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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Jan 21. 2024

내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의견을 가지되, 옳다고 우기지 않기

 

 얼마 전 난생처음 '말을 절었다'는 표현을 들었다. 말하기를 업으로 하시는 분의 표현이어서 놀랐다. 난 그 말을 처음 듣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떤 뉘앙스인지 단박에 알 수 있었다. 3분 정도 스피치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말을 유창하게 잘하시다가 중간에 버벅거리고, 말이 꼬였던 것이다. 스피치가 끝난 후에 "내가 왜 이렇게 말을 절었지?"라고 하시며 쑥스러운 웃음을 지으셨다. 


 '말이 엉켜서 버벅거리는 것을 절었다고 표현하시는구나.' 

 속으로 생각하면서 그다지 듣기 좋지는 않았다. 다리를 절다에서 따 와 쓰는 표현이라고 생각했고, 그 뒤로도 자연스럽게 사용하실 때마다 조금은 불편했다.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것 같아 없는 그분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언제 기회가 되면 조용히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한 오지랖이다. 그런데, 최근에 또 다른 사람이 '절었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을 보고, 그분의 표현법이 아니라 내가 모르지만 사람들이 쓰는 말일 있음을 어렴풋이 눈치를 챘다. 


 어제저녁을 먹으면서 문득 그 말화제가 되었다. 나는 그런 표현을 들어 본 적이 있냐고 남편에게 물었고, 남편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는 그건 혐오표현에 해당하는 아니냐며, 의견일치를 보았다. 그리곤, 옆에서 말없이 밥을 먹던 두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절었다가 무슨 뜻인지 알아? 너희들도 혹시 그런 말 쓰니?" 

 누군가가 지어내서 혼자 쓰는 말이 아닐 테니 분명 우리는 모르지만, 요즘 유행하는 표현일 수도 있기 때문에 가볍게 확인하는 질문이었다. 


 순간 아이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눈치를 보는 것을 직감했다. 엄마, 아빠의 대화를 듣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그 표현을 싫어하고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아들은 슬쩍 답을 피했고, 자기주장이 강한 딸이 약간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을 했다.

 "그거 아이돌 노래 가사에도 나와요. 사람들 많이 쓰는데요?"

 "그래?" 남편과 나는 조금 놀랐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써?"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뭔가 더듬거리거나 매끄럽지 못할 때 쓰는 말 아니에요? 또 다른 뜻이 뭐가 있어요?"

 애들은 다리를 절다와 전혀 연결 짓지 않고 그냥 자연스럽게 썼던 건데, 오해를 받는 상황이 억울한 듯했다.

 "우린 몰랐네. 근데 아무래도 어떤 사람한테는 굉장히 상처가 될 수 있으니까 가급적 안 쓰는 게 좋지 않을까?"라고 조심스럽게 얘기를 했더니 두 아이는 그걸 왜 굳이 그렇게 연결하시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었다. 가끔 내가 봤을 때는 전혀 혐오표현이 아닌데, 어떤 단체에서는 굳이 혐오표현이라고 반박하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을 보았던 터라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 아이들에게 긴 말은 하지 않고 마무리지었다

 

 그러고 나서도 이 표현이 우리 가족 말고 사회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궁금했다. 어떻게 쓰이는 표현인지 좀 더 알고 싶어 검색창에 넣어봤더니 누군가의 질문과 답변을 볼 수 있었다. '가사를 절었다'는 표현이 장애인 비하 표현이냐고 물었고, 답변자는 다리를 저는 경우는 누구라도 그럴 수 있기 때문에(사실 발목을 삐끗하거나 오래 앉았다 일어나면 다리가 저려서 잠시 절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굳이 장애인을 떠올리거나 비하할 의도는 아니라는 답변이었다. 그것도 사회복지 일을 하시는 분의 답변이라 나는 그분의 답변을 듣고 혐오표현이라고 단정 지었던 나를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이뿐이겠나. 서로의 인식의 간극은 참으로 크다. 자칫하면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을 남에게 강요하기 쉽고, 남들이 옳다고 생각하면 그런가 하고 별생각 없이 따라 가기도 쉽다. 조금만 찾아보면 객관적이진 않지만, 다수의 여론을 파악할 수 있는 시대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까지만 하자. 그걸 누군가에게 옳다고 우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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