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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May 10. 2021

#25. 막말의 영속성

막말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

한때 유튜브 시청으로 하루를 시작해 유튜브로 하루를 마무리하는 유튜브 폐인으로 살았다. 한때라고 해봤자 불과 1년 전이다. <모터트렌드> 디지털 콘텐츠를 강화하기 위해 공부한다는 그럴듯한 명분으로 스스로를 정당화했지만, 무엇보다 재미있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일반적인 방송 형식과 구조가 없는 개인방송은 어색하기보다는 친근하게 느껴졌고, 서로 소통하면서 시청자를 방송의 객체가 아닌 주체로 끌어들이는 게 재미있었다. 더욱이 유튜브는 내가 보고 싶은 순간에,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볼 수 있으니 편하기까지 하다. 유튜브를 시청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최신 모델로 바꾸고 이도 성에 차지 않아 100만원이 훌쩍 넘는 아이패드를 구매했다. 그렇게 수많은 채널과 크리에이터 사이를 오가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유튜브 시청 시간이 줄기 시작했다. 언제나처럼 유튜브를 시청했던 시간에 유튜브가 아닌 딴짓(!)을 하는 시간이 점점 늘었다. 뉴스를 보거나 넷플릭스에서 밀린 드라마를 시청했다. 양재천을 걷고 매봉산을 올랐다. 버스나 전철에선 으레 휴대전화를 꺼내 유튜브를 봤는데, 이젠 가방에서 500페이지가 넘는 무거운 책을 꺼내 읽는다. 

유튜브 시청 시간이 급격하게 줄어든 가장 큰 이유는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이었다. 1년간 열심히 유튜브를 보니 새로운 콘텐츠가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언젠가 본 거 같기도 하고, 분명히 처음 보는데 다른 채널의 내용과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예전 영상을 찾아봐도 크게 변화된 모습은 없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만들어야 하는 크리에이터로서도 고심이 많은 부분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찾지 못하고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선 자극적인 것이 효과를 내기도 한다. 신입 크리에이터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기도 하다. 잘나가는 연예인, 정치인, 유튜버를 공격한다든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현안에 대해 일반적이지 않은 시각에서 비평과 비난을 내세운다. 이런 방법은 확실히 효과가 있다. 더 많은 시청자를 끌어들이고 더 많은 시청 시간을 기록한다. 단숨에 유명해지기도 한다. 인간은 자극에 약하고 끌리기 마련이니까. 

몇 달 전 자동차 크리에이터와 여러 매체가 벌떼처럼 몰려든 사건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제네시스 GV80가 오르막에서 드라이브 모드로 두었는데 후진하는 현상이 있었다. 이를 두고 수많은 자동차 유튜버들이 관련 영상을 만들었다. 많은 소비자가 주목하는 차가 출시되자마자 결함이 있다는 내용은 관심을 끌 만하니까. 나도 관련 내용을 담은 여러 유튜브 채널을 유심히 살폈다. 하지만 뚜렷한 결론이나 해석을 내놓은 유튜버는 거의 없었다. 내용은 부실했고, 주장엔 이유와 근거가 빈약했다. 반면 현대차를 헐뜯고 폄훼하는 내용만 절대다수로 많았다. 

무작정 욕설을 하는 유튜버도 있었다. 이 경우는 부실한 내용이나 빈약한 근거보다 더 저급하다.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과격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동냥질한다. 마치 자신이 현대차 안티 세력의 전사가 된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욕한다. 그런데 그의 욕지거리를 듣고 속이 시원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건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의 영상에 많은 악플이 달렸다. 무플보다는 악플이 낫다고, 이것도 그 유튜버의 전략이라면 할 말은 없다. 그 영상은 높은 시청 횟수를 기록했으니까. 하지만 그뿐이다. 그의 다른 영상들은 별 반응 없다. 

헐뜯기와 막말이 대중의 관심을 끌 수는 있어도 지속성을 가질 수 없다는 게 이번 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막말하고, 현직 대통령의 외국 순방을 ‘천렵질’이라 헐뜯으며, 촛불시위를 마치 테러분자들의 농간으로 치부했던 국회의원들이 이번 선거에서 대거 낙마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우리 국민은 국회의원들의 막말과 망언에 아파했다. 저급한 언사로 국회를 동물국회로 만드는 것에 환멸을 느꼈다. 국민의 손으로 일궈낸 민주주의가 일부 국회의원으로부터 폄론되는 것에 화가 났다. 우리 손으로 뽑은 국회의원이 국민들 앞에서 망언과 막말을 서슴지 않는 것을 보며 그에게 투표한 걸 후회했다. 

다행인지 몰라도 20대 국회 말미에 각 당 공천에서 막말을 일삼는 의원을 탈락시키는 자정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도 잡음이 많았다. 공청에서 탈락한 ‘막말의 아이콘’(검색창에 이름을 치면 막말이라는 연관 검색어가 가장 먼저 나온다) 의원이 다시 공천되기도 했다. 하지만 국민들은 그의 가슴에 금배지를 달아주지 않았다. 막말은 정치가 아니라 그저 저급한 감정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아이패드까지 구매하면서 이전보다 더 좋은 여건과 환경에서 유튜브를 시청할 수 있게 됐지만, 더 이상 유튜브로 시간을 죽이지 않는다. 새로운 것에 대한 갈증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유튜브에서 또 다른 갈증을 느꼈고, 유튜브는 그 갈증을 제대로 해소해주지 못했다. 그리고 네거티브와 자극이 넘쳐나는 환경은 유튜브 중독을 자연스럽게 치유해줬다. 

<모터트렌드> 유튜브 채널에 운영비가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아직도 구독자가 적다. 자극적인 내용을 지양하고 객관적 사실에 주관적 관점만 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재미를 위해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더할 계획은 있지만, 저급하고 천박하게 이슈를 좇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꾸준히 오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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