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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weetish Jul 02. 2018

허구이면서 허구가 아닌 이야기 <제 7일>

허구의 인물을 통해 중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다. 위화의 <제 7일>

작가 위화 (출처 : 중앙일보)


<인생>을 읽고 위화에게 빠져버렸다. 여러 작가의 책을 읽었지만, 나는 위화가 "진짜 작가"라고 생각한다. <인생>을 읽을 시기, 힘들고 고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른 소설도 함께 읽고 있었는데 작가 간의 내공 차이가 확실하게 느껴졌다. 어떤 책이었는지 밝힐 수는 없으나, 그 책은 너무 많은 것 (데이트 폭력, 블랙컨슈머, 갑질 문화, 빈부격차 등)을 담으려 해서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쭉쭉 빠졌고, 작가의 문체에서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오만" 읽혀서 불쾌했던 기억이 난다. 

위화의 글은 다르다. 사회에서 가장 어둡고 축축한 자리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인생"을 그리고 그들의 삶 속 애환을 통해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개인의 무력함을 위로하고 체제와 구조의 비합리성에 분노한다. 그의 글은 "민중을 계몽한다"라는 지식인의 권위의식도 읽히지 않고 그저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그러나 아주 먹먹하게 스민다. 

장편소설 <제 7일> (출처: 인터파크 도서)

이 책, <제7일>도 그렇다. 주인공 양페이는 식당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로 흔히 저승이라 알려진 "죽은 자들의 땅"으로 가게 된다. 몸이 아픈 아버지를 돌보기 위해 회사도 그만두고, 집도 팔았던 양페이는 이승에 가진 재산도, 장례를 치러지고 묘지를 준비해줄 이도 남아있지 않았다. 병환이 깊었던 아버지는 하루아침에 그를 두고 집을 떠난 뒤 양페이는 쭉 혼자였다. 그것은 분명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은 노인의 마음이었겠지. 

저승은 빈의관을 기점으로 두 공간으로 나뉜다. 묘지와 수의가 마련된 이들이 "영원한 안식"에 이르는 곳과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이들이 "영생"을 사는 곳. 묘지가 없는 양페이는 그곳을 떠돌며 여러 사람(혹 사람이었던 영혼)들을 만나고 그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다. 살아있을 때 깊고 얕은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며 그들의 서로의 삶과 죽음을 이해하게 된다. 

소리가 잇따라 고요 속에 떨어지는 것처럼 상장을 단 사람들이 속속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모닥불 옆에 빙 둘러앉아 드넓은 침묵 속에서 은밀하게 수많은 말들을 내뱉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이 수없이 모여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것 같았다. 모두 떠나간 세계에서 기억하기 싫은 가슴 아픈 일을 겪었고, 모두 하나같이 그곳에서 외롭고 쓸쓸했다. 우리는 스스로를 애도하려 한자리에 모였지만 초록색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을 때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었다. -227p-

혹시 있을지도 모를 아버지를 찾아 헤매던 양페이는 과거, 자신의 셋집 옆방에 살던 "슈메이"에게 이끌려 "매장되지 못한 자들이 사는 곳"에 이르게 된다. 묘지를 살 돈도, 가족도 없는 이들은 저마다 이승에서의 아픈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그곳에서 아픔도, 미움도, 가난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게 살아간다. 양페이는 이곳에서 아버지를 찾을 수 있을까?

위화의 에세이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 한국판 서문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위화의 에세이는 중국 대륙에서의 출판이 불가능했는데, 상당한 비판정신을 담은 책인 소설 <형제>는 중국에서 출간되었다. 타이완의 기자는 이를 두고 그 이유를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위화에게 물었다. 위화는 그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나는 허구와 비허구의 차이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주체가 둘 다 오늘날의 중국이긴 하지만 <형제>는 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우회적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쉽게 출판할 수 있었지만, 이 책은 비허구 작품이라 서술에서 단도직입적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출판이 불가능하다.  

- 위화作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나는 오히려 이 허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오늘날의 중국 사회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본 것만 같다. 주거민의 동의 없이 강제 폭력 철거를 자행하는 공권력.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죽은 부모와 고아가 된 아이.  산아제한 정책 때문에 빛을 보지 못하고 죽은 태아와 "의료폐기물"로 지칭된 그들의 사체. 억울한 누명을 씌우는 경찰의 고문수사. 돈을 마련하기 위해 장기를 파는 사람들. 작은 몸을 뉠 공간도 허기를 달랠 빵 한 조각도 없어 폐기된 방공호에 모여 쥐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부패한 공무원과 그들이 휘두르는 공권력 앞에 아스러진 힘없고 빽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허구인 동시에 허구가 아니다. 작가는 허구의 인물을 통해 중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었다. 

두 달이 지나자 돈이 거의 떨어졌어요. 일자리를 찾아야겠다고 말했더니 그는 싫다고 다시는 무시당하기 싫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울었어요. 정말 슬프게 울었어요. 그런데 화가 나서 운 게 아니라 이 사회가 너무 불공평해서 울었어요. - 287p. -

그는 고향 농촌에 3년을 사귄 여자 친구가 있는데, 그녀와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여자 집에서 데려가고 싶으면 집부터 한 채 지으라고 조건을 제시했다고 했다. 그래서 도시로 나와서 일을 했는데 임금이 너무 낮아 이대로 가면 8년, 10년은 일해야 집을 지을 수 있겠더라고, 그때가 되면 여자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가버리겠다 싶어서 얼른 지을 돈을 마련하고 신장을 팔았노라고 설명했다. -267p.-


곤궁한 삶의 이야기가 연속적으로 쏟아지지만, 그 안에 분명한 행복과 따스한 인정이 있다. 이웃을 향한 연민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있다. 먹먹해지는 가슴을 따뜻하게 달구는 이야기를 풀어가는 능력이야말로 위화가 가진 위력이요, 내가 그를 "진짜 작가"라 칭송하는 이유이다.

소설 초반, 묘지 살 돈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죽어서도 빈의관을 지나 "영원한 안식"에 이르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났다. 죽어서까지 돈 없어서 차별을 당해야 한다니. 참으로 가혹하다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나를 더 이상 슬프게 하지도, 분노하게 하지도 않는다. 죽었지만 매장되지 못한 사람들이 사는 땅에는 가난도, 부유함도, 슬픔도, 고통도, 원수도, 원망도 없으니까. 전부 죽었지만, 모두가 평등하니까.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삶이 그곳에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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