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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Nov 11. 2019

“이거이거. 오우~~ 이거이거!!”

  

1년 전 여름, 오빠와 나, 그리고 조카는 낯선 나라로 배낭 여행을 떠났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나 이름을 들어본 나라. 해발 5천미터가 넘는 코카서스 산맥에 둘러싸여 있는,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젠 이 세 나라를 일컬어 코카서스 3국이라 부른다는 거, 뭐 이 정도가 그 나라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전부였다. 그 중에 조지아는 인류 최초로 와인을 만든 나라라는 오빠 말에 왠지 귀가 솔깃했다. 술 좋아하는 나와 뭔가 인연이 있을 것 같은 느낌. 그리고 그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조지아는 발트 3국 중에 나에게 가장 많은 추억을 안겨준 나라였다. 그래서 이번 글은 조지아에서 있었던 따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조지아에서 우리가 머물고있던 숙소 근처에 과일가게가 몇 군데 있었다. 평소에 과일을 좋아해서 그곳을 지나칠 때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이거저거 몽땅 사먹고 싶었다. 물론. 체리, 복숭아, 살구, 포도 등등 한국에서도 흔히 먹을 수 있는 과일들이긴 했다. 다른 게 있다면 동네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방금 딴 상추를 바구니에 담아와 팔듯 그 과일들이 가진 싱싱함과 풋풋함, 모양도 크기도 제 각각인 투박한 모습에 왠지 더 끌렸다. 

하루하루 뼈를 녹일만큼 뜨거운 태양 아래를 헤집고 돌아다니다 삶아진 고기마냥 육수를 줄줄 흘리며 숙소로 돌아오는 일상. 그 바쁜 나날 속에서 눈으로만 찍어두었던 과일가게를 들려볼 틈이 없었다. 게다가 나 혼자서는 절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하는 오빠 때문에 (오빠 눈에는 내가 아직도 코 찔찔이 막내로 보이는 게 분명하다) 귀가 이후엔 방에서 꼼짝 못하고 조카랑 세세세나 하고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 근처에서 밥을 사먹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은 기어코 과일가게에 들렸다 가겠노라 선포를 했다. 뭐 그러든가, 라는 반응을 보이던 오빠는 결국 나를 못믿고 털레털레 과일가게까지 따라왔다. 스무 살 처녀가 남자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과일 사러 가는 여동생을 따라 나서는 다 늙은 오빠와 조금 덜늙은 여동생의 콜라보라니 원.

과일가게에 다다르자 나는 갑자기 기분이 업 되면서 흥분이 되었다. 그동안 지치고 힘들었던 내 몸의 세포들이 일제히 일어나며 그 기운의 반은 입으로. 나머지 반은 내 손가락 끝으로 쏠렸다.     


“이거이거~~!!”

“오빠야. 이거이거~~!!”

“살구도 너무 맛있겠다. 이거도 살 거야!”

“이거이거. 그리고 이것도오~~”     


정신없이 과일 사이를 뛰어다니며 “이거이거”를 외쳤다. 오빠는 철없는 동생이 과일을 바라보며 날뛰는 광기어린 눈빛이 안돼보였는지 과일가게 아줌마에게 내가 가리키는 “저거저거”를 모두 담아달라고 했다. 아줌마는 갑자기 코너를 돌아 나타난 한 여자가 정신없이 자기 과일들을 탐하며 질러대는 소리에 몹시 관심있어 하는 표정이었다. 그러다가 처음 말을 배우는 아가의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잠시 오물오물 거리더니 급기야 이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이거이거?!.. 이..거이거?!”     


내가 손가락을 내밀어 과일을 가리키면 아줌마는 아주 정확한 발음으로 외치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오우~~ 이거이거!!”     


급기야 옆에 가게 아줌마 아저씨들이 이 낯설고 신비한 소리에 관심을 보이며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모두들 활짝 웃으며 팔을 벌리고 따라하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하하. 이거이거!!”     


아… 이런 순박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오빠는 갑자기 몰려든 과일가게 아줌마 아저씨들 속에서 마구 퍼담아진 “이거이거”를 받아들고 있었고 물론 돈도 오빠 주머니에서 나왔다. 체리 5라리. 살구 5라리. 복숭아 5라리. 무화과 5라리..이거이거 다해서 20라리. 우리 돈 1만원.

정말 어마어마하게 풍족하고 저렴한 과일쇼핑이었다. 나는 나로인해 벌어진 즐겁고도 소박한 소란 속에서 사람들과 배를 잡고 깔깔 웃으며 서있었다. 맘 같아서는 의자 하나 갖다놓고 그들과 거기 앉아 몇 시간이라도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내 뒤에서 과일봉지를 잔뜩 들고 서있는 오빠가 나를 내버려두고 갈 리 없으므로 정겨운 그들에게 “안녕~~!!”이라고 인사를 고하고 돌아섰다.   



그리고 그 다음 다음 날. 나는 조카를 데리고 다시 그 과일가게를 찾았다. 멀고도 낯선 이 땅에도 내 친구가 생겼다고 말해주었으나 조카는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조카 손을 끌고 코너를 돌아 과일가게로 갔다. 그리고 과일가게 아줌마와 눈이 똭 마주쳤다.     


‘혹시… 나를 잊은 건 아닐까.’     


흔들리는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그 순간 아줌마의 입에서 탄성처럼 튀어나온 소리가 있었다.     


“이거이거어~~!! 오우 이거이거!!”     

조카가 움찔하며 한 발짝 물러섰다. 그러자 옆가게 아저씨와 아줌마까지 한꺼번에 나타나더니 다같이 외치기 시작했다.     


“이거이거!! 오~~ 샬라샬라~~ 이거이거!!”     


모르긴해도 아마. “이거이거 라고 말하는 그 여자가 다시 왔다!” 뭐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 조카와 나는 그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또다시 ‘이거이거 저거저거’를 잔뜩 사서 돌아왔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정겨운 웃음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도 그들의 활짝 벌린 두 팔과 함박 웃음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김춘수의 <꽃>에서 나오는 시구절 처럼,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의미있는 무언가로 남고 싶은 지도 모른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은 건 아닐까…     

혹시라도 조지아로 여행을 가게 된다면 트빌리시에 있는 과일가게에 들려 슬쩍 이렇게 한 번 말해보길 바란다.      


“이거이거. 오우~~ 이거이거!!”     


그 소리에 눈이 왕방울 만해지면서 양팔을 벌리는 아줌마를 만나게 된다면 그대는 조지아에서 꽃 같은 친구 하나를 얻는 행운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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