小幸運
조금 더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보고 싶다.
내가 갔던 첫여름 여행에 대해.
학교 특성상 3년 내내 반 친구들이 비슷비슷했고
어울리는 친구들은 항상 같았다.
가장 힘들지만 즐거웠던 3년을 함께해서 그런지 더 애틋한 친구들.
이 친구들과 한 번쯤은 교실을 벗어나 여행을 가보는 게 소원이었다.
교복 입고 제일 멀리 놀러 가 본 게 혜화였기 때문에
그렇게나 고대하던
새내기 생활은 이도 저도 모르게 흘러가버리고
이제야 좀 캠퍼스가 눈에 익을 때 즈음
우린 더운 여름 3박 4일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우리가 열심히 배웠던 중국어를 한마디 던져보고자 하는 일념으로
'대만'을 선택했고, 종강 직후 떠나는 표를 예매했다.
원래 정해놓은 시간까지는 쏜살같이 지나간다고,
여행 하나만 바라보고 6개월을 살아냈다.
목표물이 주는 원동력이란 참 놀랍지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우울을 잘게 쪼아놓기에
드디어
나의 소녀시대와 출발!
첫 해외여행을 이들과 시작할 수 있어 더 서툴렀고 행복했다.
너무 긴 긴 이야기들은 다른 플랫폼에 글로, 또 영상으로 남겨뒀으니
여기엔 우리에게 찾아왔던 소행운들을 모아둬야겠다.
첫 번째 행운.
한 시간인가 두 시간의 지연을 겪고
공항에서 어쩌다 아이돌도 마주치고
룰루랄라 노래 부르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였으면 시간 지연에 투덜거렸겠지만
설렘으로 가득 찬 우리에겐 그저 모두 행복했다.
순식간에 대만에 도착하고
쨍쨍 더울 줄 알았던 대만에는 비가 흩뿌리고 있었다.
내리자마자 습-한 공기에 내 앞머리도 나도 울었다.
날씨가 이러니 기분 또한 가라앉기 시작했다.
겨우내 탄 택시 기사님은 우리의 중국어를 알아듣지 못하셨고
꽤나 퉁퉁거리셨다. (우린 괜히 돌아가는 거 아닌가 싶어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이때 난 여행의 시작부터 삐끗거리는 건가 싶어 불안했다.
그때 아저씨가 주섬주섬 종이에 글을 쓰시기 시작했다.
이 순간 나는 따스한 행운을 함께 받아 들었다.
숙소 위치조차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우리, 여행자들을 위해
주소를 손수 적어주신 것이다.
항상 타지에선 온갖 경계를 세워놓기 마련인데
첫 번째로 만난 기사님 덕분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두 번째 행운.
나름 빡빡하게 짠 스케줄을 소화하겠다며
종종걸음으로 걷던 우리는 '꺄르륵'소리를 조금이나마
숨겨야 했던 국립 고궁박물관에 닿게 된다.
거대한 규모에 놀라고 제대로 읽지 못하는 언어들 속에서
헤매면서도 우린 그저 즐거웠다.
시간의 흐름도 싹 잊을 정도로 돌아본 후
야시장으로 향하던 길.
우린 갑작스레 불행을 맞이했다.
친구의 지갑이 사라진 것이다.
아빠 카드부터 해서 모든 현금이 다 들어있는 작은 지갑이 사라져 사색이 되었다.
그래서 우린 여행 첫날 경찰서로 향하게 된다.
하지만 타국에서 여행자들이 며칠 안에
분실물을 찾을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될까.
사실 울적함에 빠졌다.
하지만 그때 마주한 두 번째 행운!
내가 여행 준비를 위해 가입해두었던 대만 여행카페가 생각났고
급하게 구구절절 글을 적었다.
크게 기대는 안 했는데, 은인이 나타났다.
현지에 거주 중인 한국인 여성 분께서
직접 박물관에 전화해서 물어봐주시고 또 지갑을 찾아다 주신 것이다.
그 넓은 박물관에 비하면 티끌 같은 크기의 지갑이었는데
그게 그 자리에 그대로 놓여 있었다는 사실과
직접 발 벗고 나 서주신 분이 있었다는 것.
우리의 여행의 은인이자 행운 같은 존재라 계속 기억에 남는다.
제대로 사례조차 못한 것이 내내 아쉬울 뿐이다.
세 번째 행운.
발길이 가는 대로 걷다가 마주한 세 번째 행운.
아침부터 부지런히 일어나 버스를 타러 가던 중
우리는 끌리는 곳으로 딱! 들어가 밥을 먹기로 했다.
그때 만난 양품 우육면.
우리는 아직도 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포슬포슬한 고기와 진하게 우러난 국물을 먹다 보면
오버 액션이 절로 흘러나온다.
사실 계획에 짜인 그대로 다니는 것이 속편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때부터 계획 없는 여행도 꽤나 괜찮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정말 사소하지만, 우육면 때문에
네 번째 행운.
절대 비꼬는 말이 아니고
아담, 밀폐, 습습한 숙소가 우리에겐 꽤 큰 행운이었다.
그래서 우린 말 그대로 '수면'을 위한 용도로만 숙소를 사용했다.
정말 하루 종일 대만 속을 휘젓고 다니며
숙소로 돌아가면 피곤해 뻗어버릴 정도로 열심이었다.
하루하루 그 습도와 온도 때문에
칭얼거리기도 했지만 아무도 낙오하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는 체력이 있음에 감사했다.
2년밖에 안 지났는데, 지금 저렇게 다니라면 못 다닐 것 같다.
우리 숙소 문을 열면 카펫 깔린 시원한 복도와
정문을 나오면 풍겨오는 취두부 내음
마치 집 앞 번화가를 연상시키는 시내까지.
가성비를 찾아 예약했던 숙소에 어느새 정들어버렸듯이
3박 4일간 대만에 마음을 던지고 와버렸다.
그렇게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어렵사리 옮겨
집에 돌아와서는 한국의 역대급 폭염을 맞이했고
대만의 온도를 그리워했던 기억이 난다.
올해는 혼자 가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글로 적어보며 아쉬움을 삼켜본다.
사실 가장 큰 행운은
함께 여정을 떠나 준 친구들
어느새 흘러 흘러 우리가 졸업반이 되어
또 너무나 바빠졌지만
고3을 함께 버텨냈던 것처럼 이 시기를 흘려보내고
다시 떠나고 싶다.
안녕! 나의 소녀시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