 동생에게 입혔다. 기우는 그 옷 마저 싫었다. 가방도 마찬가지였다. 가방도 옷도, 신발도. 그에겐 새것이 없었다. 기우는 억지로 옷을 입고 가방을 메고 우울한 마음으로 신발을 신고 동생과 학교로 향했다.
다행히 기우의 친구는 기우에게 과학상자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다만 뭔가 실망한 눈치가 가득했다. 그에게 말을 먼저 걸지 않았고, 시무룩했다. 기우도 그런 친구에게 자격지심이 생겨 차마 말을 걸지 못하고 수업 내내 집중하지 못했다. 기우는 수업이 끝나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못했다. 어제처럼 집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이번엔 주머니에 돈이 아예 없어서, 맨손으로 놀이터로 갔다.
놀이터로 가는 길에도, 놀이터에 도착해 그네에 앉아있으면서도 기우는 계속 우울했다. 가난이 사람을 어떻게 우울하게 만드는지에 대해 기우는 너무 빨리 알게 되었다. 어제와 같이 기우는 그네에 앉아 발로 그네 밑의 흙을 긁었다. 어제와 다른 것은 노을이 지고 해가 빌딩 너머로 넘어가 어둑해졌는데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기우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앞치마를 두른 채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어머니가 생각이 나긴 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집으로 갈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초등학생의 오기는 생각보다 강했고, 에라 모르겠다 하는 심정으로 그네에 앉아있었다. 보랏빛 하늘이 검게 물들고,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텅 빈 놀이터엔 낮과 다른 사람들이 점점 찾아왔다. 기우의 몸은 으슬으슬 떨렸고, 그는 손바닥으로 팔 언저리를 쓰다듬었다. 그때였다.
"너 여기서 뭐 하니?"
낯익은 목소리가 기우의 오른편에서 들렸다. 기우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엔 그의 어머니가 서 있었다. 기우는 다시 고개를 돌리고 몸을 기울여 그네를 움직였다. 기우가 의미 없는 그네를 타는 동안 그의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그네를 타면서 기우는 어머니에게 사과할 타이밍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두 편으로 갈라져서 심각한 싸움을 하는 중이었다. "지금이라도 빨리 엄마한테 사과해. 더 혼나기 전에.", "어차피 일이 이렇게 된 거, 엄마가 소리치면서 혼낼 때까지 기다려." 기우는 혼란스러웠다. 어느 쪽의 편을 들어야 할지.
"그네 계속 타고 싶으면 이거라도 입어. 감기 걸릴라."
어머니는 한 손에 기우의 외투를 든 채, 기우의 앞에 서 있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삐걱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기우는 외투를 받아 입었다. 혼날 거라 생각한 기우는 어머니 앞에 서서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기우는 외투를 입은 채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렸다. 왜 눈물이 나는 건지, 기우는 알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런 기우를 꼭 안고는 말했다.
"엄마가 미안해."
-
잠에서 깬 기우는 핸드폰을 먼저 확인했다. 오후 4시. 슬슬 술을 같이 먹을 친구를 찾기 좋은 시간이었다. 누구를 부를까 하며 생각을 하던 기우는 문자가 한통 와있는 것을 확인했다.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그가 번호를 저장하지 않았는지 핸드폰 번호가 그대로 떠 있었다. 스팸문자겠거니 하고 메시지를 눌렀다.
[기우야, 이훈이야. 오늘 밤에 소주나 한 잔 하자. 조장 형이 너 술 사주라고 방금 계좌이체 해주셨어. 시간 괜찮지?]
기우는 망설임 없이 답장을 보냈다.
[좋아요. 형. 시간하고 장소 말해주세요. 준비하고 나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