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웨이스트의 시작 ㅣ 두 번째의 겹
지난번 내가 제로웨이스트가 된 이유, 첫 번째 겹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 두 번째 이야기를 시작해 본다.
내적동기 한 겹에 이어 본격적인 행동으로 옮기게 된 계기를 생각해 보자면 약 3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엄마랑 여느 때처럼 편안한 자세로 거실 소파에 앉아 TV를 보던 주말이었다.
채널을 한참 돌리다 한 뉴스 소식에 시서이 멈췄다.
뉴스에서는 한 앵커가 상기된 목소리로 이웃나라의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지난해 발생한 호주 산불이 좀처럼 잡히지 않고 오히려 확산되면서 호주 당국이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
"불바다가 된 숲에서 도로로 탈출하는 코알라, 검게 그을린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운데요. 이번 산불로 인해 4만 마리의 코알라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
"최악의 산불로 야생동물의 낙원으로 불리던 호주의 거대한 숲이 불타면서 수많은 동물이 목숨을 잃고 잇습니다. 특히 움직임이 느린 코알라들이 큰 피해를 입어 사실상 독자적 생존이 불가능한 기능적 멸종위기에 처했습니다."
2019년 9월부터 2020년 2월까지 장차 5개월가량 이어진 호주 산불에 대한 소식이었다.
이웃나라 호주에서 산불이 크게 났다는 건 그날 처음 들은 소식이 아니었다.
이미 그전 뉴스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화재 진압이 안되었다는 것이 다소 충격적이었다.
호주의 한 숲에서 난 산불 그 화재가 수개월 째 진압되지 않는 최악의 산불이었다.
뉴스를 보고 바로 엄마한테 소리쳐 말했다.
"엄마! 호주 아직도 불이 안 꺼졌대!!"
"어머, 어머! 산불이 크게 났다더니 그게 아직도 안 꺼졌어?"
뉴스 앵커 음성과 함께 보이는 현장 모습은 더 충격적이었다.
당최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불에 점점 불길이 번거 사라져 가는 숲의 모습은 맥주 광고나 관광 상품에 소개되었던 청청나라 호주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고 그저 까맣게 타서 관광은커녕 앞으로 사람들이 저곳에서 살 수 있을까 걱정될 정도였다. 그 밖에도 거센 불에 새카맣게 탄 나무에 간신히 매달려 버티다 극적으로 구조되어 구조대원이 주는 물을 허겁지겁 마시는 코알라, 미처 도망가지 못해 고통스럽게 희생당한 야생동물까지...
호주 산불의 피해 모습은 나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고, 나중에는 호주 산불이 꺼졌는지 매일 아침 검색해 살펴보기를 반복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코알라, 뜨거운 불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캥거루들의 모습들은 한동안 SNS를 통해서 빠르게 퍼졌고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그러던 중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대체 누가 불을 질렀을까?'
'뉴스를 보니 주변국, 많은 사람들이 매일매일 화재 진압을 위해 고군분투 중인데 왜 이렇게 오래 불을 못 끄고 있는 걸까?'
사실 누가 불을 질러, 이렇게나 큰 피해를 만들었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원래 사람들은 이런 큰 일이 생기면 이 슬픔에 책임질 사람이 있길 바라니까.
박지선 교수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사건이 있으면 범인이 있기를 바란다는 심리 같은 거였나 보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뉴스에서 본 화재 소식들은 대부분 특정 방화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배꽁초를 버려 작은 불씨가 옮겨 산불이 된 경우, 안전관리 소홀로 불이 붙어 큰 화재로 번진 경우
모두 어떤 한 사람 또는 단체의 안전관리 소홀로 인한 화재가 원인이었다.
역대 최악의 산불이라고 꼽히는 이 호주 산불도 마찬가지로 그런 줄만 알았다.
하지만 화재의 원인은 내 예상과 완전히 빗나갔다.
알고보니 생각지도 못한 원인이었다. 이 장기간의 화재 원인은 바로 지구온난화였다.
이때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자면 솔직한 나의 반응은 이랬다.
'아니 방화범이 지구온난화라고? 학교에서 배운 그 지구온난화?'
학교에서 누구나 지구온난화에 대해 배우고 들어봤을 거다. 초등학생 중학생 때 사회시간만 되면 지겹게 들었던 그 '지구온난화'
‘아니, 온난화가 왜 여기서 나와? 무슨 상관이라고?’
많은 야생 동물들의 희생과 한반도 80% 규모의 울창한 숲을 잃게 한 산불의 원인이 지구온난화라니 처음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고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곳저곳 검색하며 찾아보았다. 검색하다 알게 된 사실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한 가지는 호주는 원래 건조한 나라여서 산불이 흔히 발생한다는 사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호주 날씨가 원래 건조했던 탓에 산불이 자주 일어난 것도 맞지만, 이상고온의 영향으로 점점 화재의 규모가 커지고 그 빈도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실제로 호주 산불은 수많은 사람들이 불길을 잡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록적인 폭염과 강품 아래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았고, 이례적인 이상고온 현상으로 불길 진압에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호주의 산불이 나에겐 지금처럼 지구 온난화고 뭐고 신경 쓰지 않고 석탄 발전소를 운영하고 비닐과 플라스틱이 넘쳐나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이대로 살다가는 다음은 우리 동네 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동물들 에게 피해가 갈 수 있다고.. 이웃나라로부터 온 경고장 같았다.
산불이 났다는 소식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고 종종 발생하는 일인데 이땐 왜 나한테 다르게 다가왔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먼 얘기, 눈으로 본 적 없는 지구온난화가 실제로 큰 피해를 만들고 있고 그게 뉴스로 생생하게 전해져서 더 크게 와닿았던 것 같다.
(귀여운 코알라가 다쳤다니.. 그것도 크게 작용한 것 같기두...)
그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분리수거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다.
플라스틱, 일반쓰레기, 음식물, 캔 등 재질과 용도별로 분리만 잘해서 버리면 그 나머지 뒷일들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고 전문가나 다른 사람들이 하는 몫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환경을 위해 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야.라고 선을 그어놓은 것처럼
하지만 호주 산불의 방화범이 내가 버린 쓰레기, 내가 무분별하게 사용한 일회용품들
즉 '나' 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든 후부터는 내가 지구와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당장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뭘까 고민하고 배워가며 일상 속에서 조금씩 불필요한 쓰레기를 덜어내는 본격 제로웨이스트 라이프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