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줌마의 물레
갑상선 기능 항진증이었던 친구가 호르몬 약을 평생 먹고사느니 하고싶은 것 실컷 해보다 죽겠다며 약을 끊었다.
“그러면 안되지 않을까?”
“너라면 그 독한 약에 니 몸이 쩔어가는데 계속 먹고 싶겠니?”
학교 선생님이었던 그 친구는 학교까지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지 맘대로 살기’에 돌입했다.
그 첫번째가 도자기 만들기였다.
“같이 배울래?”
“그런 거 하려면 돈이 많이 들잖아?”
“그래 그럼. 넌 평생 돈돈하다 죽어.”
아니, 이런 싸.가.지.를.봤.나. 그래, 팔자 편한 년은 어떻게 노나 구경이나 해 보자 싶어 무작정 따라나섰다. 그런데 거기서 나는 신천지를 경험하고 말았다. 아가 엉덩이보다 더 보드라운 흙이 내 양 손에 빈틈없이 채워지는 그 찰진 감촉. 코로 들어간 숨이 온 몸의 땀구멍으로 다시 뿜어져나오는 듯한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뭐야. 이거 너무 좋다. 나 무조건 배울래!”
처음엔 손물레로 시작해 간단한 것부터 만들어 보다 조금씩 익숙해지자 전기물레로 바꿔 나갔다. 왜 그거 있잖나. <사랑과 영혼>에서 데미무어가 흙으로 뭘 만들고 있는데 페트릭 스웨이즈가 뒤에서 그녀를 껴안고 막 예뻐하고 그러면서 같이 주무르던.. 그게 바로 전기물레다. 물론. 내가 백날 돌려봐야 Unchained Melody가 흘러나올리 없지만 그 재미와 설레임 만큼은 대단했다.
수업이 끝나면 다른 사람들은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떨었다. 하지만 나는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사발의 곡선 하나가 자연스러워지기까지 수없는 연습과 반복만이 필요했다. 하지만 늘 시간이 부족했다. 그러다보니 딴 학생들은 집에 갈 때 정갈한 옷차림으로 공방을 나섰지만 나는 온 몸에 흙을 묻힌 공사판 아줌마의 몰골로 허겁지겁 그곳을 나왔다. 비닐봉투에는 집에가서 쪼물딱거릴 흙뭉치를 잔뜩 담아가지고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뭔가 재밌는 것을 만나면 끝장을 보고 뿌리를 뽑는 성격이었다. 때문에 그 재미있는 것을 하지 않고있는 모든 시간이 무의미해졌다. 집이고 지하철이고 공방이고 장소가 어디든 가리지 않고 흙을 주물러댔다. 다른 학생들은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머그컵의 손잡이를 떡가래 뽑듯 가지런히 만들었지만 나는 뱀 대가리의 형상이나 여자의 잘록한 허리로 만들어 붙이곤 했다.
“머그컵 뚜껑을 엉덩이 모양으로 만든 건 쫌 야하지 않나요?”
사람들이 깔깔 웃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더 야한 걸로도 만들어 볼 생각이었다.
도예를 배워보면 알겠지만 가장 부담스러운 게 소성비다. 완성된 물건을 구울 때 무게를 재서 소성비를 받는데 1kg에 10000원 정도. 그러니 좀 두껍게 그릇들을 만들었다 싶으면 한 번 구울 때 10만원 돈이 쑥 들어간다. 같이 배우는 학생중에 시아버지가 목사인 아줌마가 있었는데 얼마나 돈이 많은 지 흙덩어리를 물레에 똬악 얹어놓고 거기다 눈, 코, 입을 대애충 만들어 붙이고는 위풍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니임, 제 작품 예쁘게 구워주세요~~”
돈 있는 자들의 여유라고나 할까. 뭐 함튼 소송비 몇 십만원을 기냥 쳐날리고도 아까운 줄 몰랐다. 접시도 말만 접시지 쌀가마니를 얹어놔도 될 만큼 바위에다 홈만 판 것 같은 걸 만들어댔다. 하지만 나는 돈 써가며 취미생활 하는 게 사실 부담스러웠던 터라 될 수 있으면 최대한 얇게 만들어야 했다. 흙이 말라 수분이 날아가면 더더더 가벼워졌는데 소성료를 아끼기 위한 나의 노력은 갈수록 빛을 발해 코렐 정도의 두께로도 만들 수 있게 됐다.
도예선생님이 하루는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양미씨가 두 번째야.”
뭐야. 사랑고백 같은 건가? 흙투성이 아줌마에게?
“물레 위에 흙을 똑바로 세워 중심을 잘 잡아야 그릇이 잘 나오는 건데 지금 봐봐. 흙덩이가 옆으로 삐뚜름하게 기울었자나. 피사의 사탑처럼. 근데 신기한 게 양미씨는 딱 그만큼 같이 기울어져 몸이. 예전에 프랑스에서 만난 어느 도예가도 그랬었거든. 암튼 재밌어. 둘 다.”
내 맘대로 내 멋대로 마냥 재밌는 도예였지만 세 달정도 접어들면서부터 슬슬 고민이 됐다. 계속 일을 해오다가 몇 달 쉬는 틈에 이걸 시작한 거라 다시 일을 하는 게 여러 모로 맞았다. 하지만 도예를 관두기 전에 꼭 만들어보고 싶은 게 있었다.
“다기세트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선생님.”
주전자 모양의 다관. 일명 찻주전자. 찻잔과 받침. 밥그릇 모양으로 생겨 한쪽에 물을 붓기 쉽게 주둥이를 만들어 놓은 숙우(찻물을 우리기 전에 적당한 온도로 물을 식히는데 사용한다).
이것들을 세트로 하나 만들어보고나서 죽자고… 아니 그만두자고 마음 먹었다. 그때부터 선생님을 조르기 시작했다. 다기세트를 만들게 해 달라고.
“양미씨가 온 몸에 흙칠을 해가며 열심히 한 건 알지만 아직까진 다기세트 만들기엔...”
“맞는 말씀이세요. 근데 언제부터 만들 수 있어요?”
고집불통에다 남의 말은 거의 듣지 않는 흙투성이 아줌마는 그렇게 다기세트 만들기를 시작했다. 사군자에서 선긋기를 배우다가 어느 날 갑자기 홍매화나 국화 그리기로 쩜프를 한 셈이다. 하지만 온 몸에 빼곡히 흙을 쳐발라가며 내가 흙인지 흙이 나인지, 뭐 암튼 최선을 다해 만들고 뭉개고를 반복했다. 급기야 선생님은 공방열쇠를 나에게 맡기고 집에 가버렸다. 쫄쫄 굶고 있을 애들만 아니라면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고 싶었다. 이제껏 살면서 이토록 뭔가를 간절하게 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한 달이라는 시간 동안 나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마침내 다관과 찻잔, 그리고 찻잔받침과 숙우까지. 하나도 아니고 세트 세 벌. 무려 3세트를 완성해 냈다. 그 모두가 완성되자 갑상선 기능 항진을 앓던 내 친구와 공방까지 다 내어주며 열심히 가르쳐 주셨던 도예쌤은 눈물어린 진심을 담아 기립박수를 쳐주었다.
그 세 벌의 다기세트는 아이들이 다니던 대안학교 교사회에 한 벌. 남편이 사무실에서 쓰겠다며 한 벌.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누군가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동안 만들었던 그릇과 접시, 커피잔. 머그잔 등등 잘만들어졌다 싶은 것은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그 흔적도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 다관은 남편 사무실에 있던 것인데 마침 집에 가져왔길래 옛날 생각이 났다. 언젠가 여건이 되면 다시 시작하리라 미뤄둔 게 벌써 7년이 흘렀다. ‘독 짓는 늙은이’의 송영감처럼 모든 열정을 다 받쳐 불싸르고 끝나버린 거다. 그래도 민들레 꽃씨 같은 불꽃 하나 떠돌다 언젠간 다시 불 지펴 볼 날이 오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