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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월이 Dec 25. 2022

길 위의 오월_7

공론화위원회 위원장이 되어버렸다.  

여주시에서 공론화를 추진했다. 학회 추천을 받아 회의에 참석하게 되었다. 공론화위원회였다. 여주시는 오래전부터 시청사를 이전하려고 했는데 여러 번 무산된 이력이 있다. 청사가 오래되고 협소한 까닭에 시청 조직이 여러 건물에 나뉘어 있다. 부지 선정은 시청의 몫이었는데 요즘은 시민들에게 결정하도록 하는 시민참여적 의사결정방법이 활용되고 있다. 여주시 역시 공론화를 통해서 부지를 선정하려는 것이다. 


회의에 가보니 건축, 토목, 도시계획, 교통, 환경 그리고 시민대표, 갈등관리 등 분야별로 전문가들이 참석했다. 각각 해당분야에서 몇 십년동안 전문성을 다져온 분들이다. 누가 위원장을 맡는 것이 좋을지 추천하는 시간이 있었다. 사전에 위원장을 내정해 두는 경우도 있기에 내가 위원장이 될것으로는 전혀 생각 못했다. 위원장은 빠지면 안된다. 빠질 수가 없다. 다른 위원들이 안나오더라도 위원장은 꼭 참석해야 한다. 위원장은 다른 위원들보다 부담이 더 많다. 적극적으로 안하고 싶다. 못한다. 나서고 싶지 않다. 난감하다. 


위원장이 되었다. 서울시에 있을 때 공론화를 운영한 적이 있고 행정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이라는 이유이다. 혹시 내가 참석 못할 가능성에 대비하여 부위원장도 결정되었다. 모든 일정에 다 참석하는 바람에 결국 부위원장은 회의주재를 할 기회가 없었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여주로 가는 방법은 2가지이다. 하나는 고속버스이다. 요즘은 앱이 잘 되어 있어서 예매와 동시에 좌석 선택도 가능하다.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언제나 시간이 얼추 맞았다. 여주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서 여주시청까지 걸어서 15분 걸린다. 다른 하나는 전철이다. 한번은 고속버스를 놓쳐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전철을 타고 갔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여주역까지 1시간 20분 걸린다. 여주역까지 가는 전철은 경강선이다. 경강선 마지막 역이 여주역이다. 창 밖으로 간간히 보이는 풍경들이 새롭다. 


9월에 시작해서 12월에 공론화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기존부지 상권에 대한 우려, 새로운 부지 선정에 대한 걱정이 많았다. 결과가 나와도 힘들텐데 왜 맡았냐. 갈등이 심할 것이다. 공론화가 잘 되겠느냐.는 말도 들었다. 결과가 발표되었다. 공론화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공론화가 잘 되려면, 공론화위원회가 잘 운영되어야 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기본적인 원칙이다. 


회의 참석율이 높아야 한다.  참석한 모든 사람이 발언하여야 한다. 

위원들은 피치못할 일정을 제외하고는 모든 일정에 함께 했다. 이토록 열정적이고 열심이고 성실한 위원회라니.. 위원들은 참석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다. 시민들이 논의를 수월하고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절차를 어떻게 진행할 것인지, 논의안건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한 명도 발언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가끔 다른 위원회에서는 논의와 방향성이 맞지 않는 발언도 자주 있는데, 이 위원회는 목표점이 같았고 방향성이 일치했다. 참 신기했다. 이러니 위원장이 아니라도 빠질 수 없다. 


공론화위원회의 중립성이 지켜져야 한다. 

어떤 분야에 대한 지식이 없어도 관여하고 싶은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래서 공론화위원회가 중립성을 지키기란 참 어렵다. 여주시는 어떤 요청도 하지 않았다. 공론화위원회에서 논의 결정한 사항은 그대로 추진되었다. 시청 내 어떤 사람도 '이래야 하지 않나요?' 라고 의견을 제시한 적이 없다. 


참고로 위원회가 잘 안되는 이유는 물론 여러 가지 변수가 있다. 첫째, 안건 개발이 안되는 경우이다. 논의할 안건이 없으면 회의를 개최할 수가 없다. 법을 근거로 한 많은 위원회가 있지만 논의할 안건이 없다는 이유로 한 번도 회의를 개최하지 않은 위원회도 있다. 이러한 위원회는 수장이 바뀌면 폐지 대상 1순위이다. 둘째, 결론이 뻔한 경우이다. 의견을 아무리 많이 제시하여도 결론이 정해져 있다면 회의에 참석할 이유도 참석하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회의에 참석하여도 발언하고 싶지 않다. 셋째, 발언 독식자가 있는 경우이다. 가끔 매우 똑똑하다는 사람이 위원으로 참석해서 발언을 독식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한 상황에 직면하면 이후 회의에는 가고 싶지 않다. 발언을 독식하는 사람일수록 일방적인 자신의 의견만을 고집한다. 넷째, 위원회를 주최한 기관이 위원회에서 나온 결론을 뒤집거나 수정하는 경우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자주 위원회 위원이 그만두거나 뛰쳐나와 성명서를 발표하거나 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여주시는 공론화위원회의 중립성을 지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공론화가 다 끝나고 나서 말했다. '사실 많이 걱정했어요. 시청에서 이런 저런 요구가 있으면 들어야 하나 그런 생각이요.' '우리는 최대한 위원회의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그걸 생각했어요.'


갈등이 있거나 예상된다면 결과는 바로 공개되어야 한다. 

여주시 청사 예정부지로는 3곳을 검토했다. 189명의 시민대표단은 3곳을 두고 이틀간 숙의 토론을 했다. 토론 두번째날 시민들이 토론하고 투표한 결과가 미세한 차이로 순위를 결정하기 어려울 수도 있으니 토론 당일 공개하지 말고 정리한 후에 며칠 있다가 공개하면 어떻겠냐는 의견이 있었다. 공론화위원회는 바로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시민의 의견을 수렴하고 그 결과를 권고안 형태로 만들어 시장에게 전달하는 것이 공론화위원회의 마지막 역할이다. 미세한 차이로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해도 최종 판단은 시장의 몫이다.  또한 갈등이 있거나 예상되는 경우 공개를 미루면 새로운 갈등이 생길 수도 있다. 그래서 공개하기로 한 것이다. 


토론결과를 바로 공개하는 것은 공론화의 내용과 과정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의견도 있다. 공개 여부에 대한 의견이 전문가들마다 다른 것은 갈등의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황을 고려하여 결정하는 것은 공론화위원회의 역할이다. 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미루지말고 공개하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공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라고 하여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논란은 공개해서 발생되는 논란보다 더 예리하고 날카로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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