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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Mar 01. 2022

공무원이 뭐라고…(26)

편집의 달인이 필요합니다.

공무원들이 가장 바쁜 시기는 언제일까? 공공기관을 자주 방문하는 민원인이라도  때만큼은 양해가 가능한 시기이다. 바로 ‘행정사무감사’ ‘국정감사시기이다. 과장이상은 의회 대응을 해야 해서 바쁘고, 직원들은 자료 만들어서 제출해야 해서 바쁘다. 행정은 의회 일정에 따라 움직일  밖에 없는데, 연간 회기일정은 의회 홈페이지에 공지되고, 연초에  부서에 달력으로 제공된다.


서울특별시의회 2021년 회기일정/ 서울특별시의회 홈페이지 참조


서울특별시의회 2021 일정을 보면, 2월에 업무보고가 있고, 11월에 행정사무감사가 있다. 행정사무감사가 끝난 후에 바로 국정감사가 이어지기 때문에  시기는 비상대기이다. 한번은 국정감사 때였는데, 우리 부서 업무에 대한 질문이 없어서  12 즈음해서 집에 왔다.  앞에  도착했을  직원 전화가 왔다. 국회의원 질의서가 왔는데 답변서를 쓰려고 한다는 보고였다. 나는 흐릿한 시선으로 집을 잠깐 쳐다보고 다시 시청으로 돌아갔다. 보통 국정감사 전 날까지 질문서가 온다(국회담당자가 확보한다.). 가끔 질문서가 없을 때도 있다. 질문서를 확보하면 답변 준비할 시간을 번 것이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까…


국정감사 준비는 언제나 긴급하다.


2012년에 시청에 들어갔는데  5년간은 직원들이 순번을 정해서 비상대기하고 집에 못들어갔다. 최근에는 조직문화가 그나마 변화해서,   있으면 집에 가라는 지시가 내려오기도 했다. 자료제출 건이 많은 부서를 제외하고는 늦게라도 집에 갔다가 다음날 출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근처 호텔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적도 있는데, 집에 가기에는 시간도 애매하고 집도 멀었기 때문이다. 옛날에는 근처 사우나가 호황을 누렸다고 한다. 직원들이 밤새워서 답변서를 쓰고 아침에 국감이 시작되면 사우나로 잠깐 씻으러 갔다. 자료가 작성되면,  자료를 읽고 답변 준비를 해야 하는 시장이 있고, 시장 옆에서 서포트 해야 하는 국장이 있기에 답변서 작성은 언제나 긴급을 요한다. 또한 국감장이 열리면 국회의원이 어떤 질문을   모르기 때문에 (질문을 하면 답변서를  작성해야 하고…) 모니터링을 전담하는 직원들이 있고, 모니터링을 전담하지 않아도 국감장을 보여주는 TV모니터에  신경이 집중되어 있다. 참고로 서울특별시는 행정안전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 2개의 상임위원회의 국정감사가 있다. 서울시가 추진하는 사업의 내용에 대한 질문 보다는 그 때 그 때의 특정 이슈가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연초 업무보고 자료는 최소한 3년치이다.


업무보고 때는 최소한 3-5년 정도의 자료를 제출하여야 하고, 문제가 있는 사안이 있는 경우에는 10년간 자료를 제출하라고 한 경우도 보았다. 업무보고 때 제출하는 자료는 주로 연초에 수립하는 업무계획, 추진하고 있는 사업계획/ 경과/ 성과/ 관련 통계치 3년치 정도이다. 인사채용의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관련 인사의 인사위원회 기록, 채용심사 자료 등을 제출하도록 한다. 각 부서에서는 제출에 대비해서  ‘업무바인더’를 만들어 놓는다. ‘업무바인더’는 부서의 모든 현황을 담은 자료여서 매년 2월과 9-11월에 업데이트를 해놓았다. 시간 날 때마다 읽어보면 우리 부서의 사업 진행 상황을 한 눈에 알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부서에 신규직원이 오면 ‘업무바인더’를 주면서 읽어보라고 권한다.


‘업무바인더’ 외에 직원이 작성해야 하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예질’이다. 의원이 제출하라고 한 자료에 대해 질문이 들어올 경우 대비하여 윗 분들에게 줄 ‘예상질문’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는 것이다. ‘예질’은 내가 시청에 있는 동안 없애려고 수없이 노력한 것 중 하나이다. ‘업무바인더’를 보면 되는데, ‘예질’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말을 자주 했고, 직원들에게 실제로 만들지 말라고 까지 했다. 자유게시판에는 가장 필요없는 업무 중 하나로 ‘예질’ 작성을 손꼽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질’은 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새로 국장이나 과장이 발령받아 오면 부서직원들은 ‘업무계획’을 작성해서 보고하고 ‘업무바인더’를 첨부한다. 행정사무감사나 국정감사가 있는 경우에는 ‘예질’을 기준삼아 보고(설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업무바인더’와 ‘예질’이 여전히 존재감이 있는 것이다.


자료 편집의 달인이 필요하다.


공무원에게는 편집 능력이 중요하다. 특히 국주임이나 과주임을 맡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의회에 업무보고를 위해 제출하는 자료는 제출요구하는 의원마다 양식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연구용역 자료를 제출 요구 받았다고 하자. 한 의원은 ‘연구용역명/ 용역기간/ 용역금액/ 입찰여부/ 용역참여연구진’ 을 표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하고 다른 의원은 ‘연구용역명/ 연구용역기간/ 입찰금액/ 사고이월여부/ 참여연구진 소속’을 표로 만들어 제출하라고 한다.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의회에서 제출 자료 양식을 통일해서 보내주면 참 좋겠는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리 이전에 제출하라고 했던 자료들을 보고 각 항목을 표로 정리해 두었다가 제출하라는 양식에 맞추어 편집해서 제출하면 편하다. 그러나 우선 눈앞의 일에 치여서 미리 준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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