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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Jan 26. 2024

마침맞제?

엄마, 진짜 대단하다!



 "이 정도면 이 통에 다 들어갈까?"

 내가 설거지를 하는동안 남편이 먹고 남은 냄비의 조림을 덜어놓으려고 적당한 크기의 반찬통을 찾는다. 

 "그건 너무 작아요. 이 정도면 적당할 거 같애요."

 그렇게 꺼내 준 통에 조림이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담기면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통이 너무 남아도 아쉽고, 작으면 다른 통으로 다시 옮겨야 하니 번거롭고 설거지거리만 나오는 셈이 된다. 살림 경력이 쌓이다보니 눈대중으로도 대충 맞히는 편이다. 그럴 때마다 습관적으로 나는 말한다.  

 "안성맞춤이죠?"

 "그러게, 어떻게 그렇게 잘 맞추냐? 

 남편은 매번은 아니지만, 가끔은 이렇게 응수를 해 준다.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알게 모르게 엄마가 하셨던 말이나 행동을 내가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가 있다. 그 중 상자나 냄비, 통이 눈대중만으로 딱 맞으면 안성맞춤이라고 말하는 버릇은 엄마가 생전에 하셨던 것과 같다. 








친정 엄마는 김치를 담그실 때면 마지막에 담을 통을 가져 보라 하셨다. 당시에는 나는 살림이 서툴었기 때문에 얼마만한 크기면 적당할지 자신이 없어 엄마를 향해 통을 꺼내 보였다. 

"어, 그거면 되겠다. 가져 온나." 

그 통에 김치를 옮겨 담으면 백발백중 진짜 딱 맞았다. 넘치지도 공간이 남지도 않게 들어가면 흐뭇하게 웃으셨다. 

"딱 마침맞다. 엄마 눈이 정확하제?"라며 기분좋아하셨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두번이 아니라 번번히 그러셨기 때문에 또 그러시네 하는 생각을 하며 "어, 그렇네."라고 미직지근한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많은 자식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이 보통이 아니셨을텐데, 우리 엄마는 매주 일요일마다 연탄불에 물을 데워서 한명씩 돌아가며 목욕을 시켜 주셨다. 집에서 목욕하는 일이 부끄러워지는 나이가 되면서부터는 읍내 목욕탕에 다녔다. 부지런히 씻기고 옷을 깨끗이 빨아 입혀 주신 덕에 시골 학교의 꾀죄죄한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말끔한 우리 언니들과 나, 동생들은 눈에 띨 정도였는데, 다 엄마 덕분이었다. 


 세탁기도 없던 시절 목욕 후 빨래감이 산더미처럼 나오면 개울에 가서 빨래를 해야 했고, 그건 오롯이 엄마의 몫이었다. 간혹 재미삼아 양말, 수건 몇장 챙겨서 빨랫방망이 두드리는 재미에 빨래를 하러 간 적은 있지만, 큰 빨래를 할만한 나이가 되면 집을 떠나 외지로 공부하러 가거나 돈벌러 나갔으니 엄마를 도와줄 만한 사람은 없었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에는 개울에서 빨래하기도 힘들지만 그걸 말리는 일은 더 곤욕이었다. 


 개울 건너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었는데, 거기에 옷을 걸쳐 놓고 약한 햇빛에나마 몇시간 말리다가 어둑어둑 해질녁에 빨래를 걷으러 갔다. 그 시간 엄마는 저녁밥을 지으시기 때문에 빨래 걷는 심부름은 내가 자주 했던 기억이 난다. 가 보면 허수아비처럼 팔다리 벌린 옷가지들이 빳빳하게 얼은 채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칫하면 부러져서 옷이 찢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그때는 한번도 엄마의 일을 눈여겨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참 무심했던 딸이었음을 엄마를 떠올리며 새삼 느낀다. 엄마는 그렇게 걷어 온 빨래를 안에 옮겨 널어놓으시곤 기분 좋아하셨다. 평소에도 푹푹 삶아서 더이상 깨끗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수건들이 줄줄이 널려 있는 것을 보시며 고단한 하루를 마무리하셨다.

"엄마는 빨래 널어놓은 거 보면 기분이 참 좋데이."

 누구 들으라는 것 같기도 하고 혼잣말 같기도 한 그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지금에서야 생각해 보지만, 그 때 이 한마디를 해 드렸으면 어땠을까.

"진짜 엄마 대단하다."




 내가 아무도 대꾸해 주지 않더라도 "참 안성맞춤이네."라고 굳이 말로 할 때는 엄마를 떠올리는 순간이다. 엄마를 닮아 잘 한다는 또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엄마는 살가운 칭찬과 인사를 받지 못하셨지만, 번거로운 살림을 내시면서 스스로 대견해 하시면서 자기 효능감을 느끼셨던 것 같다. 매사에 어떤 일을 맡아도 멋지게 해 내셨고, 누구보다 잘 하셨던 엄마였기에 동네 사람들은 모두 엄지척을 해 주셨다. 그런데, 정작 아버지와 자식들은 엄마의 노고에 대해 그리고 당신의 솜씨와 정성에 대해 칭찬과 감사를 아꼈다.  

 





 한 때는 어줍잖게 엄마의 인정욕구가 지나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타인에게 인정받으려고 사랑받으려고 애쓰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래도 사람은 칭찬받고 사랑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요, 그 힘으로 살아가지 않는가. 많이 칭찬해 주자,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 주자.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 말이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래서, 나는 엄마를 떠올리며 "안성맞춤이다."라는 말을 자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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