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잔 밑이 봄이다

by 시와 카피 사이

<소망세탁>



그리움따라

찾아간 옛 동네,

주공아파트와 삼익아파트 사이

칸칸이 어깨를 맞대고 늘어선

1층짜리 상가 건물에

문방구 사라지고 그린마트 사라지고

엘림피아노학원 사라지고

다 사라진 자리에

무인 카페 들어서고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들어서고

무인도가 되어버린 여기, 남은

사람이라곤 하나 없는데

소망세탁 하나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네

낡은 선풍기 탈탈탈 돌아가고 다리미는

희뿌연 증기를 내뿜으며 소망은

오래된 기차처럼

20년 전과 같은 모습으로

있네, 아직 내겐

한 칸 소망이 있네

몇 번이고 하얗게 지워볼

때묻은 소망이

남아 있네




오후 두 시는 매일 옵니다.


하지만

그날의 오후 두 시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원하고 바라는 것은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것들입니다.


이미 지나간

오후 두 시의 순간들이고

풍경들이고

사람들입니다.


외할아버지와 공을 주고 받던 어느 아침이고

빛바랜 녹색 소파 위, 아빠가 틀어주신

만화 비디오를 챙겨보던 주말이고


세 가족 나란히 식목원을 걷던

눈부신 계절입니다.


모두

그날의 오후 두 시가 되어버린 시간들이죠.


오랜만에 찾아간 옛 동네에서

변함없이 남아 있던 건

소망세탁 하나뿐이었습니다.


황혼녘이면 자전거 가득 옷가지를 싣고

언덕배기를 오르던 세탁소 아저씨,

포대기에 아기를 업은 채 계산대를 지키던

그린마트 젊은 부부와

앞집 살던 801호 엘림피아노 원장님,

내 단짝 15층 준상이와

늘 미안한 16층 진솔이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만나고픈 사람들을

돌이켜 보면


대부분이

평범한 날들이고

평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깨달았어요


평범한 오늘 속에

내가 원하고 바라는 모든 게

존재하고 있었다는 걸.


그러니까 이미 오래전부터


내 곁엔


그날의 오후 두 시와

소망세탁소가 있었다는 걸.




보물이란

깨닫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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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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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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