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월이 Dec 23. 2022

길 위의 오월_4

회사 안이 전쟁터라면 회사 밖은 시베리아이다.

뜨거운 전쟁터와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 어느 쪽이 좋을까? 좋은 것이 아니라 회사에 있을 때가 행복한 것이라는 이야기이다. 계약을 끝내고 회사를 그만둘 시기가 오니 주위에서 먹을거리를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냐고 했다. 밖에 나가면 일을 거저 주지는 않을테니 일거리를 준비해서 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준비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정말 몰랐다.


회사에 있을 때 나의 협력자는 곧 프리랜서인 나의 경쟁자이다.


회사에 있을 때 여러 형태로 관계가 있었던 또는 친분이 있었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있었다. 작은 수당으로 자문을 구했고, 연구를 진행했다. 물론 수당은 법적으로나 규정에 근거가 있어서 내 맘대로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고, 연구용역 역시 입찰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었으니 나의 재량이란 없지만. 그래도 정부의 일을 함께 하면서 협력자로서 좋은 관계로 생각했던 것은 사실이다. 프리랜서가 되었을 때 '언제나 과장일 줄 알아. 더 이상 과장이 아니야.' 라는 말을 들었다. 상대방은 충고라며 하는 말이었는데, 나는 하나도 고맙지가 않았다. 과장이 되기 전에 나는 대학 연구소 전임연구원이었다. 전임연구원 때 했던 대로 무엇이든 열심히 할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내가 과장으로서의 경력만 내세우고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함께 일하자는 사람들이 없다. 몇 곳은 만나도 보았다. 함께 일하자고는 했지만 연락이 없었다. 회사에 있었을 때 협력자로 왔던 사람들이 이제는 같은 분야에서 먹거리를 나누어야 하는 경쟁자가 되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길이 없으면 만들라는 이야기가 있다.


내 전문분야의 사람들이 나와 같이 일하자고 하지 않으니 내가 일을 만들었다. 연구용역 입찰을 위해 연구팀을 구성했다. 내가 입찰한다는 소문이 났다. 양보하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물러설 수는 없었다. 입찰에 떨어졌다. 왜 나한테 같이 하자고 안해? 저한테 같이 하자는 연락 않으셨잖아요? 솔직히 일 시키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지. 아. 나는 일 시키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입찰 하는 것을 보고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되었을까. 무엇이 마음을 바꾸게 한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입찰 준비 한 번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연구과제를 같이 하게 되었을때, 내가 맡은 부분만큼은 최대한 완성도를 높게 하는 것은 그 다음일이다. 내게 호의적이더라도 그것은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뿐이고 일의 완성도가 나의 평판을 좌우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나는 스타트라인에 선 달리기선수이다. 회사에서 진행했던 업무는 나의 경력이 아니다. 경력사항에 단 한 줄일 뿐이다. 그렇기에 한 줄 한 줄 더해나가야 하는 시작점에 서있다. 경력 한 줄이 특강을 줄 수는 있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지속가능한 일거리를 가져오지는 못하는 까닭이다.


인생은 쓰리쿠션이다.


공직에 있는 동안 한번도 만나지 않았던 박사들이 함께 일하자고 했다. 친하지도 않고 안면만 있었던 박사들이 연락해 왔다. 프리랜서가 되었으니 일거리가 당장 없을거라면서 일거리를 주었다. 내 도움이 전혀 닿지 않았던 박사가 도움을 주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내게 일거리를 주었다. 공직에 있을 때 요청에 부응하지 못했던 곳에서 특강 요청이 왔다.


나와 그리 친하지 않았던 박사가 알게모르게 나를 추천해 주었다. 자신이 귀찮던지 일정이 맞지 않던지 하기 싫던지 아니면 내가 적격이던지 그런 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내게 기회가 생겼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예전에 한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인생은 쓰리쿠션이더라.' 그 교수님은 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서울에 와서 대학에 자리잡으려고 노력할 때 기꺼이 추천해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교수들은 오히려 모른척하고, 평소 교류가 거의 없었던 분이 적극적으로 추천해주고 격려해주어서 교수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서 기대하지 말고 본인의 이력을 잘 관리하면 기회가 예상치 않은 곳에서 올 수 있다는 말씀이었다. 이러한 진리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내가 아는 박사들 중 교수가 된 경우 자주 그러하다. 나 역시 그러하다. 그럴 때마다 인생은 혼자의 힘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것을 실감한다.





작가의 이전글 길 위의 오월_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