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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양미 Aug 26. 2020

김일성이 나의 큰할아버지?

더워 주깼는 화요일 밤입니다.

털털털~~ 돌아가는 (고물)선풍기 앞에 앉아

얼음물 한 잔을 마시며 잠시 창밖을 내다 보고 있으려니 문득 친할아버지 생각이 나네요..

초등학교 1학년 무렵이었나.. 암튼 어느날.
저는 숨겨진 가족사의 비밀을 알게 됐담미다.

"이건 진짜 비밀인데.. 사실은 김일성이 우리 큰할아버지다."

저보다 7살 많은 오빠가 말해줬지요.
어린 나이에도 그 말이 너무 무서워 숨이 헉 막혔어요. 북한의 그 나쁜 김일성이 우리 큰할아버지라니..
사실. 그 말은 꽤 믿을만한 것이었는데 이유는 저희 친할아버지 목 뒤에도 커다란 혹이 있었거든요. 거기다 같은 김 씨 성을 가지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그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 후.
저는 무척 혼란스러웠습니다. 혹시라도 사람들이 저에게 우루루 몰려와서는.

<이 공산당 빨갱이 핏줄!!>

이라며 몰아부치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용감하게 말하고 맞아죽어야겠다.
이런 생각으로 가끔 혼자 연습도 했더랬습니다.
오빠가 저에게 또 이런 말도 했었지요.

목 뒤에 혹이 나는 건 집안 내력인데 만약 아빠 목에도 혹이 나면 그땐 우리 모두 북한으로 가서 살게 될 거야.

정말 무서웠습니다 그땐.
북한에 가서 목에 빨간 스카프를 두르고 노래하며 춤추고 싶지 않았거든요..

<위대하신 수령동지를 위해 이 한 몸 바칠거야요!!>

따위의 말은 정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저는 눈만뜨면 아버지 목뒤를 몰래 훔쳐보거나 만져보며 <혹이 나면 큰일인데>라고 걱정을 했답니다.

그러다 하루는 아빠 목 뒤가 조금 불룩해 보이는 검미다. 겁이 덜컥났어요. 그래서 밥을 먹다 울음을 빵 터트렸지요.

"나..난..지..진짜. 북한 가서 살기 실타고오~~"

엄마와 아빠는 얘가 무슨 자다가 봉창 씹어먹는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쳐다봤고 오빠는 씹던 밥풀을 뿜었지요.

그 날 이후 저는.

"이건 너한테만 말해주는 비밀인데.."

라고 오빠가 말할 때마다 두번 다시 속지 않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하며 살아왔답니다 ㄸㅂ..

오늘 밤. 왜 갑자기 이 생각이 났는지 모르겠네요.
뭐 암튼. 김일성이 저의 큰할아버지가 아닌 건 천만 다행입니다. 그랬으묜 저는 지금쯤 집안 내력으로 목 뒤에 혹을 단 저희 오빠와 북한에서 김여정처럼 살고 있었을테니까요~~ ㅎㅎㅎ
.

.
아무튼 애들한테 거짓말 좀 하지 마시고.

다들 또 열심히 살아봅시다요. 아자!!♡♡

#조지아에서만난큰아버지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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