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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로잉업 Feb 21. 2024

잠을 허하노라

졸음 대신 잠을 선택하다 



난 불면을 경험한 일이 거의 없다.

중요한 시험 전날 잠을 설치거나 심각한 고민이 있어 하루이틀 잠 못 이룬 밤은 있지만,

그런 날은 살면서 손에 꼽힐 정도이다. 커피를 마시고도 곧잘 자는 사람이다.  

오히려 나에게 잠은 투쟁의 대상이었던 것 같다.


중학교 다닐 때는 7시에 출발하는 공짜 차를 타고 등교를 하느라 늦잠 잘 수가 없었고, 

고등학교 입학하고서는 기숙사 기상시간이 6시라 강제로 운동장에 나가서 아침체조를 해야만 했다.

당시 유행했던 말이 4당 5락(4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5시간 자면 떨어진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그 말에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잠을 많이 자는 것은 불길한 징조 같은 것, 게으름의 상징, 할 일을 안 하는 사람으로 느껴졌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는 늦잠을 자주 잤다. 

9시 수업에 지각도 종종 했고, 오후 수업이 있는 날이면 날이 훤할 때까지 자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전날 술자리가 길어졌거나 몹시 우울해서 만사 귀찮아서였다. 

컨디션이 좋은 나에게 늦잠은 있을 수 없고, 일찍 일어나면 뿌듯하고 상쾌했다. 

새벽 5시마다 도서관에 자리를 잡으러 나서는 친구를 볼 때면 잠이 없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타고나기를 숏 슬리퍼들이 있다는데, 나는 그 축에는 들지 못 했으니 일찍 일어나는 데는 노력이 필요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처음 취직한 곳은 6시까지 출근해서 업무를 시작해야 했다. 대신 3시 반에 퇴근이었다. 

선배들이 5시까지 근무하는데 제일 막내인 내가 3시 반에 냉큼 퇴근하기가 미안했다. 괜히 안 해도 되는 일도 해 가며 퇴근시간을 늦추었다. 그렇게 5시쯤 일어나서 출근 준비하는 생활은 1년 정도 이어졌고, 아침 잠이 많은 나에게 무척 고단한 생활이었다. 일찍 일어나려면 일찍 자야 하는데, 20대 청춘이 12시 전에 잔다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으니 잠이 늘 부족했었다. 


짧은 직장생활을 끝내고 다시 수능공부를 하게 되었다. 입시를 위해 잠은 여전히 적을수록 좋았다.

독서실에서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책상 사이에 이불 깔고 잤다.(지금 생각하면 그런 시스템이 신기하다.)

당시 독서실에 다녔던 고3 학생들은 다수가 그런 생활을 했었다. 그 아이들 속에서 언니 대접을 받으며 나름 재미난 수험생활을 했다. 일찍 동생들이 등교하고 나면 주인아주머니께서 청소를 시작하셨고, 나는 언니집에 가서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을 챙겨 다시 독서실로 향했다. 4당 5락은 여전한 나의 신념이었고, 더 줄이고 싶어도 더 줄이지 못하는 잠꾸러기 나를 아쉬워했다.






20대 중반에 다시 시작한 대학생활은 늦잠을 자기에는 마음이 바빴다.

공부량은 많고,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니 누구보다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새벽부터 기수련 하는 동아리 활동도 하고, 1교시 전에 모여서 독송하는 스터디 모임에도 참가하고, 

새벽 수영도 다니며 어떻게든 아침시간을 활용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렇게 졸업을 하고, 병원 수련의 생활이 시작되니 아침잠은 더더욱 바랄 수가 없게 되었다. 

당직이라도 서는 날이면 야간 콜도 받아야 했고, 새벽부터 나가 차팅 하느라 잠이 부족한 생활은 이때가 절정이었다. 레지던트가 되고는 교수님께서 새벽시간에 스터디를 하자고 하시니 미칠 지경이었다. 

그렇게 4년간의 병원생활을 마칠 즈음, 나는 이제는 진짜 아침형 인간으로 탈바꿈되었으리라 자신했건만

병원문을 나서는 순간 나의 아침잠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마저도 잠시, 아이 둘을 키우면서 모유수유를 해야 하니 등을 바닥에 대고 잘 수가 없었다. 밤새 통잠을 자는 아기들은 정말 효자들이다. 밤중수유를 해야 했던 나는 거의 3년 만에 모유수유로부터 해방되었다. 그날 기억이 난다. '아, 맞다. 잠은 이렇게 등을 쫙 펴고 자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행복해했다. 


 




이런 내가 늦잠이 일상인 남편과 결혼을 한 것은 무슨 운명이었을까.

남편은 잠이 안 오는 날이 많은 사람이고, 잠이 안 오면 그 시간에 공부도 하고, 좋아하는 취미생활도 하며 그 밤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다가 새벽에 잠이 들고, 잘만큼 자고 일어나는 사람이라 늦잠이 기본값이었다.

대학시절 동기였던 남편은 1교시 수업에 늦기 일쑤였고, 답답한 나는 핸드폰으로 모닝콜을 해 주고, 안 받으면 자취방에 가서 깨우기도 했다. 늦잠 자는 남자친구가 참 싫었다. 다툼은 거의 늦잠과 관련되었다.


그런 남자와 결혼을 하고 나니 나에게 한 가지 고충이 생겼다.

평일에 출근할 때야 어떻게든 일어나서 나가지만, 일요일 아침에는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잔소리하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는 남편을 보고 있기가 너무 힘들었다. 특히, 애들이 어릴 때는 주말 하루라도 아빠와 많은 시간을 보냈으면 했고, 도시락 싸서 공원에도 가고, 박물관도 가고, 놀이동산도 가고 싶었다. 계획을 세워 두었다가도 못 일어나는 남편을 깨우다 보면 슬슬 화가 치밀고, 그 화는 압력밥솥의 추처럼 건드려지면 덜거덕덜거덕 밖으로 삐지고 나왔다. 우리 부부의 유일한 다툼거리는 바로 늦잠이었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아이들을 키우고 나니 몇 년 전부터 일요일 아침시간의 자유가 찾아왔다. 온 가족이 함께 아침부터 외출할 일이 없어지자 나는 늦잠 자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아침 일찍 산책도 하고, 친구와 조조영화도 보면서 나만의 아침시간을 즐겼다. 일찍 일어나는 일은 나에게 미덕이었다. 


 




작년 8월부터 6개월 정도 온라인 모닝루틴 모임에 참가하면서 나는 원 없이 아침형 인간이 되어보았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체조하고, 명상하고, 독서하고, 하루 계획까지 세우는 아침이라니 내가 그토록 원하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니던가. 혼자서는 절대 못 할 것 같은 아침형 인간생활을 함께의 힘으로 거뜬히 하게 되었다. 하지만, 아무리 일찍 자도 12시를 넘길 수밖에 없는 생활이다 보니 차츰 수면부족이 주는 버거움이 몸으로 느껴졌다. 그렇게 해서 나의 미라클 모닝은 6개월 천하로 막을 내렸다.





그런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한 가지 생각의 변화가 왔다.

내가 그동안 잠을 너무 적게 자고 있었다는 사실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어쩌다 10시간씩 잘 때도 간혹 있었지만, 그럴 때도 일어날 때 기분은 정말 꽝이었고, (많이 잤다는 이유 하나로) 평균적인 수면시간은 6시간이 채 안 되었다. 

성인 적정수면시간은 개인차가 있지만 건강을 위해서 보통 7~8시간을 권장한다. 

나는 지금껏 이렇게 자는 일상을 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잘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졸고, 심지어 도서관에서도 졸고 있는 나를 구 남자친구 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었다.

"졸리면 엎드려 자면 되는데, 왜 졸고 있니?"

그때도 나는 잠이 부족했던 사람이었다. 평생 잠이 부족했던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 마음을 내려놓으니 아침잠이 참 달콤하고 편안해졌다. 


이제부터는 최소 7시간은 자기로 마음먹었다. 

깨어 있는 시간을 맑게 보내려면 자야 했는데, 나는 질보다 양으로 승부를 걸었던 거다. 

양으로 승부를 걸어야 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잠을 기꺼이 허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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