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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말킴 Nov 23. 2019

안 보면 후회하는 순례길의 마법 같은 풍경들

스페인행 비행기 티켓을 지르게 만들 산티아고 순례길 사진 에세이

    글 쓰는 오늘, 2019. 11. 22.(금) 베를린.

    오늘 베를린의 하늘은 종일 흐리다가 딱 운동 갈 시간이 되니 맑아졌습니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며 달렸어요. 서머타임이 끝난 11월의 베를린은, 갑자기 줄어든 낮 한 시간 때문에 온종일 어두운 느낌입니다. 4시 반이면 벌써 해가 저물 준비를 하죠. 정오에도 태양은 지평선 근처를 좀처럼 벗어나지 않습니다. 불과 한 달 전에 있던 스페인에서는 해가 머리 꼭대기에 있었는데 말이죠. 선글라스 위 작은 공간으로도 햇빛이 들어왔어요. 순례길의 높은 태양이 그리워서였을까요. 오늘은 미뤄둔 순례길 사진을 정리했습니다.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눈만 들면 장관이라 사진이 잘 나왔는지 몰랐는데, 다시 보니 그 경치가 어마어마합니다.




    순례길의 풍경은 그 어느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이번 글에는 순례길의 풍경을 소개합니다. 예쁜 사진이 정말이지 너무 많아서 베스트라고 뽑은 사진만 73장입니다. 73장의 사진을 다 보여드리고 싶지만, 몇 시간의 선별작업 끝에 베오베(베스트 오브 베스트) 사진들을 뽑아보았습니다.


    순례길의 길 위에서 직접 그 아름다운 광경을 본다면 입을 다물지 못할 거예요. 어떤 날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한 시간을 넋 놓고 하늘만 바라본 적도 있죠. 사진으로 다시 보는 지금도 넋을 놓고 보게 되지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사진이 광활한 산티아고를 극히 일부분밖에 담지 못한다는 겁니다.


    하늘이 너무 넓었던 한 날은 길 위라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산 하나 없는 넓은 평원 위의 하늘. 메세타 평원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우리나라의 경치와 다르게, 사방이 지평선입니다. 동쪽 끝부터 서쪽 끝까지 한눈에 하늘을 담으니, 새삼 하늘이 얼마나 넓은지 실감이 납니다. 하지만 사진으로 찍으면 내가 보는 하늘의 10%도 담기지 않습니다.


    혹여나 이 사진들로 산티아고 순례길의 경치를 반이라도 봤다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입니다. 절대 직접 보는 산티아고의 넓은 하늘에 비할바가 못되니까요.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장, 그리고 피레네 산맥

생장 드 피에르 포트(Saint Jean de Pier Port), 프랑스길의 출발지

    프랑스 남부의 작은 마을 생장은 프랑스길의 출발지입니다. 생장은 워낙 산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구불구불한 산 길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습니다. 생장으로 가는 버스는 멀미로도 악명 높습니다. 하지만 생장에 도착해서 아름다운 마을을 보는 순간, 한순간에 멀미가 가라앉을 거예요. 코너를 돌면 갑자기 나타나는 이 마을에 온 정신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마치 내가 동화 속으로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줄 정도로 아기자기한 마을입니다.


나지막한 안개가 낀 피레네 산맥

    9월의 일교차 때문인지, 첫날 넘어야 하는 피레네 산맥의 아침은 나지막한 안개가 껴 있었습니다. 첫날 루트는 순례길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힘든 코스이기 때문에 보통 어두컴컴한 새벽 일찍 출발합니다. 점점 떠오르는 해를 들지고 등산을 시작합니다. 아직은 첫날 아침이라 힘과 의욕이 넘칠 때죠.


피레네 산맥 능선에 있는 말, 자세히 보면 양 떼도 보입니다.

    순례자가 피레네 산맥을 넘기 위해서는 해발 1410미터의 레푀데르 언덕(Col de Lepoeder)을 넘어야 합니다. 분명 첫 코스로는 쉽지 않은 길이지만, 아름다운 광경에 힘을 얻습니다. 피레네 산맥이 손에 꼽을 정도로 힘든 코스인 만큼, 손에 꼽을 만한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줍니다.




    순례길은 최고의 하늘 맛집


마치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듯한 메세타 평원의 하늘

    이 사진의 길은 순례길에서 단일 코스로는 가장 긴 일직선 길입니다. 무려 17km를 마을 없이 꼬박 걸어야 하는 곳이죠. 또 이 길은 메세타 평원의 마지막 코스이기도 합니다. 메세타 평원은 거의 다 평지이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든 길은 아니지만, 정말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평원만 봐야 합니다. 그 끝자락에서 저런 하늘을 보았다면, 감동하지 않을 수 없겠죠? (유일하게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서까지 보았던 하늘이죠)


17km 길의 도착지, 깔사디야 데 라 쿠에자(Calzadilla de la Cueza)
길 옆 언덕 위로 가지런히 자란 나무들, 하늘과 섞여 색감의 대비를 이뤄줍니다

    이밖에도 순례길의 하늘 사진은, 끝도 없이 많습니다. 스페인의 쾌청한 날씨가 하늘을 늘 아름답게 꾸며주기 때문입니다. 다시 순례길을 걷는 다면, 그 이유는 저 파란 하늘 하나로도 충분합니다. 




    겹겹이 쌓여있는 순례길의 숲


'사시나무 떨 듯'의 그 사시나무

    프랑스길의 절반 정도가 지날 때쯤, 얇게 뻗은 나무가 오와 열을 맞춰 심어져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합니다. 바로 사시나무 숲입니다. 아마도 누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도 파르르 떨리는 것을 보니, 왜 사시나무 떨 듯 떨린다고 하는지는 알 것 같네요.


나무 뒤에서 엘프가 걸어 나온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
자욱한 안개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기도 합니다

    아침에 낀 안개는 제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아침에 안개가 끼면 그 날은 맑다'라고 하죠.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속설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침에 안개가 낀 날이면 어김없이 그 날 오후는 파란 하늘이 되었습니다. 이제 막 산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과 그 빛에 산란되어 희부옇게 빛나는 안개가 더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입니다.


몇 년이고 그 자리에서 순례자들을 맞아 주었을 페드로우소(Pedrouzo)의 나무숲

    울창한 나무 숲은 뜨거운 스페인의 햇살에 지친 순례자에게 더없이 좋은 휴식처입니다. 산티아고를 목전에 두고, 울창한 숲이 자주 보입니다. 이 지역을 지날 때는 10월 중순이었으니,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합니다. 그래도 걷기에는 더운 것보다 훨씬 수월합니다. 숲에서 뿜어져 나오는 좋은 공기는 덤입니다.



    

    하루 중 가장 기쁜 순간은 마을 도착 5분 전!   

언덕 위에 지어진 섬 같은 마을, 시라우키(Cirauqui)
별들의 마을, 카스트로헤리츠(Castrojeriz)

    하루 중 가장 기뻤던 순간을 물어본다면, 단언코 목적지 도착 5분 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멀고 힘든 길이라고 해도 목적지가 보이는 그 순간, 힘이 솟아납니다. 상상해보세요. 아침 일찍 나와서 7~8시간을 걷다가 더 이상은 못 걷겠다는 생각이 들 때 쯤, 위에 있는 저 사진처럼 아름다운 마을이 눈 앞에 나타났다고. 

드넓은 메세타 평원 중간, 움푹 파여진 골짜기 속 작은 마을 온타나스(Hontanas)
갈리시아 지방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남색 지붕들, 몰리나세카(Molinaseca)



푸른 초원의 주인들

피레네 산맥의 말들

    순례길에서는 많은 동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산과는 다르게 순례길의 산에는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는 곳이 많습니다. 이 곳의 주인은 동물들입니다.

보아디요 델 까미노(Boadilla del Camino)의 양떼와 목자
에레리아스(Herrerias)의 소떼




    하늘이 변신하는 순간, Before Sunrise & Before Sunset


    흔히 사진이 잘 나오는 황금 시간(Golden Hour)이라고 하면 해뜨기 전후 30분과 해 지기 전후 30분을 말합니다. 이 시간대에는 햇빛이 붉고 누런 빛을 뗘 사진을 더 따뜻하게 만들어 줍니다. 또 아름다운 색감을 가진 하늘을 배경으로 만들어 주기도 하죠.


    이 시간은 사진 찍기와 마찬가지로 걷기에도 아주 좋은 시간대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을 보고 있으면, 힘든지도 모르고 걷게 됩니다. 어스름한 새벽녘에 길을 걷다 보면, 서서히 동쪽 하늘에 붉은빛이 떠오릅니다. 그 빛은 까맣던 하늘을 조금씩 밝히고, 하늘은 때론 푸르스름한 색을 띠다가 보랏빛으로 물들기도 합니다.


어스름하던 새벽녘의 길을 밝혀 주는 레온(Leon)의 아침 햇살
붉은빛이 떠오르기 시작한 아침, 아스토르가(Astorga)의 동쪽 하늘

    떠오르는 태양이 얼어있던 몸을 녹여주니 분명 걷기에는 좋은 시간대이지만, 그렇다고 빨리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 몇 걸음에도 하늘은 색을 달리하니, 하늘을 좋아하는 저희 부부는 이내 멈춰 하늘의 달라진 모습을 관찰합니다. 순례길의 아침 하늘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지라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어 사진만 연신 찍어댑니다.

안개와 함께 보랏빛을 띤 아침 하늘, 까리온 데 로스 꼰데스(Carrion de los Condes)
석양 맛집, 아스토르가의 언덕

    석양은 아침과 반대로 서쪽 하늘로 사라지며 하루가 끝나감을 알려줍니다. 촛불이 꺼지기 직전 가장 밝듯, 태양은 마지막으로 땅을 온통 노랗게 물들이고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집니다. 석양이 질 때쯤이면, 그 날의 걸음도 마쳤을 것입니다. 보통 3~5시에 걷기를 끝낸 순례자들은 숙소에서 짐을 풀고 그 날의 빨래를 한 후 저녁을 준비합니다. 내일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친 순례자들은, 꼭 지켜야 하는 마지막 일과인 듯 석양을 바라보면서 휴식을 취합니다.




    이 모든 사진은 전부 스마트폰으로 찍었습니다. 굳이 좋은 성능의 카메라가 아니더라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사진의 퀄리티에 대한 아쉬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순례길의 밤을 스마트폰 카메라의 성능으로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순례길의 밤도 너무나 아름답기에, 그 별 빛을 담지 못하는 게 조금 아쉽습니다.


    온타나스(Hontanas)와 까스트로헤리츠(Castrojeriz)는 그중에서도 별이 아름답기로 소문난 마을입니다. 맑은 밤하늘에는 은하수가 짙게 수놓아져 있습니다. 화질은 좋지 않지만 애써 담아보려 했던 그 날의 밤하늘 사진으로 아쉬움을 달래며 이 글도 마무리해야겠습니다.

카스트로헤리츠 밤하늘의 오리온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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