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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진우 Dec 01. 2022

유희를 위한 자동차의 욕망

왜 SUV는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으면 안 됩니까?

인류는 이동의 속도와 편의를 위해 자동차를 만들었지만, 사실 운전이라는 행위 자체는 원래 다분히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길을 따라, 또는 앞차를 따라 가고서기를 반복한다. 지루함은 집중력을 흩트리고 그 순간 운전은 아주 위험한 행위가 된다. 그래서 인류는 자동차 안에 유희를 위한 기능을 추가하기로 했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지루하지 않은 이동이다. 그래서 자동차 실내에 라디오와 오디오 시스템을 넣었다. 라디오는 오래도록 자동차 운전자들의 가장 친한 친구다. 지금도 운전 중 라디오를 듣는 운전자들이 많다. 오디오는 어떤가? 운전자들은 더 맑고 정확하며 풍성한 소리를 원했고, 자동차 브랜드들은 여러 오디오 메이커와 손을 잡았다.

다른 하나는 운전 자체를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이동을 위한 운전이 유희의 도구로 활용되는 획기적인 혁명이다. 하지만 이는 그다지 쉽지 않다. 제약이 많기 때문이다. 재미있고 즐거운 운전을 위해서는 빠르고 정확한 핸들링에 민첩한 몸놀림이 우선 돼야 한다. 그래서 차체를 낮고 작게 만들어 스포츠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스포츠카는 실용성이 떨어지고 편하지 않다. 기술의 발전은 세단을 스포츠카와 같은 성능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류의 욕심은 크고 높고 무거운 SUV도 스포츠카와 같은 성능으로 만들었다.

6년 전, 마세라티 르반떼를 만나기 위해 혼자 이탈리아행 비행기를 탔다.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마세라티 역사 최초의 SUV를 만나게 됐다. 마세라티의 역사적인 순간을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이 크고 무거운 SUV는 내게 아주 깊은 인상을 남겼기 때문이다.

나는 최선을 다해 이탈리아 발로코(Balocco)에 있는 FCA 프루빙 그라운드를 공략하고 있었다. V6 엔진을 얹은 르반떼 S는 운전자를 자극하는 교태가 여간 아니었다. 당차게 코너에 진입하면 ‘지금이 한계인가?’ 싶은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게 한계가 아니다. 이 차의 한계를 끌어낸 것 같은데 또 다른 한계점이 기다리고 있다. 게임으로 치면 1단계 스테이지 클리어 정도라고 할까? 당시 난 ‘포르쉐 카이엔만큼 빠르지만 감성 자극은 훨씬 더 많다’고 적었다.

서킷에서의 화끈한 움직임도 놀라웠지만 오프로드 성능에서도 르반떼는 꽤 인상적이었다. FCA 프루빙 그라운드에는 꽤 거친 오프로드 코스가 있다. 지프가 테스트받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르반떼는 그 어려운 코스를 큰 어려움 없이 탈출했다. 오프로드 타이어를 신지 않고 말이다.

100년 역사 마세라티는 모터스포츠에서 빛나는 업적을 이뤘지만, 그 100년 동안 오프로드와 전혀 연관성이 없었다. 그런데 마세라티 최초의 SUV로 하여금 흙을 밟고 바위를 타 넘으며 물길을 건너게 됐다. 서킷과 오프로드라는 극과 극의 주행 환경을 모두 만족하는 차 덕분에 소비자들은 다양한 주행 환경에서 마세라티의 고성능을 만끽하게 됐다.  

이후 V8 트윈터보 엔진을 얹은 르반떼 GTS가 더해졌다. 페라리가 만든 엔진으로 최고출력이 550마력에 이른다. 르반떼 S도 고성능이었는데, GTS는 스로틀을 다 열면 비루한 몸뚱이가 시트에 파묻히다 못해 박혀버리는 게 아닐까 싶다. 무시무시한 가속이다. 생각해보자. 2톤이 훌쩍 넘고 차체 길이가 5미터에 이르는 이 차가 0→시속 100km를 4.2초에 달린다. 앞에선 ‘우르르’하며 공기 빨아들이는 소리가 나고 뒤에선 천둥치는 배기음이 터진다. 무서운데 더 빨리 달리고 싶은 이상야릇한 감정이 자꾸자꾸 솟구친다. 도전일 수도 있고 모험일 수도 있다. 무언들 어떠랴. 지금 이 순간 난 르반떼 GTS를 즐긴다는 게 중요하다.

르반떼는 온로드뿐만 아니라 오프로드까지 고성능 스펙트럼을 넓혔다. 이유는 간단하다. 오너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다. 유희로서의 가치와 도구, 더불어 SUV의 편리함까지 가진 차.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SUV로 시속 300킬로미터를 달리는 차를 만들었다.

페라리 푸로산게

최근 출시된 페라리 푸로산게는 시속 3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릴 수 있는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SUV라고 말하지 않지만, 푸로산게는 누가 봐도 SUV의 형태이고 SUV의 특징적 성향을 지녔다. ‘왜 SUV가 시속 300킬로미터 넘게 달려야 하냐?’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심을 내고 속도가 빠를수록 유희로서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빠름이 곧 페라리의 절대적 가치이고 그 가치는 SUV라고 해도 전혀 양보할 의지가 없다. 그리고 페라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왜 SUV는 시속 300킬로미터가 넘으면 안 됩니까?”

리비안 R1T

이제 남은 건 픽업트럭 아닐까? 픽업트럭은 공력성능에 가장 취약한 형태로 빠르게 달리면 화물칸에서 엄청난 와류가 생겨 차체를 뒤흔들게 된다. 하지만 인류의 속도에 대한 열망은 언젠가는 크고 무식하게 생긴 이 짐차를 시속 300킬로미터로 내달리게 할게 뻔하다. 이미 리비안이 만든 R1T 픽업트럭은 0-시속 100킬로미터를 3.0초에 달린다. 이제 남은 건 가속력이 아닌 최고속도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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