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런과 천사 사이>
핑크색 임산부석에
할아버지 한 분이 와 앉는다
내 옆자리에서
큰소리로 통화를 한다
이쪽으로 다리를 꼰다
안주머니를 뒤적일 때마다
날카로운 팔꿈치가
내 어깨를 찌른다
나는 잠시 눈을 감고
우리 할아버지, 라고
생각한다
우리, 라는 말이 붙으면
많은 일이 용서 된다
단어 하나 붙였을 뿐인데
미간이 순해진다
당신이 홀로 돌아갈 먼 길이
걱정되기 시작하고
왜 이곳에 계신 거냐고,
이제서야 나타나셨냐고,
많이 보고팠다고
기대고 싶어진다
문득
안아주고 싶어진다
저는 외할아버지에게 처음 패스를 배웠습니다.
제가 축구를 사랑하게 된 건
할아버지의 영향이 크죠.
2002년 월드컵이 한창이던
제가 유치원생 무렵, 자꾸만
발끝으로 공을 차던 제게
할아버지는
발의 뾰족한 부위가 아닌
발의 가장 부드러운 부위로 공을 차야 한다고,
몸은
상대를 향한 채 동시에
상체를 숙일 줄도 알아야
공이 올바르게 나아간다고,
무엇보다 공은
혼자서만 오래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주고 받아야 하는 거라고.
할아버지는
패스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공을 다루는 방법을 넘어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배웠던 것 같아요.
상대를 온전히 마주하고,
가장 부드러운 부분으로 다가서며,
때론 상체를 숙일 줄도 아는 마음
그런 마음을 끊임없이 주고 받는 것이
축구이고
인생이라는 것을
할아버지는
그 시절의 저에게
가르쳐 주셨는지도 몰라요.
아직도 공처럼
둥근 달이 떠오르는 날이면
문득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내 인생에 등장해줘서 고마워요
-earth music & ecology 광고
https://brunch.co.kr/@hyungsic7/151
*위 시는 자작 시입니다
*구독료
넷플릭스 13500원. 티빙 9500원. 쿠팡플레이 7900원. 시와카피사이 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